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올림픽 영웅들의 그 시절, 그리고 오늘 (3)
한국 배드민턴 올림픽 역사상 최다 메달 획득 김동문 (상)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 복식 시상식에서, 금을 결실한 김동문(왼쪽)-길영아 조가 꽃다발을 들어 올리며 영광을 음미하고 있다. 김동문 제공소년은 벅차올랐다. 신천지를 보는 듯했다. 물 흐르듯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공방전은 눈을 황홀케 했다. 펼쳐지는 신기(神技)의 기술이 신기(神奇)롭기만 했다.
35년이 흘렀다. 그러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때의 감동과 흥분은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날의 장면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1986년 10월 4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 서울 아시안 게임 배드민턴 남자 복식 결승전 무대의 막이 올랐다. 한국의 박주봉-김문수 조와 중국의 톈빙위(田秉毅)-리융보(李永波) 조가 금메달을 놓고 대회전을 벌였다.
뜻밖에도 싱거운 한판이었다. 박-김 짝꿍이 2:0(15:8, 15:10)으로 완승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상황을 꿰뚫는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매서운 공격력과 뛰어난 공수 완급 조절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빚어낸 대첩이었다.
박주봉은 정명희와 짝을 이룬 혼합 복식과 남자 단체전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세 개의 금메달을 수확해 배드민턴 최다관왕의 영예도 안았다.
단연 으뜸의 빼어난 몸놀림은 나어린 그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태산처럼 다가온 존재, 박주봉은 그에게 우상으로 자리했다.
그는 가슴속 깊숙이 아로새겼다. '반드시 저런 선수가 될 테야.' 절로 다짐 또 다짐을 거듭했다.
한국 배드민턴 올림픽 역사상 가장 순도 높은 최다 메달(3개: 금 2·동 1개)을 결실한 김동문의 대야망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 우상이었던 '황제'를 물리치고 올림픽 금빛 정상에 오르다
교수 김동문은 아주 차분하게 36년간의 배드민턴 인생을 되돌아봤다. 쌓인 연륜이 엿보였다. 최규섭 기자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은 역시 진리였을까. 우리 나이 스물두 살의 청년이 된 김동문은 큰 꿈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공교로웠다.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롤 모델, 박주봉을 넘어서며 수확한 올림픽 첫 금 과실이었다.
극적 효과를 배가한 무대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 복식 결승전이었다. 신의 짓궂은 장난이었는지 모른다. 한국을 대표한 두 복식조가 금메달의 향방을 가르는 운명의 한판으로 짜였다.
김동문-길영아 조 대 박주봉-라경민 조, 막이 오르기 전 이미 승패의 저울추는 기울어진 양 보였다. 그럴 만했다. 배드민턴이 올림픽 첫 종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박주봉은 단짝 김문수와 호흡을 맞춰 남자 복식 금메달을 획득한 '전설'이었다. 또한, 1991년 국제 대회 50회 우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데 이어 이 기록을 72회까지 늘려 가던 '황제'였다.
은퇴했다가 애틀랜타 올림픽에 혼합 복식이 새로 채택되며 두 번째 복귀한 박주봉은 제자 라경민을 낙점해 짝을 이뤘다. 과녁은 물론 초대 왕좌였다. 1번 시드를 받고 승승장구하던 박-라 조의 우승은 필연의 결말일 듯싶었다.
반면, 김-길 조는 시드를 받은 네 팀에 들지 못했다. 그만큼 난관을 헤쳐 나가야 했다.
그러나 대단한 기세였다. 8강전에서, 2번 시드 트리쿠스 헤리안토-미나르티 티무르(인도네시아)조를 완파(2:0)했다. 4강전에선, 4번 시드 천싱둥(陳興東)-펑신융(彭新勇·중국) 조를 역시 2-0으로 잠재웠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을 획득하며 국위를 선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1등급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김동문 제공 용솟음친 상승세는 전문가들의 일방적 예상마저 뒤덮었다. 올림픽 배드민턴 혼합 복식 첫 정상을 밟은 영광의 주인공은 김동문-길영아 조였다.
팽팽한 접전 끝에 박-라 조가 1세트(게임)를 15:13으로 마무리하고 가져갔다. 당연한 흐름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대반전을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양상이 돌변했다. 띠동갑 짝인 박-라 조보다는 아무래도 다섯 살 차의 김-길 조가 체력에서 우세를 보이며 밀어붙였다. 상대의 잇딴 범실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김-길 조가 2세트를 15:4로 가볍게 따내며, 흐름은 돌변했다.
승기를 잡은 김-길 조의 공세는 3세트에서도 계속됐다. 15:12, 역전극으로 매조지한 김-길 조는 신이 내민 행운의 손길을 맞잡았다.
배드민턴 코트를 호령하던 선수 시절의 모습이다. 셔틀콕을 쫓는 시선은 상대를 압도할 듯하다. 김동문 제공"부담 없이 나선 마지막 한판이었다. 한 수 가르침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경기에 임했다. 까마득한, 제자 같은 후배를 맞이한 박주봉 선배님이 부담을 많이 느끼셨던 것 같다."
김동문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첫 올림픽 출전에서 거둔 망외의 대성과였기에, 더욱 감격스럽고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흥분이 가라앉으며, 다른 감정이 엇갈려 스쳐 갔다. 미묘한 감정의 교차였다.
"우러러봤고 닮고 싶었던 선배님이었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분의 연승 행진을 가로막고 거둔 승리라,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학창 시절 박주봉이 지나간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둘은 중·고등학교 동문이다. 전주 서중-전주 농림고(현 전주 생명과학고) 11년 차 선후배다.
똑같이 고교생 A국가대표었다. 박주봉은 고교 1년(1980년) 때, 그는 고교 2년(1992년) 때 각각 한국을 대변하는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 라경민과 짝 이뤄 천하무적 기세 뽐내… 짝꿍에서 인생의 반려자로 발전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태릉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혼합 복식 짝꿍인 라경민과 포즈를 취했다. 둘은 이듬해 인생의 반려자가 됐다. 김동문 제공신이 안배하는 인생은 참 교묘하다. 지나간 뒤 되돌아보면 '운명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도 때로는 고소도 짓는다.
인생의 반려자와 첫 연(緣)을 맺음도 그렇다. 평범한 만남에서 비롯된 인연이 어느 순간 평생을 함께할 운명으로 맺어짐도 그래서 기이하다.
1997년, 김동문은 새로운 운명의 길에 나섰다. 라경민을 새로운 혼합 복식 짝꿍으로 맞아들였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손발을 맞췄던 짝을 잃은 두 외기러기가 만난 모양새였다.
애틀랜타 올림픽을 끝으로, 김동문의 짝 길영아는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라경민의 짝 박주봉도 선수 생활을 접었다.
김동문-라경민이 이룬 호흡은 완벽했다. 적응기가 따로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서로 짝꿍이었던 양 '찰떡궁합'을 뽐내며 세계 무대를 쥐락펴락했다.
2004년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며 혼합 복식 강국의 명맥을 이어 갔다. ▲ 세계 선수권 대회 2회(1999 멜버른, 2003 버밍엄) ▲ 아시안 게임 2연패(1998 방콕, 2002 부산) ▲ 최고 전통의 전영 오픈 4회(1998, 2000, 2002, 2004) ▲ 아시아 선수권 대회 4회(1998, 1999, 2001, 2004) 등 주요 국제 무대 정상을 휩쓸었다.
특히, 2002~2004년 천하무적이었다. 출전 14개 국제 대회에서, 72연승을 내달렸다. 당연히 왕좌는 그들의 몫이었다.
그는 국가대표로 활약한 12년 5개월(1992년 12월~2005년 5월) 동안 뜻깊은 금자탑을 쌓았다. 1995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첫 정상에 오른 이래 국제 대회 최다 우승 기록(76회)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지금도 세계배드민턴연맹(BWF) 공인 최고 기록이다.
누구도 깨뜨리지 못할 듯싶었던 박주봉의 기록(72회)을 뛰어넘은 위대한 전적이다. 우상 박주봉의 뒤를 이은 '복식 황제' 등극이었다.
이 맥락에서, 그에게 라경민은 무척 고마운 존재다. 이 기록의 상당 부분이 라경민과 짝을 이룬 혼합 복식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동문-라경민 커플은 2009년 11월 나란히 BWF(세계배드민턴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혼합 복식에서 짝을 이룬 둘은 2002~2004년 출전 14개 국제 대회에서 72연승을 질주하며 우승을 휩쓴 바 있다. 김동문 제공 BWF도 커플의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 2009년 11월 BWF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결론적으로, 둘은 천생연분이었다. 8년간(햇수 기준) 한 호흡을 이뤄 손발을 맞추며 형성된 동료애는 애정으로 승화했다. 둘은 싹튼 애정을 소중하게 키워 가며 서로를 인생의 반려자로 맞아들이자고 굳게 다짐했다.
2005년 12월 25일, 둘은 화촉을 밝히고 함께하는 새로운 인생의 길에 들어섰다.
16년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선수 시절부터 마음 한구석에 지녔던 감정이다. 어째서일까?
2016 히우(리우) 지(데) 자네이루 올림픽에서 SBS 해설위원으로 활약할 때 모습이다. 김동문 제공<하>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