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NOW]1992~2008 '올림픽 핸드볼' 지배한 오성옥… '금1·은2·동1'(상)

한국 여자 올림피언 최초 5회 연속 출전
16년간 영광과 감동으로 점철된 '위대한 여정' 주역 연기
불혹까지 선수 열정 불사른 '야전 사령관'
17년간 해외에서 한국 핸드볼 드높여… 2016년 금의환향

대한민국 올림픽 영웅들의 그 시절, 그리고 오늘<2>
하계 올림픽 여자 최다(5회) 출전 '핸드볼 불세출 레전드' 오성옥<상>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일군 '태극 낭자 군단'이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KHF 제공

용솟음치는 기세는 우리나라 단체 구기 종목 가운데 으뜸이었다. 올림픽 첫 금, 세계 선수권 대회 첫 우승…, 상상할 수 없었던 무척 빠르고 아주 세찬 걸음걸음으로, 눈부신 발자취를 남긴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이다.

특히, 올림픽에서 '대풍가'를 불렀다. 자긍심을 한껏 곧추세울 만한 구도를 그려 왔다. 가장 많은 메달(금 2, 은 3, 동 1개)을 결실하며 풍년을 구가했다. 나란히 6개(금 2, 은 2, 동 2개)를 딴 노르웨이보다도 순도가 높은, 실질적 단독 선두다.

한마디로, '태극 낭자 군단'이 세계 핸드볼계에 일으킨 지각 변동은 놀랍다. 세계를 경악게 할 변동 에너지를 쌓아 왔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오성옥(왼쪽)이 노르웨이 수비수를 아랑곳하지 않고 중거리포로 골을 노리는 모습이다. KHF 제공

그 진앙에 자리한 기재(奇才)다. 천부적 자질을 바탕으로 한 빼어난 솜씨를 한껏 뽐내며 세계 여자 핸드볼계를 쥐락펴락한 귀재(鬼才)다.

'불세출의 레전드' 오성옥이다. 도전의 굴레를 뿌리치고 영광의 금자탑을 쌓은 한국 여자 핸드볼의 선봉에서 맹활약한 '코트의 지배자'다.

한국의 올림픽사에 깊고 굵은 족적을 아로새겼다. 하계 올림픽 5연속 출전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위대한 여정'의 여주인공이다. 물론 한국 여자 최초요, 최다의 찬란한 금빛 대기록이다.

그녀에게, 올림픽 마당은 '메달밭'이었다. 1992 바르셀로나 대회 금메달을 비롯해 두 개의 은메달(1996 애틀랜타·2004 아테네 대회)과 한 개의 동메달(2008 베이징 대회)을 결실했다. 다섯 번 모두 4강 이상의 씨앗 뿌리기에서 거둔 풍성한 열매맺이였다.

◇ 16년간 펼쳐진 '위대한 여정', 도전과 영광으로 점철된 서사극으로 자리매김

지난 4월 SK 슈가 글라이더즈 여자 핸드볼팀 지휘봉을 잡은 오성옥 감독이 새로운 목표를 밝히고 있다. 최규섭 기자

1992년 8월 8일(이하 현지 시각) 팔라우 산트 호르디(Palau Sant Jordi: 영어명 St. George's Palace),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이 펼쳐졌다. 한국과 노르웨이가 금메달을 놓고 벌이는 마지막 대회전이었다.

승부의 저울추는 쉽게 기울어졌다. 전반전이 끝났을 때, 한국이 더블 스코어(16:8)로 앞섰다. 결승전답지 않은 싱거운 한판은 한국의 완승(28:21)으로 끝났다.

올림픽 첫 우승을 노렸던 노르웨이의 꿈은 물거품처럼 스러졌다. 예선 리그에서 당한 패배(16–27)를 설욕하기엔, 한국은 넘기 힘든 벅찬 상대였다.

한국이 세계 으뜸임을 다시 한번 뽐낸 무대였다. 1988 서울 올림픽에 이어 2연속 금메달의 위업을 이뤘다. 소련(이하 당시·1976 몬트리올~1980 모스크바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등정한 올림픽 2연패 고지였다.

오성옥은 주역이었다. 장신 수비 숲을 꿰뚫는 중·장거리포를 앞세워 빼어난 연기를 펼쳤다. 코트를 휘저으며 득점 레이스 7위(20골)에 올랐다. 거포다운 골 결정력이었다.

이제 갓 스무 살에 접어든 나이에 내디딘 첫걸음은 대단했다. 만 스무 살에 두 달을 남겨 두고 뚜렷한 인상을 한국, 나아가 전 세계 핸드볼 팬들의 머릿속에 각인했다.

"팀의 베스트 7 가운데에선 막내였다. 선배 언니들을 믿고 겁 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다. 올림픽 금의 의미를 깊이 음미할 여유를 갖출 수 없었던 나이에 소화한 첫 올림픽 무대였다.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태극기가 올라갈 때, 오로지 감동에 젖어 영광의 환희를 만끽했다."

눈부신 발자취는 끊어지지 않았다. 올림픽 과실을 거르지 않고 거둬들였다. 16년에 걸친 '올림픽 농사'는 풍작의 연속이었다.

16년이 흘렀다. 2008년 8월 21일 베이징(北京) 국립 체육관,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준결승전이 벌어졌다. 한국과 노르웨이가 결승행 티켓을 다퉜다.

올림픽 전장에서, 한국과 노르웨이는 그동안 다섯 차례 맞붙었다. 결말은 한국의 압도적 우세였다. 서울(결승리그 23:20승)-바르셀로나(예선리그·결승전)-애틀랜타(예선리그 25:21승) 대회까지, 한국은 4연승했다. 시드니 대회(3·4위전 21:22패)에서, 비로소 처음 쓴잔을 든 한국이었다.

"올림픽 마당을 모두 다섯 번 밟았다. 그런데 시드니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따지 못했다. 비록 4위에 오르긴 했어도, 메달을 원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듯해 죄송했다. 나를 믿고 따랐던 후배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한 번도 지지 않았던 노르웨이에 발목을 잡혀 더욱 한스러웠다."

지금까지도 그녀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恨)이다.

그때로부터 8년이 지나 다시 힘을 겨뤘던 이날, 한국은 접전 끝에 분루를 삼켰다. 28:29, 실로 아쉽고 안타까운 패배였다.

그녀는 순간 아득해졌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다시 사령탑을 지휘한 임영철 감독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국가대표팀에 돌아왔던 그녀에겐 충격적 패배였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대로 태극 마크 유니폼을 벗어서야 되겠는가.' 스스로를 닦달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동메달 쟁취에 나섰다.

‘맏언니’ 오성옥(오른쪽 가운데)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였던 2008 베이징(北京) 대회에서 헝가리를 꺾고 동메달을 따내는 순간, 후배들을 껴안고 감격을 만끽하고 있다. KHF 제공

이틀 뒤인 8월 23일, 역시 같은 공간인 베이징 국립 체육관에서, 동메달 결정전(3·4위전)이 열렸다. 심기일전하고 불태운 투지가 주효했다.

한국은 헝가리를 비교적 손쉽게 물리치고(33:28)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예선리그에서 낙승한(33:22) 기세를 이어 간 쾌승이었다.

우리 나이 서른일곱 살의 '주부 선수', 열두 살의 아들을 둔 '엄마 선수'인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후배들을 하나하나 껴안으며 감격을 나누는 그녀의 눈에선,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올림픽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거듭 다짐하며 맞이한 베이징 대회였다. 그 열망을 이뤄 견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다. 나타내지 못했으나 자칫 8년 전 악몽을 되풀이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기에 더욱 기뻤다. 베이징 올림픽이 가장 감명 깊었던 순간으로 마음에 와닿는 까닭이다. 물론, 다섯 번 나갔던 올림픽 모두 소중한 추억의 장으로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다."

'위대한 여정'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16년에 걸쳐 다섯 번의 올림픽 무대에 올랐던 서사극은 도전과 영광으로 점철된 훌륭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

마지막으로 찍은 한 점도 빼어났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올스타 팀(베스트 7)의 센터백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녀의 몫이었다. 능수능란한 공수 조율로 독특한 '한국형 핸드볼'의 묘미를 자아낸 그녀만이 해낼 수 있는 역이었다. 시드니 올림픽 이래 8년 만에 선정된 두 번째 베스트 7이었다.

◇ 지도자로서도 탄탄대로 달려… 불혹까지 선수 열정 불사르며 코트 누벼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에서 뛰던 시절, 적진을 파고든 뒤 멋진 점프슛을 터뜨리고 모습이다. 오성옥 제공

올림픽 무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태극 군단'에선 떠났어도, 여전히 '야전 사령관'이었다.

오성옥이 선수로서 불태운 열정은 좀처럼 사그라질 줄 몰랐다. 불혹(不惑·40세)에도 코트를 누비며 보여 준 완숙한 플레이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30년간(1982~2011년·햇수 기준) 쌓아 온 관록이 묻어나는 몸놀림은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GK가 아닌 필드 플레이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움의 크기는 훨씬 커진다.

2011년을 끝으로, 그녀의 모습은 코트 위에선 볼 수 없었다. 감독 겸 선수의 1인2역을 연기했던 그녀는 선수로서 짊어졌던 짐을 벗었다. 오직 감독으로서 사령탑을 지휘하는 데 전념했다.

은퇴 무대는 일본이었다. 보금자리는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현 이즈미 메이플 레즈)였다. 2010년 다시 튼, 인연이 깊은 둥지였다.

첫 번째 메이플 레즈에 몸담았던 시절(1998~2006년), 일본 열도에선 그 누구도 그녀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일본 진출 첫해부터 팀을 7시즌 연속(1998-1999~2004-2005) JAL(일본핸드볼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녀가 지도자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갖췄음은 곧바로 입증됐다. 감독 전념 첫해(2012년) 제2회 사회인 선수권 대회에서 팀에 우승을 안기며 우수 감독상을 안았다.

오성옥은 유럽 핸드볼 명문 오스트리아 히포 니더외스터라이히(히포 방크)의 최고 스타플레이어였다. 어린 팬들에게 하나하나 사인해 주는 모습에서, 팬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엿보인다. 오성옥 제공

2016년,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오스트리아(히포 니더외스터라이히·2006~2010년)→ 일본을 거치며 17년 동안 한국 핸드볼의 우수성을 사해에 떨쳤던 월드 스타의 금의환향이었다.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서도 거침없이 탄탄대로를 달리는 그녀는 한국 무대에선 어떤 눈부신 발자취를 남겨 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난 뒤, 그녀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사라졌다. 왜 그랬는지 역시 그 사연도 알고 싶다.

[하]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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