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탐방]반세기 '수제 축구화' 장인 김봉학… "그래도 찾는 사람 있어서"

코로나 19 악화, 집세폭등에도 가게 유지
1인 기업으로 코로나 19, 집세 폭등, 직원 감소의 파고 극복위해 노력
병마와 싸우면서도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에는 흔들림 없어
선수들 조언 들어 '돌기형축구화'·'발목축구화' 개발

경기도 양주로 이전한 수제축구화 전문점 "신창 축구화". 김봉학 제공

지하철 1호선 양주역 근처 경기도 양주시 외미로의 상가 골목에 들어서면 복고풍 느낌을 주는 조그마한 간판 '신창 축구화'가 눈에 띈다.

48년째 축구화를 제작하는 수제축구화의 장인 "김봉학". 김봉학 제공

13살부터 시작해 48년째 수제 축구화를 제작하는 축구화 장인 김봉학(61)사장이 운영하는 가게다.

김 사장은 지난 4월 초까지 수십 년간 지하철 2·5선이 지나는 교통요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인근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브랜드 축구화가 대세를 이루다 보니 '요즘도 축구화를 맞추는 사람이 있어요?' 라고 물을 정도로 일감이 줄었다.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19는 그나마 오던 손님들의 발길마저 멈추게 했다. 한창 수제 축구화가 잘 나갈 때부터 일하던 직원들도 가게를 떠난 지 오래다.

신발 바닥재부터 재단, 미싱 등 분야별로 분업을 했던 직원들이 자리를 비우니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을 다 하며 근근이 생업을 이어갔다.

이런 김 사장의 타는 속사정과 달리 집세는 야속할 정도로 오르기만 했다. 병마까지 찾아 온 김 사장의 버티기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지난 4월 10일 양주로 이사를 하고 말았다.

거리도 멀고 교통여건도 녹록치 않아 하루에 손님 한명 찾기 힘든 장소지만 한땀 한땀 축구화 가죽을 꿰매는 김 사장의 정성에는 변함이 없다.

모든 제조 공정을 혼자서 하는 수제축구화 제작 과정. 김봉학 제공

"그래도 찾는 소비자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주문에 맞게 성심껏 작업하는 게 저의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한다는 표정으로 답을 하면서 그의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50년 가까이 지켜 온 장인정신은 때와 장소, 손님을 가리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 사장의 축구화는 신어본 사람이면 대부분 단골이 되는 '안성맞춤 축구화'로 정평이 나있다.

양쪽 발의 모양이 다르거나 발가락이 길어 기성 축구화를 신으면 불편할 정도로 변형된 발을 가진 사람들은 김 사장의 맞춤 신발로 문제를 해결한다.

5년 전쯤 한쪽 발이 다른 발과 2.5cm나 차이가 나 큰 고통을 겪던 한 고등학생 선수가 무난히 공을 계속 찰 수 있도록 해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처럼 개개인 발의 특성에 맞는 축구화 뿐만 아니라 축구공을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며 선수도 보호하는 제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조기축구회 회원인 김 사장은 일요일마다 뛰는 현장 경험을 토대로 신제품을 만들었다.

직접 공을 차보고 또 선수들의 조언을 들어가며 수정, 보완한 제품들은 연구실에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유명 브랜드의 축구화 이상으로 선수들의 실력 발휘에 도움이 됐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그가 현장 연구와 경험을 접목해 만든 축구화로는 마법의 프리킥에 사용되는 '돌기형 축구화' 거친 태클에 발목을 보호하는 '발목 축구화' 등이 있다.

정교한 프리킥을 위해 개발된 '돌기형 축구화' .김봉학 제공

집안이 가난했던 김 사장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먹여주는 곳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 축구화 만드는 곳에서 제대로 기술을 익혔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닥친 세계적인 거대 스포츠용품사들의 국내시장 잠식에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고 만다.

배운 게 축구화 바느질인 김 사장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공장을 차려 독보적인 기술력까지 인정받기에 이른다. 덕분에 공정별로 일을 나눠하던 직원들과 밤을 지새기 일쑤였다. 하루 80켤레 이상 만드는 호황을 누리고 북한사람들에게 축구화 만드는 기술까지 알려주던 시절이다.

선수 보호를 위해 고안한 '발목 축구화'. 김봉학 제공

하지만 축구화 제조가 사양 산업이 되고 영세업체에서 주말까지 일하는 청년들도 사라지는 산업 생태계변화에 김 사장은 또 한계를 맞고 있다.

"1인 기업"으로도 수제축구화를 계속 만들겠다는 것이 김봉학의 꿈이다. 김봉학 제공

오로지 남은 것은 사는 동안은 소비자들과 수 십 년 쌓아온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김봉학표' 축구화를 만드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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