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可타否타]위기의 태권도 “WT와 KTA의 공조로 풀어가야“

도쿄 올림픽 한국 태권도 노골드 수모
불완전한 전자호구시스템과 경기규칙도 한 몫
개선작업에는 한국 선수들을 최우선 고려해야
KTA는 종주국 책무 다해야

전자호구 에러 등의 의혹 속에 우즈벡 선수에 패한 한국의 이대훈(오른쪽). MBC 방송 캡처

2020 도쿄 올림픽 태권도 경기는 수많은 과제를 남긴 채 끝났다.

한국은 남녀 각 4체급 모두 8개의 금메달이 걸린 이번 대회에 역대 대회 중 가장 많은 6명의 선수를 파견하고도 노골드(은 1, 동 2개)에 그쳤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처음 금메달을 놓친 한국에 언론은 연일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태권도 종주국의 체면을 구겼다는 따끔한 지적이었다.

한국의 부진 속에 저개발국 많은 나라들이 태권도에서 메달을 따냈다. WT 홈페이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이 획득하지 못한 메달을 더 많은 나라가 나눠가짐으로써 진정 태권도 세계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있다.

뉴욕 타임즈(NYT)는 “모든 올림픽 경기 중에서 태권도는 국제 스포츠계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나라들에 가장 관대한 스포츠”라며 태권도 경기에 출전한 최빈국 선수들과 난민대표 선수 등을 소개했다.

NYT는 다른 경기에서는 메달이 없거나 극히 적었지만 태권도 메달을 가져간 나라는 12개 이상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선수단이 금 2개로 가장 많았지만 나머지 6개의 금메달은 6개국이 나눠가졌다.

도쿄 올림픽 태권도 종목에서 동메달 1개 이상씩을 차지한 나라는 무려 21개국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메달분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기 자체에 재미가 없으면 올림픽 퇴출은 시간문제”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네티즌들도 “태권도가 왜 저렇게 됐냐”며 가세했다.

태권도의 금메달 분포가 다양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자호구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2012 런던 올림픽 때부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심판들의 채점에 의해 승부가 갈렸다. 전자호구시스템은 선수의 보호 장구(양말, 몸통 보호대, 머리 보호대)에 전자 충격 센서가 내장된 시스템으로, 발로 상대의 머리나 몸통에 충격을 가하면 자동으로 점수가 기록되는 시스템이다.

다만 3명의 심판은 휴대용 채점기를 이용해 몸통 주먹 지르기에 점수를 매기고 돌려차기로 얻은 기술 점수를 더하는 역할만 한다. 판정에 심판의 개입을 최소화한 것이다.

전자호구시스템은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발 펜싱' 등의 논란을 불러왔다. WT 홈페이지

이는 그동안 태권도계의 고질병이었던 판정시비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태권도는 국내외 어떤 수준의 대회라도 판정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사실 순간적으로 주고받는 발길질에 정확한 점수를 매기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고의든 실수든 잦은 판정시비는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를 늘 위협하고 있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벌어졌다. 남자 80㎏ 이상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쿠바)가 판정에 항의하다 샤키르 첼바트(스웨덴) 심판의 얼굴을 왼발로 찼다.

현장에는 자크 로게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조정원 WT 총재와 함께 이 장면을 지켜봤다.

위기감을 느낀 WT는 이듬해 덴마크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전자호구시스템을 도입했고, 올림픽에는 2012 런던대회부터 계속 채택하고 있다.

판정시비를 원천차단하는 전자호구시스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 버렸다. WT 홈페이지

인간(심판)을 불신한 대가도 컸다. 전자호구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전자호구 채점 방식의 논란은 근본적인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일격필살의 무도답게 강하고 정확하게 가격한 발차기에만 점수를 줘야한다는 주장과 그냥 스쳐도 타격 포인트에 닿기만 하면 점수로 인정하자는 주장으로 크게 갈렸다. 전자가 정통 무도 정신을 이은 것이라면 후자는 스포츠 태권도의 맥을 이어가자는 논리였다.

후자의 의지를 반영한 현재의 전자호구시스템은 다득점이 횡행한다. 전광판에 득점이 올라가도 무슨 공격에 의한 것인지 전문가들도 잘 모른다. 이번 대회를 봐도 그냥 ‘비벼대는’ 발차기로 점수가 올라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다.

상대에 별 타격을 입히지 못해도 점수가 되니 ‘발펜싱’이란 조롱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 같은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태권도 선수들의 장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차이는 결국 신장에서 불리한 한국선수들의 국제 경쟁력 약화를 불러왔고, 이번 대회 참패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호구시스템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 버렸다. 이제는 전자호구시스템을 더욱 보완해야 하고 태권도의 원형을 살릴 수 있도록 경기규칙을 개선하는 방법 밖에 없다.

경기규칙 개정 작업에 한국선수를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라는 말을 하고 싶다. 태권도 경기는 우리가 만들었고, 개선도 우리의 책임이니까 향후 만들어질 새로운 경기 규칙도 한국선수를 가장 많이 고려하라는 것이다.

일본 유도를 보자. 유도 세계화를 위해 큰 기술이 많이 나오도록 경기규칙을 만든 것이 1980년대다. 그 때문에 당시 세계 유도의 주역은 유럽선수들이었다.

한국도 유럽처럼 힘의 유도를 받아들여 들어메치기 등으로 무장한 스타들을 대거 배출할 수 있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은 경기시간을 줄이고, 판정기준도 한판과 절반만 남기는 등 지속적인 경기규칙 변경을 통해 자국선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일본은 이번 대회에 걸린 15개의 금메달 중 9개를 싹쓸이해버렸다.

전자호구시스템과 경기규칙 개정을 위해 WT와 KTA는 공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WT 홈페이지

올림픽이 끝난 뒤 태권도계는 이번 대회 실패를 발판삼아 다양한 발전 방향을 논의할 것이다. 그동안 경기규칙 개정 등 선수들의 운명을 가름할 중요 사안에 WT와 대한태권도협회(KTA)는 제 각각으로 행동했다.

WT는 그동안 경기규칙 변경은 WT의 고유권한이라며 종주국 협회를 무시하고 일방독주를 거듭했다. 이번에는 제발 종주국 태권도인들의 중지를 모았으면 한다.

KTA도 종주국 협회의 책무로서 전자호구나 경기규칙 등 다양한 개선 작업에 내일처럼 적극 나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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