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NOW]'복식황제' 김동문, 모교서 후학 양성… '생활체육'에도 전력(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복식 금 결실, 올림픽 역사 신기원
라경민과 짝 이룬 혼합 복식에선 잇따른 메달 좌절…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
단식에서 복식으로 주 종목 전환은 전화위복 된 '신의 한 수'
원광대 교수·지도자·행정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
한국 배드민턴 부흥 묘책도 궁구

대한민국 올림픽 영웅들의 그 시절, 그리고 오늘 (3)
올림픽 배드민턴 최다 메달 획득자 김동문 (하)


김동문은 선수 시절 20년간 하태권과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 복식 금메달은 환상의 호흡을 뽐낸 그들의 몫이었다. 시상식에서, 김동문(왼쪽)과 하태권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김동문 제공

스포츠엔 절대 강자가 없다. 영원한 승자도 없다. 언제 어디에서 이변과 파란이 일어날지 몰라 더욱 묘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스포츠의 매력이 있다.

2000년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어느 날 태릉 국가대표선수촌, 시드니 올림픽 장정을 앞둔 한국 선수단 미디어 데이가 열렸다. 취재진의 시선은 김동문에 쏠렸다.

그럴 만했다. 그가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 그것도 두 개씩이나 –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태권, 라경민과 각각 짝을 이룬 남자 복식과 혼합 복식에서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혔다. IBF(국제배드민턴연맹·현 BWF) 세계 랭킹에서, 두 부문 1위를 달리며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데 따른 당연한 전망이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배드민턴 경기는 9월 16~21일(이하 현지 시각) 시드니 올림픽파크 쇼그라운드 파빌리온 3에서 열렸다. 혼합 복식 8강전에서, 김동문-라경민 조는 장쥔(張軍)-가오링(高崚·중국) 조와 맞붙었다.

대파란이 일었다. 철벽을 쌓은 양 패배를 모르는 듯했던 김-라 조가 무너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0:2(11:15, 1:15) 완패였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금메달을 따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듯 힘 한번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쓸쓸히 돌아서야 했다.

자만심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드니 올림픽에 앞서 다른 국제 무대에서 만났을 때, 가볍게 꺾었던 상대였다. 비록 다크호스로 꼽혔으나,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정신 자세를 경기 중 되돌릴 순 없었다.

그는 그래도 하태권과 함께 나선 남자 복식에서 건진 동메달로 어느 정도 쓰라림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러나 라경민은 여자 복식에서도 8강 진출에 그쳐 하나의 메달도 거머쥐지 못했다.



1997 US 오픈에서, 김동문(오른쪽)-하태권 조는 남자 복식 정상에 올랐다. 김동문 제공

"그때를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플레이를 했는지 부끄럽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상대로 만나 내가 아내(라경민·2005년 12월 결혼)가 소망했던 금의 꿈을 깨뜨렸다. 짝으로 나선 시드니 올림픽에선, 내심 '4년 전 맺힌 금의 한을 씻어 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아내를 이끌겠다'고 다짐했는데, 무위로 돌아갔다. 지금도 시드니 올림픽 8강 탈락은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김동문은 미안한 마음에 한동안 짝꿍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절치부심의 4년을 보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한국 선수단 미디어데이에선, 더욱 눈길을 모았다. 전 언론은 이번엔 '금메달 0순위'로 손꼽으며 김동문-라경민 조에 뜨거운 눈길을 쏟아부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경기는 8월 14일 구디 올림픽홀에서 막이 올랐다. 역시 혼합 복식 8강전에서, 김-라 조는 요나스 라스무센-리케 올센(덴마크) 조와 격돌했다.

1번 시드의 김-라 조가 7번 시드의 상대를 손쉽게 물리치리라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0:2(14:17, 8:15) 완패였다. 또 한 번의 좌절이었다.

"끝내 올림픽 금메달을 열망한 아내의 꿈을 이뤄 주지 못했다. 함께 호흡을 이뤄 그렇게 무수히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는데도, 유독 올림픽 무대에 마(魔)가 끼었는지…. 여태 지워지지 않는 미안한 심정이다."

신은 묘한 반전을 감춰 놓고 있었다. 하태권과 짝을 이룬 남자 복식에서, 그는 금메달을 결실했다. 국가대표팀 동료인 이동수-유용성 조를 2:0(15:11, 15:4)으로 완파하고 수놓은 금빛이었다.

올림픽 배드민턴 최다 메달리스트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세 번(1996 애틀랜타-2000 시드니-2004 아테네)의 올림픽 무대에서, 그가 수확한 금 2·동 1개는 2008 베이징(北京) 올림픽 전까지 최고 기록으로 빛났다. 금메달 개수로만은 지금까지도 다른 9명과 함께 나란히 1위 반열에 올라 있다.

아울러 그는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 영광도 안았다. 순도 면에서, 올림픽 첫 금을 수확할 때 짝으로서 공동 선두인 길영아(금·은·동 각 1개)보다 앞선 실질적 단독 1위다.

신은 또 하나의 작은 선물도 마련해 뒀다. 라경민에게 동메달을 안겼다. 라경민은 이경원과 함께 나선 여자 복식 3·4위 결정전에서, 웨이이리(魏軼力)-자오팅팅(趙婷婷·중국) 조에 2-1(10:15, 15:9, 15:7)로 역전승했다.

그가 다소나마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던 값진 동메달이었다.

◇ 순탄한 20년 선수 생활과 행복한 36년 배드민턴 인생

2013년 원광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사회체육학과와 대교 스포츠단은 산학 협력을 맺었다. 협약식을 마친 뒤, 김동문 원광대 교수(오른쪽)와 서명원 대교 스포츠단 단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김동문 제공

오늘날, 선수 김동문은 교수 김동문이 됐다. 모교인 원광대학교 사회체육학과 학과장을 거쳐 현재 학생복지처 부처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학생복지처 산하에 모든 운동팀이 있어 체육실장 역을 소화한다.

그에게 원광대는 가정과 함께 삶을 완성해 나가는 두 둥지 가운데 하나다. 학사(체육교육학·1998년)-석사(체육학·2000년)-박사(체육학·2006년) 학위를 모두 취득한 전당이다.

그는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해 캐나다로 유학갈 만큼 학문에도 정진했다. 2005년, 대한체육회가 시행하는 스포츠 외교인력 양성 프로그램에 합격하면서 열린 길이었다.

2005년 말, 그가 아내와 서둘러 결혼식을 올린 까닭이다. 2004년 초부터 사랑의 감정을 키워 오던 그는 까다롭고 어려운 관문으로 정평이 난 이 프로그램에 합격한 뒤 교제 사실과 함께 결혼을 발표했다.

유학 중 학업과 지도를 병행할 만치 열정적으로 생활했다. 2007년부터 고국으로 돌아온 2011년까지 캐나다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했다.

2011년 9월, 그는 금의환향했다. 모교의 교수직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해 초 아내와 두 자녀는 먼저 귀국했다. 아내가 대교 감독을 맡게 되면서였다.

부창부수라고 할까. 아내도 교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하기도 했던 아내는 2020년부터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KBS 2TV 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예능 재능까지 보인 김동문(윗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다른 출연진과 함께 2016 히우 올림픽서 한국 배드민턴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김동문 제공

"꼬박 20년간의 선수 생활을 비롯해 지금까지 36년 동안 걸어온 길은 순탄했다. 행복한 배드민턴 인생이라고 할 만하다."

전주 진북초등학교 4학년 때 배드민턴의 길에 들어선 그의 삶엔, 별다른 고비가 없었다. 위기였던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1992 종합 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고교생으로서 단식 4강에 올라가며 비로소 국가대표가 됐다. 1991년 주니어대표로 발탁된 뒤 1년 만에 이룬 빠른 성장이었다.

1994년 초까지 단식을 주 종목으로 삼았던 그에게 고비가 닥쳤다. 단식 전문 4명에 들어가지 못하며 국가대표 탈락의 위기를 맞았다.

그때 한성귀 국가대표 감독이 복식, 특히 혼합 복식 전문으로 종목 변경을 권유했다. 그리고 그를 감독 추천 몫으로 국가대표팀에 잔류시켰다. 박주봉을 잇는 '복식 황제'의 명맥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잊지 못하는 고마운 스승은 또 있다. 진북초 시절 배드민턴과 연(緣)을 맺게 해 준 첫 스승인 임채경 감독이다.

그는 3학년 때 잠시 배드민턴부에 적을 뒀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받는 훈련이 고돼 얼마 되지 않아 그만뒀다. 이때 담임 교사가 임 감독이었다.

4학년에 올라갔을 때, 임 감독은 "배드민턴을 다시 해 보지 않겠느냐?"라고 의향을 타진했다. 그는 친구와 함께라면 다시 도전하겠다고 답했고, 임 감독은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 친구가 하태권이었다. 그가 "깊다 못해 끈질긴 인연"이라고 표현하듯, 둘은 이때부터 20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당대를 풍미했다. 진북초-전주 서중-전주 농림고-원광대-삼성전기까지 동고동락하며 세계 남자 복식 마당을 호령했다. 올림픽 금(2004 아테네),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1999 코펜하겐)은 대표적 전과다.

같은 기간 영욕을 같이한 또 다른 두 명이 더 있다. 황선호와 이덕준이다. 한국에선, 김-하-황-이로 이뤄진 4인방이 거쳐 간 팀은 무적이었다.

2016 히우(리우) 올림픽 때, 김동문 SBS 해설위원(오른쪽)과 배성재 캐스터는 멋진 호흡을 연출했다. 김동문 제공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한결같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 한국대학배드민턴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 위원장, FISU(국제대학스포츠연맹) 기술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스포츠를 주제로 한 소통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아울러 대학 스포츠 진흥 및 국제 대학 스포츠 기관과 원활한 정보 교류에 힘썼다.

올해엔, 세 번째 전라북도체육회 이사에 선임되며 향토 체육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1급 전문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데선, 생활체육 분야에도 관심을 쏟고 있음이 엿보인다. 2급 배드민턴 심판 자격증도 갖고 있다.

김동문은 자신이 삼은 과녁을 명중시키기 위해 늘 땀을 아끼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듯, 그가 불태운 열정과 흘린 땀은 품었던 야망을 구현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과제를 안겼다. 한국 배드민턴의 부흥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그의 노력은 한국 배드민턴의 밝은 앞날에 분명 밑거름으로 쓰이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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