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탐방]'격파 고수' 최종원 태권도9단 “격파? 탐욕을 깨뜨리는 것”(영상)

태권도 격파계의 고수, 40여년 간 격파 수련
세계태권도한마당에 20년간 출전 8회 우승 금자탑
주한미군에 태권도 가르치며 대학에서 제자 키워
세계태권도연수원 격파 부문 교수로 후진 양성


“격파는 수행의 한 방편입니다. 끊임없이 단련하다보면 내 마음 속 탐욕과 어리석음을 함께 깨뜨리게 됩니다.”

최종원 교수가 세계태권도한마당에서 대리석을 격파하고 있다. 최종원 교수 제공

최종원(66·세계태권도연수원 교수)씨는 국내 몇 안되는 격파 고수다. 이론과 실기를 겸비했다. 그는 위험하다며 남들이 기피하는 격파부문 한 우물을 팠다.

최종원 교수가 살구씨를 격파한 뒤 조각난 살구씨를 가리키고 있다. 서완석 기자

최근 그를 만났을 때 차안에서 작은 가방을 들고 나왔다. 가방 안에는 살구씨와 호두가 봉지에 들어있었다.

통성명을 나누자마자 “살구씨는 작고 납작해 격파가 힘들지요”라며 대뜸 살구씨 몇 개를 바닥에 뿌렸다. 그리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납작한 살구씨를 손등으로 내리쳤다. 작은 살구씨가 여러 조각으로 짓이겨졌다. 그에 비하면 호두는 식은 죽먹기였다.

오랜 격파 수련으로 불룩해진 최종원 교수의 손등 모습. 서완석 기자

자세히 보니 그의 오른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조금 전까지 체육관에서 격파 단련을 했다는 그의 정권은 두툼하게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손등은 불룩한 모양으로 마치 부어오른 듯 했다. 통증을 참고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수련한 훈장으로 보였다.

최씨가 격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학생부터다. 초등학교 4학년때 태권도 수련을 하던 형들을 따라 도장에 다녔다. 도복도 없어 아버지 와이셔츠에 흰띠를 매고 시작했다. 청소년기에는 태권도와 병행해 복싱과 보디빌딩을 수련했다.

“중학생 때 등하굣길에 큰 다리 난간이 있어 그걸 손으로 치면서 다녔습니다. 운동으로 신체에 힘이 붙으면서 왠지 주먹의 달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 선수로 뛰지 않았지만 군 제대 무렵 4단이 된 그는 태권도장 사범으로 생활을 했다. 여러 일도 해봤지만 수련을 겸해 타인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굳은 살이 박힌 그의 정권에는 오랜 수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완석 기자

그가 격파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37세이던 1992년 대한태권도협회가 처음 개최한 ‘세계 태권도 한마당’이었다.

‘태권도 한마당’은 겨루기로 치우친 태권도의 무도성을 되살리기 위해 격파와 품새 부문의 고수들이 겨룬 태권도 경연이었다.

첫 대회에 출전해 입상은 못했지만 마음속에 잠재해 있던 어릴 적 꿈이 꿈틀거렸다.
이후 그는 격파왕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수련에 매진했다. 당시만 해도 격파 전문 지도자가 없었다. 그저 풍문에 떠도는 경험담과 영웅담이 전부였다.

“일본과 중국책을 많이 봤습니다. 심지어 무협지도 많이 읽으면서 격파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했지요.”

하지만 책의 내용은 결국 허구였다. 자신이 실제 아파하고 경험하지 못한 격파술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최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격파를 잘 할 수 있는 훈련도구들을 개발했다. 다른 격파고수에 비해 불리한 신체조건(172㎝,75㎏) 탓에 더욱 정진해야 했다.

그 결과 그는 태권도 한마당에 20년간 출전하면서 8차례나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한마당에서 마스터 위력격파 통합 우승자가 된 2012년을 끝으로 대회 출전을 접었다.

"격파는 수행의 한 방편"이라는 최종원 교수. 서완석 기자

최씨는 격파 수련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태권도 수련의 3대 요소는 겨루기, 품새, 격파가 아니던가. 그는 매일 품새를 수련하며 50세를 넘긴 2006년 제1회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가르치는데 흥미를 느꼈던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년 간 의정부 미2사단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그 장병들이 어느 날 전격적으로 이라크전에 투입되는 경험도 있었다. 10여년간 우석대와 호원대 겸임교수로 대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주한미군의 최전방 부대인 보니파스 캠프 태권도 교관으로 선발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도가 무산됐다.

2012년 세계태권도한마당 위력격파 우승당시 최종원 교수의 환호하는 모습. 최종원 교수 제공

그는 격파가 도외시되는 현재의 태권도 수련방식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태극 4장부터 유단자 품새인 한수까지 등주먹을 사용하는 동작이 있는데 정작 관원들은 등주먹 격파 수련은 하지 않습니다. 흉내만 내는 수련으로는 제대로 된 태권도 수련이라고 할 수 없지요.”

최씨는 이어 “태권도는 전 세계 무술 가운데 주먹 위력이 가장 센 종목인데도 겨루기 선수들은 격파 수련을 전혀 하지 않아 위력면에서 타 무술에 뒤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최근 ‘태권도 격파론’이란 서적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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