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 참패 후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회생 방안을 고민해본 비대면 토론회. 스포츠코칭발전연구소 제공다음 올림픽을 위해 한국 스포츠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2020 도쿄 올림픽 참패 이후 변화를 촉구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난 9일 스포츠코칭발전연구소가 개최한 비대면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은 되새겨 볼 대목이 많다. ‘도쿄 올림픽으로 바라본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한국 스포츠의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다양한 처방을 내놨다.
장선재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이클 코치는 코치의 전문성 강화를 역설했다.
그는 “한국의 대부분 팀은 심리, 영양, 체력 등 전문 트레이너의 몫까지 코치가 다 한다”면서 “스포츠 선진국은 팀 매니저, 멘탈코치, 트레이너의 역할이 모두 나뉘어져 있다”면서 전문 코칭인력을 키워나갈 것을 촉구했다.
코치 스스로의 혁신을 강조한 이도 있었다. 오선택 전 양궁국가대표팀 총감독은 “이번 올림픽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가 바뀌어야 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남 탓 하지 말고 지도자 스스로 먼저 바뀌어보자”고 역설했다.
그는 “엘리트 체육이 좋아지려면 정책도 좋아야 하겠지만 현장을 리드하는 것은 결국 우리 지도자다. 우리가 현장에서 잘하고 있는지 자성해보자. 우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선수들과 어떻게 함께 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호석 스쿼시 국가대표 감독은 “이번 올림픽에서 4위에도 열광했다고 하는데 종목에 따라 국민들의 잣대가 달랐다”고 전제, “축구, 야구 등 프로종목에는 질책이, 비인기 종목에는 관대했다”고 주장했다.
감 감독은 “결국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대함은 또 다른 무관심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유지를 위해 국가방역체계가 지나치게 엄격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국제 대회 개최를 허용해 선수들이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은 국내 대회 개최도 제한적이었을 뿐더러 쿼터 확보를 위한 국제 대회에 갔다 온 유도선수들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현장에서 뛰는 이들 전문가들의 진단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하지만 이뿐일까. 이번 올림픽 참패는 엘리트 스포츠 육성에 대한 소극적 지원과 사회·교육적 편견 탓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 많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투 트랙으로 나눠진 한국 스포츠 발전 전략은 제한된 재원 탓에 결국 엘리트 체육에 대한 부실 지원으로 나타났다.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은 2015년 5월 장관급 부처인 스포츠청을 신설해 막대한 지원을 선수들에게 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포츠 성과는 투자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이 현대차그룹(양궁), 포스코(체조), SK(펜싱)라는 대그룹이 후원한 종목만 금메달을 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 체육인과 운동선수에 대한 집요한 부정적 프레임 씌우기는 그들의 사기를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 스포츠는 사기로 먹고 산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오래된 성희롱 사건이 까발려지고,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일방적 주장이 아무런 검증 없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체육권력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권력암투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학생선수들에 대한 운동권 보장도 중요하다. 대한축구협회 제공차기 올림픽, 차차기 올림픽에 뛸 어린 학생 선수 육성책에도 일선 지도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내년도에 고교선수의 결석 허용일수가 현재의 30일에서 20일로 줄어든다는 소식에 고교 코치들은 벌써부터 걱정이다.
수업을 다 하고 운동까지 잘해 올림픽 메달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함)와 같다는 지적이다.
주말리그를 뛰라고 하면서 학생들의 휴식권을 보장하라는 것도 앞뒤 이치가 맞지 않는다. 고교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며 고교시절은 자신의 꿈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 귀중한 시간이다.
운동으로 입신하려는 선수에게 일정 수준의 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일반학생들의 학습권 보장과 같은 의미다.
지난 여름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무더위를 식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메달 색깔이 뭐 중요하냐”고 외쳤던 사람들에게 “지니 기분이 좋던?”하고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