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HISTORY]前 문체부 차관 박종길과 복서 박종천의 스포츠 우정

박종길 전 차관,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리스트·전 태릉선수촌장
박종천 회장, 아마추어에서 출중한 실력·프로 전향은 끝내 거부

패티 김의 감미로운 “구월이 오는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지난 주말. 필자의 체육관에 경기인 출신의 반가운 분들이 방문했다.

복서 출신으로 현재 서초구 잠원동 티롤 관광호텔을 운영하는 박종천 회장과 2011년 태릉선수촌 촌장을 지냈던 피스톨의 전설 박종길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그들.

두 분은 오래 전부터 호형호제하는 스포츠계의 의리의 사나이로 소문나 있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는 자주 큰 웃음이 나올 정도로 운동세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많았다.

복서출신의 사업가 박종천 회장(사진 왼쪽)과 복싱 사랑이 남다른 박종길 전 태릉선수촌장. 조영섭 제공

박종길 전 태릉선수촌장은 총잡이이자 열혈 복싱 마니아다.

아시안게임 2연패 뒤 상계 백병원에서 근무하는 이해정(한국체대)과장은 박 전 촌장에 대해 "복싱인보다 더 복싱을 사랑하는 체육인" 이라고 기억했다.

또 ‘88 서울올림픽 레슬링금메달리스트인 한명우 전무는 "15년간 선수촌 생활을 하면서 만난 체육인 중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겸손한 인품에 많은 체육인들이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1946년 5월 전북 익산 출신의 박 전 촌장은 1978년부터 3회 연속으로 아시안게임 사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992년부터 국가대표 사격감독, 2008년부터 대한체육회 이사, 2011년 11월 태릉선수촌장을 거쳐 2013년 3월 문화체육관광부 제 2차관을 역임한 체육인이다.

그는 선수촌장 시절이었던 2012년, 대한민국선수단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종합순위 5위를 일궈내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런던 올림픽은 안방에서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금12, 은10, 동11,종합 4위) 이후 최고의 성적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의 박종길 선수촌장. 조영섭 제공

매사에 열정적인 박 전 총장의 복싱사랑은 유난하다.

촌장으로 재직 중에도 복싱대회가 열리면 어디든 열심히 찾아다녔다.

신 종훈 선수가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2011년 바쿠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 할 때는 직접 현장에 찾아가 국제아마복싱연맹(AIBA) 김호 사무총장을 만나고 선수들을 위한 격려의 자리도 마련했다.

신종훈은 은메달 획득으로 박 전촌장의 성원에 화답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공항에서 런던 올림픽 출전 선수단 격려 자리도 주선했다.

그 때 복서 신종훈을 박 대표와 같은 경북 구미 출신이라고 소개해 사기를 북돋아 줬다는 후문이다.

또한 박 전 촌장은 대한복싱협회 안상수 회장과 올림픽 선수 격려금 지급을 논의한 결과 1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대폭 상향 지원하도록 설득해 관철시킨 일화도 남겼다.

하지만 런던 올림픽에서 신종훈(인천시청)은 탈락하고 L급의 한순철(서울시청)이 은메달을 획득해 박 전 촌장 덕분에 상향조정된 포상금을 든든히 챙겼다.

기대했던 신종훈의 노메달에 아쉬워하는 박 촌장에게 필자가 "광복 후 첫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 복싱 플라이급 동메달리스트인 한수안(성균관대) 선생께서 지하에서 같은 청주 한(韓)씨인 한순철 군을 응원해 64년 만에 런던에서 다시 열린 올림픽의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것 같다"고 부연 설명하자 그는 박장대소 했다.

선수촌에서 선수로 지도자로 40년의 세월을 보내며 잔뼈가 굵은 박 전 촌장은 복싱 폼부터 아주 세련된 자세였다.

체육관에서 스텝을 밟는 모습을 보니 오래전 마라토너 황영조와 씨름 천하장사 백승일 등을 지도한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복싱을 수련한 경험이 없음에도 수준급이었다.

박 전 촌장의 이 같은 복싱 사랑은 티롤 관광호텔 박종천 회장과 만나자 마자 호형호제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재경 익산 향우회장이기도 했던 박 전 총장은 고향 모임에서 장수 향우회 회장인 박종천 회장과 첫 인사를 나눴는데 경기인 출신 특히 복서출신이라는데 더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1959년 전북 장수 출신으로 중학을 졸업한 1975년 2월, 전국을 돌며 유랑생활을 하던 박 종천은 1977년 서울역 앞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석간신문을 팔기 시작했다.

이후 강남·북을 오가며 주점. 유통업. 식자재 납품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어느 날,
청량리에 있던 서울복싱체육관에 입관해 복싱을 수학한다.

비슷한 시기에 김득구가 인생의 전환점을 염두에 두고 입관을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박종천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호신용으로 주먹 쓰는 법을 배웠다.

1990년 서울 신인선수권대회 웰터급 우승자인 박종천. 조영섭 제공

이 체육관은 미들급 동양챔피언 고(故) 이금택 옹(단국대)이 운영하는 복싱장이었다.

이금택은 1965년 제2회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과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 은메달을
각각 획득한 뒤 1967년 3월 프로로 전향해 1970년 1월 최성갑을 꺽고 동양 미들급 왕좌에 올랐다.

1971년 1월 일본 원정경기에서 케시어스 나이또에 판정패해 챔피언 벨트를 풀었다.

같은 해 7월 나이또에 6회 KO승으로 챔피언에 등극한 유제두(수경사)의 1차 방어 상대로 챔피언 복귀를 노렸지만 판정으로 고배를 마시고 이어진 1972년 6월 재대결에서도 3회 KO패를 당해 23전 18승(10KO승) 3패 2무의 기록으로 링을 떠났다.

여담이지만 유제두는 이금택과의 첫대결에서 받은 파이트 머니 100만 원으로 서울 마포에 18평 아파트(APT)를 구입할 정도로 당시 정상급 복서들의 파이트머니는
지금과는 천양지차였다.

이곳 체육관에서 박종천은 대통령배와 전국체전에 출전할 체육관 자체 선수 선발전에서 6연승(5KO승)을 거둘 정도로 출중한 타격기술을 선보인다.

이금택 관장은 내심 프로로 전향시키기 위해 그를 설득했지만, 그는 풍운아 김득구처럼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복싱에 매진하지 않았다.

그는 복싱장과 일터를 오가며 달동네에서 13번이나 셋방살이도 옮겼다. 역경과 시련, 좌절로 점철된 설움을 샌드백을 치며 고집과 뚝심으로 버티는 철인 같은 인내심을 배웠다.

초인적인 의지로 사업에도 전력투구했다. 모텔을 인수하면서 사업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일어나면 넘어지고 올라가면 떨어지는 악순환의 반복에도 복싱으로 단련된 다부진 추진력으로 하나하나 해결하고 완성해 나갔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박 회장은 “인생은 한마디로 다이나마이트다. 가슴속의 잠재력을 폭발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1980년대 후반 미아리 88체육관으로 옮긴 박 종천은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서울 신인선수권에 출전, 파죽의 4연승(3KO승)을 거두며 웰터급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후 MBC 신인왕전에 출전 3회전에서 고배를 마시자 복싱 조력자로 변신했다.

1990년 MBC 신인왕전에서 7전 전KO승으로 최우수복서로 선정된 jr 페더급 한상협을 비롯해 1992년 8월 KBC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최봉호(범진)를 10회 판정으로 잡고 국내 페더급 정상에 오른 김춘현 등 복서들을 후원하며 조력자의 역할도 성실히 해냈다.

사업에도 매진해 2010년 서초구 칸쿤호텔을 인수하고 2016년에는 잠원동 티롤 관광호텔까지 접수해 평범을 비범으로 환치 하는 사업가로 우뚝 섰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뚜렷한 목표의식이다. 박종천 회장 역시 목표를 달성하려 발이 닳도록 뛰었기에 성공을 가져 왔다.

복싱으로 배운 담력과 추진력으로 가난을 극복한 박종천 회장. 조영섭 제공

그가 밑바닥에서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지 않고는 누구도 쉽게 평가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의 성취다.

이는 링 위에서 성공을 사회에서 성공으로 연결한 최초의 복서 김기수 이후 보기 드문 복싱인의 성공 사례로 복싱인의 한사람으로 매우 자랑스럽고 경사로운 일이다.

박 회장은 필자와 33년째 인연을 맺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소탈하고 겸손하다.

화성시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박 회장은 “고난은 감춰진 축복” 이라는 말을 남겼다.

역경을 성공의 밑거름으로 만들어낸 복서 박종천의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환한 미소와 함께 오래도록 여운을 드리우는 결어(結語)였다.

조영섭 객원기자(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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