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INTRODUCE]MTB 모임 수라회… "자동차서 보던 세상과 너무 달라"

"다운힐 때 60㎞로 내꽂는 속도감은 MTB의 매력"
"자전거 타기는 몸으로 공부하는 것"
"적은 비용으로 가장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어"
"기초부터 잘 배워야 사고가 없어요"

매주 수요일 산악 라이딩을 즐기는 수라회 멤버들. 수라회 제공

한국의 레저 자전거 역사는 이명박(MB) 정권을 분수령으로 크게 나뉜다. MB 이전의 대세가 산악자전거(MTB)라면 이후에는 도로 사이클로 바뀌었다.

MB 때 전국 4대강 유역을 정비하면서 자전거 길을 새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4대강을 따라 뚫린 자전거 길에는 빠른 속도의 로드 사이클이 제격이었고, 이에 따라 국내 사이클업계도 MTB 대신 로드 사이클로 매장을 싹 바꿔버렸다.

이제 MTB는 중장년층이, 로드 사이클은 젊은 라이더들로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경기도 일산 지역 MTB 동호회 '수라'는 1990년대 후반 결성된 다음 카페 '웃는 자전거'에서 파생했다. 동호인 수가 많아지면서 10여 년 전 MTB를 즐기는 고수들이 매주 수요일 라이딩을 즐기자며 '수라회'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4일 일산 호수공원에서 라이딩 준비중인 수라회 멤버들. 서완석 기자

지난 14일 섭씨 30도가 훌쩍 넘는 찜통더위에 수라회 멤버들을 따라 라이딩을 해봤다. 둘레 4.7㎞인 일산 호수공원길을 달렸지만 평소 산악길 주행으로 단련된 이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산악 라이딩은 요즘 같은 무더위엔 제격이다. 도로 사이클은 땡볕을 달려야 하지만 MTB 코스는 시원한 숲속에 조성돼 있어 찜통더위를 피할 수 있다. 숲속을 달리다 보면 좋은 공기는 덤으로 마신다. 경기도에는 양평 7개 코스, 가평 연인산, 칼봉산 코스, 군포 수리산 코스, 동두천 왕방산 코스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코스가 많다.

전국 자전거길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운호 회원. 수라회 제공

박운호(62) 씨는 서울 경찰공무원으로 2년 전 은퇴했다.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등 만능 스포츠맨이던 그는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마라톤 연습을 하다 무릎을 크게 다쳤다. 수술 후 재활훈련을 위해 타던 사이클에 매료돼 마니아가 됐다.

15년 전의 일이다. 그는 먼 지방에서 갖는 원정 라이딩에 참가하기 위해 휴가도 불사할 정도로 MTB에 푹 빠졌다. 퇴직 기념으로 비싼 티타늄 MTB를 장만했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기뻤다고 한다.

"100% 자신만의 힘으로 가장 멀리까지 갈수 있는 것이 자전거의 매력" 이라는 그는 "다운힐 때 시속 60㎞로 내리 꽂을 때의 속도감은 자전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짜릿한 쾌감" 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꿈인 그랜드슬램 보유자다. 그랜드슬래머는 국토 종주(633㎞), 4대강 종주(990㎞)와 제주도 환상 일주(234㎞), 괴산~세종 간 오천길(105㎞), 고성~영덕 간 동해안(318㎞)을 완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다. 2년 전 제주도 일주를 끝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진정 행복을 찾았다는 정진호 회원. 수라회 제공

정진호(61) 씨는 행복이 무엇인가 고민하다 자전거를 택했다. 성공한 약재 사업가이던 그는 일을 하면서도 피폐한 문명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했다.

사색을 좋아하던 정씨는 등산, 수영, 걷기를 병행하면서 15년 전 자전거에 매달렸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의 동력으로 어느 곳이든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32시간 동안 280㎞를 달리는 '280랠리', 120㎞를 달리는 고양랠리를 달리면서 마냥 행복했다.

"자전거 타는 단순한 즐거움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이 말은 정씨 마음 그대로였다. 어렵게 찾으려던 행복은 사실 단순함 속에 있다는 것. 그는 자전거를 탈 때 그 시간만큼은 핸드폰 같은 문명의 이기로부터 멀어져 오롯이 자신에게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전거 타기를 "몸으로 공부한다"고 표현했다. 또한 가장 적은 비용으로 세상을 가장 넓게 볼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는 5년 전 아들과 함께 산티아고 길도 걸었다.

2년 전 해남에서 출발, 서울을 거쳐 동해안으로 홀로 걷기를 시도하다 19일째 오산에서 실패한 경험도 그에겐 소중하다.

양평랠리 3위 입상 등 범상치 않는 실력을 자랑하는 김양순 회원. 수라회 제공

'젤리뽀'란 닉네임을 쓰는 김양순(61) 씨는 12년 전 가족 중 유일하게 자전거를 못타 가정의 화합차원에서 자전거 교실을 다녔다. 물론 현재는 자신만 자전거에 빠져들었고, 다른 가족은 타지 않는다. 흔히들 MTB에 미친 사람을 속된 말로 "산뽕을 맞았다"고 한다.

가정의 화합을 위해 자전거를 배웠던 김양순 회원은 이젠 가족 중 혼자만 자전거를 탄다. 수라회 제공

그는 입문 뒤 거의 매일 하루 종일 MTB를 탔다. 6시간 코스인 양평랠리(70㎞)에서 3위, 강촌랠리 4위에 입상할 만큼 엄청난 실력도 키웠다.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 수영, 마라톤, 등산도 병행할 정도였다.

그는 "자전거를 혼자 타는 것이지만 동호인들이 함께 탈 때는 팀이 된다"면서 "실력이 달린 초보자들이 미처 내려오지 못하면 밑에서 다들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동호회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변재숙 회원은 "라이딩은 기초부터 제대로 배워야 부상이 없다"고 말한다. 수라회 제공

17년째 MTB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변재숙(59) 씨는 한강에서 윈드서핑을 즐기다 자전거로 전향했다. 남원에서 출발하는 섬진강 코스의 봄 경치는 생각만 해도 설렌다.

"자전거를 타고 보는 세상은 자동차에서 보던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 이것이 사람 사는 맛이야'하며 미친 듯이 탔지요."

변재숙 회원(왼쪽)은 국내도 모자라 대만 오지 라이딩을 다녀왔다. 수라회 제공

그는 동호회 번개 모임이 없으면 혼자서도 산을 탔다. 자전거로 산에 오르는 여성 동호인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일산지역 아마존(아마추어 존이라는 뜻), 황룡산 코스는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전국의 유명한 임도는 거의 섭렵했다. 그것도 모자라 베트남과 대만의 오지 코스 라이딩도 다녀왔다.

변씨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면서 "자전거는 정식으로 기초부터 잘 배워서 타야 사고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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