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도장에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 이웃 도장에서 치렀던 승급 심사 때 가장 가슴 뛰던 순간은 사범들의 격파묘기였다.
기왓장 10여장을 깨고, 붉은 벽돌 여러 장을 박살내는 장면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가느다란 실 위에 벽돌을 올려놓고 깨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신비롭다.
격파묘기는 태권도 홍보를 위한 이벤트성 행사로, 심사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격파는 태권도 시범에는 효과만점이다. 태권도의 위력을 단번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격파물도 기왓장, 벽돌, 송판을 넘어 대리석이나 두꺼운 각목으로 진화해갔다.

목표물에 수직으로 가격해야 격파 효과가 배가 된다. 1997년 세계태권도한마당에 출전해 대리석을 격파하는 최종원 교수. 최종원 교수 제공 최근에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벽돌을 많이 사용한다. 고난도 공중제비를 곁들인 품새 묘기에 시큰둥하던 관객들도 격파묘기가 시작되면 “와아”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격파는 겨루기, 품새와 더불어 태권도의 3대 수련 영역이다.
태권도 수련생이면 반드시 3가지를 병행함으로써 타 무술에 비해 강력한 태권도의 위력을 뽐낼 수 있었다. 하지만 태권도가 겨루기 중심의 경기 태권도로 치우치면서 격파는 선수들에서조차 외면돼 왔다.
태권도 겨루기 국가대표 선수의 손을 보면 주먹단련을 하지 않아 일반인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5단 심사 때 격파가 수험 과목에 들어 있고, 6∼7단 심사에는 손날과 뒤차기 격파가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격파 과목이 중요해졌다. 손날과 뒤차기 중 어느 하나라도 기준에 미달할 경우 불합격될 정도다.

주먹은 빈 공간이 없도록 꽉 쥐어야 한다. 최종원 교수의 정권 모습. 서완석 기자격파는 통상 주먹, 손날, 뒤차기를 통해 이뤄진다. 주먹 격파에도 3가지 종류가 있다. 검지와 중지의 주먹뼈인 소위 정권을 사용해 격파함이 일반적이나 주먹을 쥔 채 손날 방향으로 내려치는 멧주먹의 위력도 가공할 만하다. 또 주먹쥔 손등으로 치는 격파의 위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최종원 세계태권도연수원 교수가 최근 펴낸 태권도 격파론. 서완석 기자격파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힘만으로는 안되는 게 격파다. 40년 이상 격파술을 연마해온 최종원 9단(66·세계태권도연수원 교수)에게 격파의 요령을 들어본다.
그는 최근 자신의 격파 경험담을 정리한 ‘태권도 격파론’이란 책을 출간했다.
최 교수는 격파 수련을 위한 마음과 육체의 단련을 먼저 꺼냈다.
“다치지 않을까, 아프지 않을까, 과연 깨질까”하는 두려움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 두려움이 앞서면 실제로 부상이 온다. 그는 마음으로 먼저 격파물을 깨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다소 건방지고 거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격파에 앞서 근력 강화 훈련이 먼저라는 최종원 교수의 젊은 시절 격파 모습. 최종원 교수 제공위력 격파를 위해서는 육체 단련이 필수적이다. 주먹 쥐고 팔굽혀펴기는 가장 오래된 수련법이다. 손가락 팔굽혀펴기는 어렵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릎을 바닥에 대고 해야 한다. 자전거 튜브의 탄력을 이용해 스윙 연습을 하는 것은 손날 격파 수련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는 악력을 기르기 위한 인공암벽타기도 권했다. 역기를 활용한 전완근 훈련이나 데드 리프트도 효과적이다. 데드 리프트는 자기 몸무게의 1.5배의 역기를 배꼽까지 들어 올리는 것으로 등근육을 키우는데 그만이다.
주먹의 힘은 주먹과 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등근육을 활용해야 더 큰 파괴력을 만들어 낸다.

격파는 주먹과 팔 근육 뿐 아니라 등근육을 사용해야 파워가 증대된다. 등근육 훈련에 좋은 데드리프트. 자료사진최 교수는 자신이 특별히 고안한 단련대, 콩주머니, 쇳가루주머니를 시간 나는 대로 치며 주먹을 단련해왔다.
등산을 가면 애꿎은 소나무들은 그의 단련 상대가 된다. 그가 고안한 단련대는 두께 30㎝의 송판에 2㎝간격으로 틈을 내 타격 시 충격을 줄여준다.
그는 “연습 때 아프지 않아야 오랜 세월 수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격파를 잘 하려면 스피드와 질량, 정확성이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
물리학에서 힘은 질량x속도이다. 질량을 키우기 위해 근력을 키워야 한다. 격파시 살짝 점프한 뒤 내려치면 질량을 키울 수 있다.
속도는 타이어 튜브를 활용한 스윙 훈련으로 배가시킬 수 있다. 여기에 정확도가 추가돼야 한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그는 동전을 한 개씩 쌓아놓고 정확하게 내려치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뒤차기를 할 때 발이 목표방향에 수직으로 가격해야 한다며 시범을 보이는 최종원 교수. 서완석 기자모든 격파는 수직으로 내려쳐야 힘이 실린다. 뒤차기 격파시에도 발이 격파물에는 수직으로, 지면과는 수평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는 이같은 뒤차기를 둥근 통나무인 ‘당목’으로 범종치는 것에 비유, ‘당목치기 타법’이라 이름 붙였다.
그래서 그는 “격파야말로 과학”이라고 단언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부상방지를 위한 격파시 유의사항을 언급했다. 손가락은 19개의 뼈로 구성돼 있고 손등에도 8개의 뼈와 함께 인대와 혈관, 신경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별한 조심을 하지 않으면 격파 및 수련 과정에서 관절염, 인대파열, 어깨 탈구, 신경계 손상, 골절 등의 상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악기연주자나 이미용사 같은 섬세한 작업을 요하는 직업군의 사람들은 위력 격파 수련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한 성장기 어린이와 노약자들도 격파 단련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