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可타否타]한국 스포츠의 도쿄 참패,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도쿄올림픽 부진은 예고된 성적표
엘리트 스포츠 비하 풍조도 한 몫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 예전만 못해
일본은 스포츠청 신설, 엘리트 체육 집중 육성

한국 스포츠는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근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양궁에서 3관왕을 달성한 안산. 자료사진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미국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한국 스포츠는 '우물쭈물 하다' 도쿄 올림픽에서 근래 최악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메달 20개(금6, 은4, 동10개)로 전체 16위를 차지한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9위 이래 가장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사실 한국 체육을 염려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성적이 예견된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욱 더 무너져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은 인사도 있었다. 한국 스포츠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왜 참패를 당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한국 스포츠는 1984년 LA 올림픽 이래 세계 10위권의 성적을 지켜왔다. 군사 정부 시절부터 한국 스포츠는 북한과의 체제 경쟁의 선봉에 섰다.

일제 강점기 악몽이 생생하던 당시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무조건 이겨야 했다. 정부는 문화재 구역인 태릉에 선수촌을 만들어 국가대표 선수들을 특별히 양성했다.

연금제와 군 면제 제도도 만들어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했다. 그 결과 한국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북한과 일본을 따돌리며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성가를 드높였다. 적어도 종합 5위에 올랐던 2012 런던 올림픽 때까지는 일본에 늘 앞서 있었다.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은 한국 올림픽 육상 트랙앤필드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자료사진

한국 스포츠가 세계 10위권을 늘 지켰던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외에 기업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삼성, 현대차, SK, 포스코 등 대기업은 경기단체를 지원하거나 팀을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한국 스포츠의 젖줄 역할을 자임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일본(6위)에 역전당했지만 8위를 유지했던 한국이었다.

늘 한국에 뒤지던 일본은 자존심이 상했던지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후 엘리트 체육에 집중 투자를 재개했다. 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도쿄가 2020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낙점을 받자 본격적인 엘리트 선수 육성에 나섰다.

자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의 흥행을 위해 개최도시와 국가가 성적에 목매는 것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또한 일본은 스포츠 행정 일원화와 도쿄 올림픽 종합 3위 목표 달성을 위해 2015년 중앙정부에 '스포츠청'을 개청했다. 일본은 이번에 기어코 3위에 올랐다.

한국이 일본과 반대의 길을 간 것도 그 즈음이다. 생활 스포츠와 엘리트 스포츠의 행정체계를 통합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엘리트 스포츠 비하 풍조는 한국 스포츠 생태계 자체를 흔들었다.

승리가 최우선인 엘리트 스포츠의 핵심인 '승리 지상주의'를 악으로 몰았다. 현 정부 들어서는 한국 스포츠 권력 분화를 겨냥한 갖가지 정책들이 엘리트 선수 육성을 뒷전으로 몰았다.

대한체육회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를 밀어붙이기 위해 아까운 행정력을 낭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해묵은 스포츠 폭력 사태를 과대포장하면서 체육인들의 사기를 떨어트렸다.

게다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기업의 스포츠 지원도 정치적으로 보게 되면서 급기야 대기업의 스포츠계 지원도 주저하게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가 도쿄 올림픽 성적표다.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과연 한국팀의 저조한 성적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이가 있을까. 스포츠에 관한 한 '아름다운 패배'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경의 여자배구가 4위에 올랐다고 '금보다 귀중한 4위'라는 말이 맞기는 한 말인가. 여자배구 4위가 주는 감동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위에 있던 일본, 터키를 꺾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이겨야 갈채를 받는다. 같은 4위라도 야구는 그런 감동어린 승리가 없었기 때문에 비난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학생선수가 훈련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제도개혁이 되지 않으면 고교진학 대신 실업팀으로 직행하는 선수가 계속 나올 것이다. 대한항공으로 직행한 탁구 유망주 신유빈. 월간 핑퐁제공

이제 한국 스포츠를 정상화해야 한다. 여전히 대다수 국민은 국력의 격돌장인 올림픽에서 이왕이면 금메달을 원한다.

월드컵 축구에서 또 다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보고 싶어한다. 우리 뿐 아니라 지구촌 모든 나라가 그렇다. 엘리트 선수는 생활체육인들과 달리 장시간, 특수한 훈련으로 육성된다.

음악, 미술 영재처럼 어릴 때부터 특수한 환경에서 키워져야 세계적인 선수로 자랄 수 있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강조한 나머지 일반 학생처럼 수업을 마친 뒤 훈련하라면 선수로 입신양명하려는 아이들의 행복권을 빼앗는 것이 된다.

학생 선수의 훈련을 제한하는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탁구의 신유빈처럼 고교진학 대신 실업팀으로 직행하는 선수가 계속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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