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생활체육]코로나19 여파로 MZ세대 골프로 대거 유입… '럭셔리 문화' 선도

코로나19로 해외여행 막히면서 골프로 전환
비즈니스 수단이던 기성세대와 달리 즐기는 골
개성적인 패션, 체계적 레슨…새로운 골프장 문화

코로나19로 인해 MZ세대들이 대거 골프를 즐기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서완석 기자

25세 직장여성인 A씨는 이른바 '골린이'(골프+어린이)다. 퇴근 후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서 골프를 배운지 5개월이 됐다. 그는 3개월이 지날 무렵 처음 골프장에 나간 날을 잊지 못한다.

"새벽안개가 피어오른 골프장 부근 풍광도 이채로웠지만 드넓은 골프코스에서 볼을 치고 이리 저리 뛰었던 기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1번홀에서 티샷 때 떨리기도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 같아 흥분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골프가 비용이 다소 많이 들지만 멋지게 조경이 된 골프장과 관련 시설을 이용하는 럭셔리한 기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A씨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골프에 입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30대 이하 골퍼는 70만 명 정도로 추산됐다. 하지만 지난해 100만 명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115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들로 인해 주중에도 부킹이 어려울 만큼 골프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른바 MZ세대(밀레니엄+Z세대·1980~2000년 초반)인 이들이 골프를 즐기면서 기존 골프문화와 다른 차별화된 문화가 골프계에 등장하고 있다.

이들 MZ세대는 골프 입문 동기부터 기성세대의 그것과 다르다. 중장년층에게 골프는 주로 비즈니스 수단이었다.

골프는 사업상 접대 수단의 이미지가 강했다. 골프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골프에 입문해도 비즈니스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골프에 대한 과거 이미지는 어두웠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많은 것을 바꿨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수영, 헬스, 요가 등 젊은 층이 즐기던 스포츠 시설들이 폐쇄됐다. 이에 따라 골프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무엇보다 답답한 실내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젊은 층들이 인식했다.

1년에 한번 정도 해외여행을 즐기던 MZ세대는 해외여행이 막히자 여유 자금을 골프를 즐기는 쪽으로 돌렸다.

독립적이며 개성이 강한 MZ세대에겐 '소수의 또래끼리' 즐길 수 있는 골프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다양한 해외문화를 접한 이들은 골프장이 가져다주는 럭셔리한 분위기를 만끽할 준비가 돼 있었다.

MZ세대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골프연습장에서 충분한 레슨을 받은 뒤 라운딩을 나간다.

이들이 골프를 즐기는 방식도 기성세대와 달랐다. 이들은 철저한 준비 끝에 골프장에 나온다. 골프연습장이 주변에 많아진 때문이긴 하지만 MZ세대들은 적어도 몇 달간 기본기를 익힌 뒤 골프장에 나간다.

"레슨도 받지 않고 나가 머리 올리는 날부터 내기를 했다"는 전설적인 기성세대의 얘기는 이에 옛말이 됐다.

이에 따라 골프연습장도 이들 젊은 수강생들로 인해 호황이다. 직장인들도 많고, 함께 오는 부부도 많다.

실내연습장을 운영중인 문종관 프로는 "지난 1년 간 레슨을 받으려고 오는 친구들은 과거와 달리 대부분 20~30대로 젊다"면서 "이들은 골프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많이 보고, 굉장히 학구적이어서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밤10시까지 영업제한 시간이 걸려있지만 마지막 시간까지 남아 연습에 열중하는 골퍼는 대부분 이들 세대다. 방과 후 밤늦게 학원을 다녔던 이들 세대에게 늦은 밤 골프연습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과일 수가 있다.

이들은 잘 '준비된 골퍼'지만 패션에 있어서도 개성을 버리지 않았다. 초미니스커트가 여성 골퍼들의 단체복처럼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남성 골퍼들의 볼멘소리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MZ세대들의 주도하는 골프 패션에 맞춰 의류업체들이 다양한 골프웨어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골프 패션은 더욱 화려해졌다. 이들을 겨냥한 유통업계도 바삐 움직였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 6월부터 골프관련 매장을 30% 가량 키웠다. 현대백화점 골프 관련 용품 매출은 전년 대비 135%나 늘었다.

골프 패션 브랜드는 100개 정도였으나 올해 50개나 새로 론칭해 150개가 됐다, 온라인 유통업체들도 골프웨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패션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는 기성 골프웨어 대신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자신만의 맞춤복 골프웨어를 구입하기도 한다.

이들은 골프장에서 자신들만의 골프문화를 만들고 소비한다. 골프장에서 사진 찍는 이들은 늘어난 것도 새로운 풍경이다.

10년차 캐디 B씨는 "과거 세대들은 라운딩 앞두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정도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골프장의 경치는 물론 동반자들의 샷 장면까지 매 홀마다 사진 찍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서 "SNS에 익숙한 이들이어서 라운딩도 소통의 기회로 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크린골프도 MZ세대의 골프장 유입에 한 몫을 했다. 코로나19 탓에 이들이 대거 골프장으로 몰려나온 것이다. 이들이 스크린골프장에서 익힌 간접적인 체험은 더욱 골프에 몰두하는 데 기여했지만 일부 부작용도 있다.

캐디 B씨는 "퍼팅을 앞둔 젊은 골퍼가 '왜 그린에 선이 그어져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해 한바탕 웃은 적 있다"면서 "스크린에서의 경험과 실제 라운딩과의 차이점을 몰라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쏟아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골프의 인기를 반영하듯 공중파는 물론 종편 채널에서도 골프 스타와 함께 하는 골프 예능프로그램을 앞다퉈 방영하고 있다. JTBC에서 방영 중인 세리머니 클럽의 한 장면. JTBC 화면 캡처

주 소비층이기도 한 이들의 골프 사랑에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매체들이 골프를 소재로 한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앞다퉈 내놓고 있는 것도 최근의 일이다. 공중파는 물론 종편채널은 박세리, 김미현 등 전직 프로골퍼는 물론 이승엽, 강호동, 이동국 등 스타 운동선수출신과 연예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골프 인기가 급증하면서 골프 유튜브의 인기로 급상승하고 있다. 김구라, 박노준이 만드는 뻐꾸기골프 TV 장면이다. 뻐꾸기골프 TV 화면 캡처

유튜브에서도 골프가 대세다. 개그 프로그램 폐지로 수입원을 잃은 개그맨과 연예인들이 골프 관련 유튜브 채널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또 수많은 골프 교습가들이 유튜브에 골프 레슨 영상을 올려 레슨 프로그램이 풍성해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진정되지 않은 한 이같은 MZ세대의 골프사랑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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