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3위 밖에 못했어요. 다 이겼다 하는 순간 역전패 당해 결승에도 오르지 못한 경우가 허다해요."
태권도 여고부 –45㎏급 유망주 박서정(고양고 2년)은 그 간의 성적을 묻자 풀이 죽은 듯 이렇게 말했다.
박 선수는 올해 경희대총장기와 종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그쳤다. 중학생이던 2년 전 문광부 전국대회에서도 3위였다.
지난달 21일 열렸던 전국체전 경기도대표 선발전에서는 오랫만에 결승에 올랐으나 역시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핀급 선수로는 큰 신장인 165㎝인 그는 대한태권도협회 선정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에 뽑힐 만큼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큰 키에도 핀급을 어렵지 않게 유지하는 박서정은 유망주다. 전문가들은 "박서정이 한 번이라도 정상에 오르면 무서운 선수가 될 것"이라고 칭찬한다. 서완석 기자 그의 장점은 다양한 돌려차기와 뒤후리기 기술이다. 긴 앞발을 이용한 경기운영능력도 일품이다. 체력도 좋다. 평소 자기 관리에 엄해 큰 키에도 체중유지를 잘한다. 여자부 핀급은 더 내려갈 데 없는 '마(魔)의 체급'이다.
하지만 박 선수는 경기 후반부 스스로 무너진다. 멘탈이 약한 탓이다. 기술적으로 왼발 공격이 약한 면이 있지만 패인은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박서정은 "3라운드 막판이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영상을 찾아보면서 노력하지만 안된다. 자신감이 계속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안진우 감독과 약점인 왼발차기를 훈련하는 박서정. 서완석 기자 안진우 고양고 감독은 "서정이가 금메달을 한 번 따기만 하면 무서운 선수가 될 것" 이라며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안진우 감독과 함께 한 박서정(왼쪽). 서완석 기자 7살부터 태권도장을 다녔던 박서정은 축구선수를 했던 아버지(박성인)와 육상을 했던 어머니(김수현)의 응원을 업고 초등학교 6년 때부터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걸었다.
고양 제일중 시절부터 늘 유망주로 뽑혀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늘 정상일보 직전에서 좌절했다.
이런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훈련이 아니라 심리훈련이다. 심리분석을 통해 패배의 원인을 찾고 멘털 강화 훈련을 장기적으로 하는 것이다.
스포츠심리학자인 노갑택 교수는 "패배하는 선수에겐 승리를 방해하는 다양한 부정적 요인이 있다"면서 스포츠심리 상담을 받아 볼 것을 권유했다. 서완석 기자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노갑택 명지대 교수는 "자주 지는 선수, 결정적 순간에 역전패하는 선수들의 머릿속에는 승리를 방해하는 부정적 생각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면서 스포츠 심리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 볼 것을 권유했다.
노 교수는 "결정적인 순간을 넘기지 못하는 선수는 운동을 안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면서 "심리기술훈련, 심상훈련을 꾸준히 받아 멘탈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흔히 지도자들이 결정적인 순간 '긴장하지 마라', '집중하라'고 주문하지만 긴장하지 말도록 어떻게 하라는 지도는 잘하지 못한다"면서 "스포츠 심리 상담을 통해 심리 강화 훈련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이수하면 기술 훈련보다도 훈련 효과가 더 클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체력이 강점이나 3라운드 막판 멘털이 쉽게 무너진다는 박서정. 서완석 기자 노 교수에 따르면 실제 운동선수 상담 결과 평소 자신의 코치들에게 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애로를 털어놓는 사례가 많고, 펑펑 우는 선수도 있다.
상담 후에는 가슴이 후련하다는 선수도 있다. 어떤 선수는 은퇴를 앞두고 상담 후에는 선수 생활을 연장하는 사례도 있다.
스포츠 심리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웬만한 프로 스포츠팀은 스포츠 심리 상담사를 상주시키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 훈련소인 진천선수촌도 마찬가지다.
노 교수는 "선수와 상담할 때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진단하는 수 십개의 체크리스트가 있다"면서 "선수들의 부진원인이 심리적인 문제인지 또 다른 문제인지 원인을 찾아 대처하면 실력향상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