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체험]한양도성길 흥인지문 구간… '전차개설·운동장 건설로 훼손된 도성'

흥인지문~장충체육관 1.8㎞
일제 때 경성운동장 건립으로 성벽 대거 훼손
청계천 오간수문은 철거, 이간수문은 원형 발굴
동대문운동장기념관에는 근현대 한국스포츠 숨결이
장충동 주택가, 성벽돌로 쌓은 주택 담장 수두룩

한양도성길 제 3구간은 흥인지문에서 장충체육관에 이르는 1.8km 구간이다. 서울시 홈페이지

한양도성길 제 3구간은 흥인지문(동대문) 구간이다. 흥인지문에서 광희문을 지나 장충체육관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길이 1.8㎞로 전체 6개 구간 중 가장 짧다. 훼손도 심해 도성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전차개설로, 일제 강점기에는 도시계획과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 건설 등들 이유로 훼손됐다. 해방이후에도 주택건설 등으로 성벽 대부분이 철거됐다. 지금도 장충동 옛 성벽 옆 주택가에는 성벽돌로 담을 쌓은 집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양도성길 제3구간의 시작은 흥인지문(동대문)이다. 서완석 기자

출발은 지하철 1, 4호선 동대문역 6,7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출구를 나오면 바로 앞에 흥인지문이 우뚝 서 있다. 흥인지문은 고종 때(1896년)에 개축을 해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있다. 그래서 보물 1호로 지정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한양 사대문과 사소문의 이름은 모두 세 글자인데 이 문만 유독 네 글자일까. 고종 이전 철종까지 실록에 흥인지문이란 글자가 없는 것으로 봐 고종 때 개축하면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한양의 4방위 중 유독 지세(地勢)가 약했던 동대문에 지(地)와 같은 발음인 지(之)를 덧붙였다는 얘기가 설득력있다.

흥인지문에서 성벽은 헐려 인도 보도석에서 흔적을 찾을 뿐이다. 서완석 기자

도성의 흔적은 인도 바닥에 '한양도성'이라 새겨진 보도석으로 이어진다. 이마저도 건물이나 도로로 인해 곧 끊긴다. 청계천을 건너는 오간수교 난간은 여장(女墻·성벽 위에서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방패 역할을 하던 낮은 담장)을 쌓아 이곳이 옛 성곽길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오간수교 아래 조성해놓은 과거 오간수문 사진(왼쪽). 서완석 기자

한양은 서고동저(西高東底) 지형이다. 초기 성벽 축조자들은 청계천이 흐르는 이곳의 성벽 축조에 고심했을 법하다. 청계천 위에는 수문이 5개인 오간수문(五間水門)을 만들어 그 위로 성벽을 쌓았다.

오간수교 아래 이벤트성으로 재현해 놓은 오간수문. 서완석 기자

이 수문은 1925년 경성운동장 건립을 구실로 철거됐고 현재 그 자리에 '오간수교' 라는 교량이 서 있을 뿐이다. 교량 아래 오간수문을 흉내 낸 구조물이 있어 어렴풋이 옛 모습을 추측할 뿐이다.

원형으로 발굴된 이간수문과 그 옆 동대문운동장 조명탑 모습. 서완석 기자

또 다른 수문인 이간수문(二間水門)은 다행히 원형이 보존돼 있다. 수문이 2개다. 이 역시 경성운동장 건립을 이유로 사라졌으나 2007년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건립하는 과정에서 땅속에 매몰된 이간수문이 발견됐다.

남산과 장충동에서 흘러오는 물줄기에 설치된 이간수문 위에 서울시는 광희문 쪽으로 성곽 일부를 복원했다.

동대문 일대는 국내 최대의 의류 쇼핑 장소다. DDP의 기괴한 건축물과 각종 전시회도 볼거리다. 하지만 스포츠맨이라면 이곳이 한국스포츠의 요람인 과거 동대문운동장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이간수문 바로 옆에는 과거 동대문운동장을 회상할 수 있는 거대한 조명탑이 홀로 우뚝 서 있다.

근현대 한국스포츠를 추억할 수 있는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모습. 서완석 기자

동대문운동장기념관 내 손기정 기념부스. 서완석 기자

바로 옆에는 동대문운동장기념관이 있어 한국 스포츠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다. 과거 이곳 야구장과 종합운동장에서 뛰었던 수많은 스포츠스타들의 옛 모습을 기념관에서 찾을 수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성화를 밝힌 성화대가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옆에 안치돼 있다. 서완석 기자

기념관 밖에는 옛 동대문운동장 성화를 밝혔던 성화대가 자리잡아 옛 영광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수구문, 시구문으로 불렸던 광희문.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던 문이다. 서완석 기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에 이어 장충동 쪽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광희문이 나온다. 한양 사소문의 하나로 이간수문 등 수문과 연결돼 있어 수구문(水口門)이라 불린다. 도성에서 죽은 사람의 장례행렬이 이 문을 통해 나갔으므로 시구문(屍柩門)이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이 문을 통해 달아난 왕도 있었다. 바로 인조다. 병자호란 때 청에 쫓긴 인조가 허둥지둥 남한산성으로 도피했던 비운의 문이기도 하다.

한양도성길을 벗어나 주택가로 가보면 성벽돌이 주택담장이나 축대로 버젓이 쓰이고 있다. 서완석 기자

여기서부터 성벽은 사라진다. 장충동 주택가로 이어졌을 성벽은 흔적조차 없다. 한양도성길을 벗어나 안쪽 주택가로 일부러 가봤다. 곳곳에 성석이 주택 담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한양도성 성벽돌은 장충동 주택과 담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심지어 마름모꼴로 쌓는 일본식 축대 방식과 뒤섞인 담장도 보여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서완석 기자

심지어 축대석로 이용되면서 마름모꼴인 일본식 축대 양식과 함께 활용된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그 길의 끝에 오른쪽 건너편엔 장충체육관과 신라호텔이 보인다. 흥인지문 구간의 끝이다. 이제 성곽의 흔적은 남산으로 이어진다.

한양도성길 제 3구간 끝에는 장충체육관과 신라호텔이 보인다. 서완석 기자

한양도성은 장충체육관 옆 남산으로 이어진다. 서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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