[복싱 HISTORY]복싱 프로모터, 故심영자… '세계 챔프들의 영원한 대모'

타계 1주년… 홍일점 프로모터 역사속으로

1970~80년대 복싱계 대모로 불리던 심영자 전 88 프로모터 회장이 타계 한지 어느덧 1주년을 맞이했다

고(故) 심영자 회장은 1943년 군산 태생으로 대전 호수돈 여고 졸업 후 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동안 총17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견배우로 성장했으나 1966년 서울상대를 졸업한 사업가 문덕만과의 결혼으로 은막을 떠났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의 고 심영자 전 88프로모션 회장. 조영섭 제공

이후 둘째 오빠와 친분이 두터운 김진길 대원체육관 관장과 인연으로 1978년 신인왕 출신의 양일과 김철호를 후원하며 복싱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

이어 이일복과 장정구를 픽업하면서 정상급 복서를 키우는 일에 매진하게 된다.

1983년 10월 광장동 워커힐 APT에 선수들의 합숙소를 마련한 심 회장은 영등포에 88 체육관을 설립해 본격적인 선수양성에 돌입해 수많은 챔피언을 탄생시켰다.

장정구 챔프를 후원하던 심영자 전 88 프로모션 회장. 조영섭 제공

한국 복싱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 김성준을 비롯해 김철호, 장정구, 문성길, 김용강, 정비원, 김봉준, 장태일을 연달아 배출하며 한국 프로복싱의 한축을 담당한 홍일점 여성 프로모터가 됐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라고 10년간 한국프로복싱의 핵으로 군림했던 88 프로모션은 1993년 11월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문성길이 벨트를 풀면서 붕괴위기를 맞이했고 후원하던 모기업마저 사업이 크게 흔들리는 악재까지 겹쳐 1994년 문을 닫고 만다.

이후 심 회장은 1999년 숭민프로모션을 설립하고 재기에 나서 백종권, 최요삼등을 연달아 세계정상에 올리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또 2005년에는 중국진출을 노리는 등 복싱계의 대모다운 면모를 평생 이어갔다.

필자는 1983년 8월 개최된 제3회 로마월드컵 대표선발전에서 고 심영자 회장 을 처음 만난다.

당시 김성준 김철호 장정구등을 후원하며 극동프로모션 선수들을 지원했던 심 회장은 김철호가 11월 WBC 슈퍼 플라이급 타이틀 6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라파엘 오로노에 벨트를 내주고 야인으로 내려앉자 직접 프로모션을 창단하기 위해 일선에 뛰어들어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복싱경기장을 찾았던 것이다.

필자는 플라이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라이트 플라이급의 황동룡(한국유리), 밴텀급의 이윤희(한국체대), 라이트급의 고희룡(웅비), 라이트 웰터급의 김기택(수원대), 라이트 미들급의 안달호(일우공영)와 함께 최종선발전 진출권을 확보한다.

하지만 필자는 허영모(한국체대)와의 최종선발전도 치루지 못한 채 그해 10월 워커힐 APT 22동 1002호 합숙소에 합류해 심영자 사단의 일원이 됐다.

필자는 지금 그 상황이 다시 펼쳐진다면 프로행을 갈 생각이 0.1%도 없다. 유연성과 민첩성이 함량 미달인 필자는 프로에 부적합한 체형의 복서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88 프로모션은 1988년을 맞이해 김용강, 문성길 상두마차가 세계정상에 오르며 탄력을 받고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당시 88프로모션은 독점 방송을 하던 KBS만으로는 중게방송을 소화해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몰려 아란 프로모션(MBC). 미리노 프로모션(SBS)까지 연결해
선수들의 경기를 치렀고 이마저 부족하자 케이블방송까지 접수해 방송사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당시 직원들 급여만 2천 만 원을 상회했던 대군단 88프로모션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후원하던 모기업이 휘청거리면서 지원이 중단되면서 이후 김용강과 문성길이 벨트를 풀면서 과도한 투자로 인한 누적적자를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로 이어졌다.

장정구 등이 2019년 7월 77세 희수 잔치를 열어 줄 정도 심 회장은 세계 챔피언들의 영원한 대모로 살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는 모두 하늘의 별이 된 최요삼 전 챔프와 심영자 전 88프로모션 회장. 조영섭 제공

그러나 남편과의 사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노년의 심 회장은 2020년 10월 향년 78세로 영면했다.

한국 프로복싱계의 홍일점 프로모터의 역사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조영섭 객원기자(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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