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탐방]예순여덟 '입신' 허의식 "'국대' 되는 그 날까지 선수로 뛸 터"

16년간 품새 선수로 뛰며 국가대표 도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
올 6월 2022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티켓 획득, 꿈 구현 눈앞에 둬
45년간 '스승의 길' 걸으며 지역사회 발전 위한 봉사활동에도 최선
끝없는 '품새 사랑', 대한체육회 체육상 공로상 수상으로 평가받아

45년 동안 제자 양성의 길을 밟아 온 ‘영원한 스승’ 허의식 사범(좌우 사진 오른쪽)이 수련생들과 함께 품새를 수련하고 있다. 허의식 제공

우리 나이 예순여덟이다. 태권도 9단이다. 벌써 9년이 흘렀다. 2012년, 신의 영묘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입신(入神)'에 올랐다.

태권도계에서, 쌓아 온 경력은 대단하다. 대한민국태권도협회(KTA) 대회위원회 품새 본부장(2020년)과 품새 경기력향상위원장(2018~2019년)을 역임했다. 지금은 국기원 기술심의회 부의장이자 태권도9단연맹 부산광역시지부 회장으로, 태권도 발전에 헌신하고 있다.

아울러 사범으로서 후학을 양성한다. 부산에 둥지를 튼 세심 태권도장(태권도체육관) 관장으로서 태권도 저변 확대에 이바지하고 있다. 스승의 길에 들어선 지도 반세기에 가까운 45년이나 됐다.

또 하나 정열을 불사르는 부문이 있다. 여전히 선수로 활약한다. 그야말로 식지 않는 노익장의 열정은 감탄을 자아낸다. 한결같이 국가대표의 꿈을 부풀리며 온 힘을 다하는 허의식 사범이다.

◇ 16년간 키워 온 국가대표 꿈 구현 눈앞에…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 티켓 획득

지난 6월 태백 고원체육관에서 열린 제18회 KTA 회장배 태권도 품새 선수권 대회에서, 허의식 사범(오른쪽)이 연기하고 있다. 허의식 제공

허 사범은 지난 3년간(2018~2020년) 고행의 나날을 보냈다. 선수로서 품새 코트에 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절히 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KTA 대회위원회 품새 부문 중요 임원으로서 선수로 출전할 수는 없었다.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임원석에서 선수의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다음 동작을 그려 보며 연기하는 자신을 깨닫고 깜짝 놀라곤 했다. 쑥스러워서 눈치채이지 않게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열망을 이뤘다. 지난해를 끝으로, 품새 본부장을 물러나며 비로소 '출전 자격'을 얻었다.

지난 6월 태백 고원체육관에서 열린 제18회 KTA 회장배 태권도 품새 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65세 이상 부문에 출전했다. 3년 동안 묵혔던 솜씨를 코트 위에서 내뿜은 그는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소 떨렸다. '그 나이에 뭘 떨기까지 하냐?'고 웃을지 모르지만, 오래간만에 오른 실전 무대라서 그런지 전혀 긴장하지 않을 순 없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동메달을 땄다. 썩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았다. 오랜 공백을 깨고 오른 첫 무대에서 입상했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소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2 고양 세계 품새 선수권 대회 출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티켓을 획득해 스스로를 달랠 수 있었다.

"16년 동안 품새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 왔으나 아직 이루지 못했다. 최종 선발전까지 남은 몇 개월 동안 더욱 정진해 기필코 태극 도복을 입고 싶다."

2005년, 그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쉰 살)을 갓 넘어서며 품새 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꾸준히 대회에 출전했으나, 번번이 국가대표 발탁 한 걸음 앞에서 고배를 들곤 했다. "더는 좌절의 쓰라림을 맛보지 않겠다."라고 굳게 다짐하는 그의 모습에선, 희망의 빛이 엿보인다.

◇ "먼저 사람이 돼라"… 45년간 제자 양성하며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헌신

허의식 국기원 기술심의위 부의장이 밝히는 자신의 삶에선, 가득한 ‘태권도 사랑’이 엿보인다. 최규섭 기자

54년 전인 1967년, 허의식 사범은 중학교(서귀포 대정)에 들어가며 처음으로 태권도복을 입었다. 고교(대정)를 거쳐 군(제주 해역사령부) 시절까지 도민 체육대회 등에서 겨루기 선수로 활약했다.

군 복무 후 부산에 새로 둥지를 튼 1976년 말, 지도자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한독 종합체육관 태권도 사범이 그의 첫 직함이었다.

1984년 자신의 첫 작품인 신광 태권도장을 열며 본격적으로 제자 양성에 들어갔다. 20세기도 저물어 가는 1998년엔, 해운대 신도시로 보금자리를 옮기며 이름도 세심 태권도장으로 바꿨다.

도장 이름인 '세심(洗心)'에서, 그의 지도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늘 '먼저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다. 무릇 태권도인이라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심신을 닦아야 한다."

그가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 가려는 마음가짐도 이 맥락에서다. 자신이 태권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동안 울타리가 돼 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청소년 보호관찰 위원으로서도 활동하는 그는 ▲ 청소년 선도를 비롯해 ▲ 장학 사업 ▲ 지역 방범 ▲ 방역 살포 ▲ 등하교 도우미 등 지역사회 발전의 밀알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파트별 사범(3명)과 함께 제자를 양성하는 그는 틈틈이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는 데도 땀을 쏟는다. 새벽 수련 1시간까지 하루에 4~5시간 연마에 공들인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그의 마음가짐은 만학(晩學)의 열정에서도 한 자락을 찾을 수 있다. 불혹(不惑: 마흔 살)을 바라보던 2000년에, 그는 뒤늦게 부경대학교를 졸업(해양스포츠학과)했다. 이어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체육학)도 취득했다.

◇ 영원한 '품새 사랑', 세계 무대에서 대풍가 부른 한국 품새 밑거름

허의식 사범(앞줄 왼쪽)이 제자의 발차기에 미트를 잡아 주고 있다. 허의식 제공

절제된 균형미(공인 품새)와 화려한 연기(자유 품새)가 인상적인 품새는 스포츠 종목으로서 연륜은 극히 짧다. 2006년에 제1회 세계 품새 선수권 대회가 열렸을 만큼 경기 종목으로서 역사가 일천하다. 아시안 게임에선,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 비로소 첫선을 보였다.

이처럼 아직 품새에 대한 인식이 채 확립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허의식 사범은 품새를 사랑하고 열정을 불살랐다. 품새가 스포츠 종목으로 뿌리내리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온 힘을 다했다.

그의 정열은 2018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품새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그해 세계 선수권 대회와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구성 때 공정성과 객관성을 두루 갖춘 시각으로 한국 태권도가 최고 성적을 거두는 데 기여했다.

한국은 타이베이(臺北)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23개(총 36개 세부 종목),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2개(총 4개 세부 종목)의 금메달을 각각 획득하며 대풍가를 불렀다.

이런 헌신은 객관적 평가에서도 입증됐다. 지난 2월 23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67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시상식서, 그는 공로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태도는 후배의 귀감이 된다. 품새의 저변 확대와 활성화에 힘쓰면서도 기량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고 선수로 활동하는 자세엔, 기품마저 서려 있다.

원만한 성격으로 '인화'를 중시하는 그는 한국 품새 발전의 주춧돌로 자리매김해 간다. 그가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그 날, 한국 품새 역사에 색다른 한쪽이 쓰이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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