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탐방]한국대학축구연맹 회장 변석화의 혁신… '저학년 대회·동남아 진출'

동참과 소통 중시하는 외길과 강단의 '축구 인생'
프로 구단주·동호회 감독·해설가 등 축구로 점철된 한평생
수장으로 19년간 KUFC 이끌며 대학 축구를 튼실한 반석에 올려놓아
AUFF 창설, 아시아 대학 축구 활성화 주도
대학 1·2학년 경험 늘려주려 태백산기 등 저학년 대회 운영
대학선발팀 구성해 하노이·호치민 등지 열리는 국제대회 출전 주도

축구 외길을 걸어온 변석화 한국대학축구연맹 회장은 인터뷰 내내 ‘동참’과 ‘소통’을 역설했다. 최규섭 기자

시련은 많았다. 그러나 굳세고 꿋꿋하게 견뎌 냈다. 그리고 오로지 한길을 걸어왔다.

'강단'과 '외길', 밟아 온 삶을 함축하고 있는 화두다. 함께 어울리려고 힘쓴다. 듣고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동참'과 '소통', 인생 철학의 근간으로 삼은 신조다.

이 모두를 하나의 맥으로 잇는 줄기가 존재한다. '열정'이다. 그리고 그 원천은 축구다.

변석화 한국대학축구연맹(KUFC) 회장은 자신을 '축구광'이라 일컫는다. 그에게 삶과 축구는 불가분의 관계다. 축구와 더불어 살아온 한평생에 자긍심을 갖는다.

그의 발자취는 축구로 점철돼 있다. 프로축구단(충주 험멜) 구단주, 동호인 축구회(월계) 단장 겸 감독, 각종 TV 채널 축구 해설가,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 전문 브랜드(험멜 코리아) 기업(㈜대원 이노스) 회장 등 축구와 어우러진 한길만을 고집하며 걸어왔다.

◇ 기획력·추진력·열정의 합일, 대학 축구 비약적 성장으로 나타나… 아시아 대학 축구 ‘교류의 장’ AUFF 창설도

축구계에서, 변석화 회장은 '한국 대학 축구의 대부'로 불린다. "대학 축구를 튼실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라는 평가는 이론 없는 공론이다.

KUFC를 19년간 이끌어 오며 보인, 한결같이 불사른 열정에서 비롯된 자리매김이다. 6연임의 관록과 융합한 열렬한 정성은 대학 축구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가치 중립적인 객관적 수치가 입증하는 사실이다. 1990년대까지 대학 축구팀은 50개 언저리였다. 지금 그 수는 배 가까이 늘어났다. 모두 84개 팀에 이른다.그는 외형적 증대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실까지 다진 생장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지난 7월 16일 태백산기 제16회 1·2학년 대학 연맹전(태백)이 끝난 뒤 열린 시상식에서, 변석화 회장(가운데)이 우수 심판상 수상자들과 함께 한자리에 섰다. 험멜 코리아 제공

그의 헌신은 1·2학년 대회 창설로 나타났다. 2003년 1·2학년 대학 대회가 첫선을 보였다. 몇몇 우수 선수를 빼고는 저학년(1·2) 시절 출전 기회가 적어 경기 경험 부족에 따른 기량 답보 또는 퇴보를 피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엔,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지방 대학보다 상대적으로 신입 선수 쿼터가 부족한 수도권 대학은 대회 출전 자체가 어렵다며 난색을 보였다. 첫 대회에 출전한 팀은 고작 18개에 불과했다.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대회를 하나 더 창설했다. 이듬해 1·2학년 대학 연맹전을 선보였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호응도는 무척 높아졌다. 경기 경험 축적이 기량 향상을 뒷받침한다는 그의 지론은 차츰 공감대를 넓혀 갔다.

지난 7월 1~16일 태백에서 열린 태백산기 제16회 1·2학년 대학 연맹전엔, 총 59개 팀이 출전해 자웅을 겨뤘다.

2015년 아시아대학축구연맹(AUFF) 창립식에서, 초대 수장으로 추대된 변석화 회장이 힘차게 AUFF기를 흔들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왼쪽)이 박수를 치며 축하하고 있다. 험멜 코리아 제공

경기 경험과 기량 향상의 상관관계를 확증한 그는 눈길을 국제 무대로 옮겼다. 2015년, 아시아 지역 대학 간 교류의 장(場)이 필요함을 주창하며 아시아대학축구연맹(AUFF)을 주도적으로 출범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첫 사업으로, 아시아 대학 선수권 대회를 부활시켰다. 2009년 2회 대회 후 끊어졌던 명맥을 다시 이었다. 미미한 수준이었을뿐더러 7년씩이나 중단된 대회를 다시 열었으니, 사실상 창설이나 마찬가지였다.

갈수록 고교 졸업 후 프로로 직행하는 추세가 일반화하면서, 대학 졸업 선수의 취업 문이 좁아지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장기적 안목에서 나온 실행이었다.

"대학 선발팀으로서 태극 마크를 달고 뛴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국제 경기 경험을 쌓고 아울러 해외 진출 기회도 잡을 수 있어 선수에게 매우 유익한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대회는 국가대표 등용문으로서도 작용한다. 올해 미국 MLS(메이저리그 사커)에 진출한 수비수 김문환(로스앤젤레스 FC)이 대표적이다.

김문환은 중앙대학교 3학년 때 2016 대회에 한국 대학선발 A팀으로 출전했다. 이 대회 활약상을 평가받아 '김학범호(U-23)'에 발탁된 김문환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에 한몫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랄 수 있는 AUFF도 수장으로서 이끌고 있다. 초대 회장을 맡았고, 올 2대 회장에 재선됐다.

4개국(한국·일본·중국·대만)으로 출범한 AUFF는 5년 만에 회원국 수가 38개에 이를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 삶과 어우러진 진행형 ‘축구 사랑’, 마침표 없을 듯

지난해 1월 열린 AUFF 집행위원회가 끝난 뒤, 변석화 회장(앞줄 한가운데)이 집행위원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험멜 코리아 제공

변석화 회장과 KUFC의 인연은 1999년 시작됐다. 기존 타이틀 스폰서의 약속 불이행으로 위기에 처한 KUFC가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면서 비롯됐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1994년 회사를 설립하고 4년 뒤 세계젹 스포츠 브랜드인 험멜과 라이선스를 체결하며 이제 막 발돋움하는 그의 처지에선,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해 실업팀(험멜 코리아)을 창단하며 '축구 사랑'의 크기를 내비친 그였기에 가능한 용단이었다.

험멜 코리아는 2012년 7월 과감하게 프로 전환을 선언한 뒤 2013년부터 K리그 챌린지(현 K리그 2)에 둥지를 틀었다.

KUFC가 주최하는 대학 대회는 2000년 '험멜 코리아배'로 새롭게 단장하고 닻을 올렸다.

2년 뒤엔 KUFC 수장이 됐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잘 수 없을 정도로, 사업에 전념했던 그였다.

그렇지만 유병진 회장이 임기 도중 물러나며 고비에 처한 KUFC의 처지를 방관할 수 없었다.

2002년 12월, 회장에 취임했다. 그와 KUFC의 긴 항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무척 좋아했다. 1974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 동호회(월계)를 만든 데서도 엿볼 수 있는 '축구열'이다. 월계 동호회는 2024년이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다. 철이 채 들기도 전에 내디딘 발걸음은 반백 년이 다 돼 가도록 멈출 줄 모른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복싱을 시작해 약 6년간 선수로 활동했다. 프로복싱 선수가 돼 돈을 벌어 빈곤한 가정에 도움을 주려는 갸륵한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월계 동호회에 나가 공을 찼다. 그에게, 축구는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축구 인생'의 운명을 마다하지 않았다.

난파 위기의 KUFC를 구한 그는 선장으로서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유능한 심부름꾼이 되자.'

그의 마음가짐에서도 엿볼 수 있듯, 지도자와 선수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실현해 나간다.

동참과 소통에 주안점을 둔 까닭이다. 이 맥락에서, 대회 현장을 지키며 그곳에서 직접 지도자와 선수를 만나 그들의 뜻과 생각을 듣는다.

"일 처리가 다소 늦어지고 설령 그들의 생각이 다소 틀리더라도, 일단 받아들이고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바로잡으면 된다.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결단력과 추진력을 두루 갖춘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합리적 결정이라는 믿음이 들면 저돌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FIFA(국제축구연맹) 규정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 나라 실정과 여건에 맞는 로컬 룰(Llocal Rule)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슬기와 단안이 필요하다."

KUFC는 올 시즌부터 한 경기 선수 교체 수를 7명까지로 늘렸다. FIFA 규정(5명)보다 2명 더 많다. 부상을 방지하고 더 많은 선수가 경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한 획기적 로컬 룰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수용하려는 그의 의지가 모태가 된 이 로컬 룰은 물론 국내 축구계에서 처음으로, KUFC가 적용해 나가며 효용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대학 축구를 향한 그의 애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취업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협의하며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도 그 하나다.

이를 위해 대학선발팀을 구성해 하노이와 호치민 등지에서 열리는 여러 국제 대회에 출전시키고 있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과녁으로 진출을 노리는 적극적 방책이다.

일요일이면 무조건 월계 축구회에 나가 4시간씩(오전 8시~낮 12시) 땀을 흘리는 그의 축구 사랑은 마침표가 없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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