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국은 프로야구 삼성 시절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김용국 제공올드팬들은 프로야구 선수 김용국(59)을 기억한다. 3루 수비는 철벽이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즐비한 삼성 라이온즈에서 1985년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찼다. 입단 전 84년 LA올림픽에도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대표 선수시절 3번을 쳤을 정도로 정교한 방망이를 자랑했다.
하지만 프로 들어 타격폼을 수정하면서 타율이 급락, 통산 타율 2할5푼으로 짧지 않은 프로생활을 마감했다. 1994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 2년 뛰고 은퇴했다.
그는 기억력이 비상했다. 은퇴 후 커리어를 묻자 자신의 프로필을 연도 단위로 끊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일반인들의 경우 자신이 거쳐 온 조직생활의 연도별 부서명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암튼 그는 지난해 2년간의 경주고 감독직을 끝내고 올해 경기도 야구협회 감독관이 되기까지 36년간의 야구 인생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김씨는 현역 은퇴 후인 1996년 실업야구 현대 피닉스 코치로 1년 있으면서 5차례 우승을 이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7년 무작정 미국행을 단행한다.
"야구를 더 알고 싶었어요. 같은 프로야구라 하지만 메이저리그(MLB)는 기술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거든요."
삼성 시절 매년 차려진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미국 코치들에게 늘 색다른 야구 이론을 배웠던 그에게 미국행은 야구 유학이었던 셈이다.
삼성 수비 코치 시절 김용국(왼쪽에서 세번째). 김용국 제공그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루키팀 코치를 거쳐 1998년 밀워키 브루어스 싱글A 코치를 지낼 때는 무급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실성을 지켜본 밀워키는 이듬해 그를 밀워키 루키팀 유급코치로 정식으로 계약했다.
한국프로야구(KBO) 출신이 미국 프로야구팀에서 급여를 받으며 정식 코치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당시 애리조나와 밀워키가 두툼한 자체 훈련 매뉴얼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이 바뀌면 훈련 방식도 죄다 바뀌는 것을 국내에서 경험했던 그는 메이저리그 팀들의 훈련 매뉴얼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몇 개 팀의 훈련 매뉴얼 자료를 어렵게 입수한 그는 써 먹을 기회를 엿봤다.
2년 6개월간의 미국 코치생활을 마친 그는 비자 연장 차 국내에 왔다가 LG 트윈스 코치로 발목이 잡혔다. 2000년부터 6시즌 LG 코치로 뛰었던 그는 다시 삼성과 넥센 코치를 거쳐 마침내 2011년 소위 삼성 라이온즈 황금시대의 서막을 연다.
삼성 황금시대 코치 시절의 김용국.왼쪽 사진 가운데. 김용국 제공김씨는 2016년까지 삼성 수비코치로 있으면서 류중일 감독 아래 우승 5회, 통합우승 4회의 금자탑의 일원이 된다.
"그 때 코치진들은 과거 삼성에서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었죠. 김성래, 성준, 김한수, 김재걸, 김현욱 등 비슷한 또래들끼리 모여 한번 잘 해보자고 했죠."
2011년부터 시작된 삼성 라이온즈 황금시대에 코치로 합류한 김용국은 우승반지 5개를 챙겼다. 김용국 제공그는 "당시 선동렬 전임 감독이 팀을 잘 만들어 놓은 덕분에 성적이 났다는 말도 있었는데 그 때 류 감독 이하 전부 진짜 열심히 했어요"라며 항변하듯 말했다. 그는 류 감독의 한양대 2년 선배였지만 팀을 위해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김씨는 미국코치 시절 가져온 훈련 매뉴얼을 써볼 기회도 없이 2017년부터 2년간 KT 수석코치로 프로야구 코치 생활을 마감했다.
"야구팀은 감독 체제하에 수직계열화가 돼 있어 비록 수비코치라도 위에 감독의도를 무시하고 훈련 매뉴얼을 함부로 바꿀 수 없었다"면서 "LG 시절 원포인트레슨 식으로 몇 가지 훈련법을 소개한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전면적으로 메이저리그 훈련 노하우를 풀어본 적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선수들이 겉멋에 들지 않고 외야 플라이 볼을 잡을 때 양손으로 안전하게 잡아 빨리 덕아웃으로 뛰어오도록 하는 등 몇 가지 기본기는 지금도 잘 실천되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경기도 야구협회 감독관 김용국. 서완석 기자김씨는 영어 필요성도 강조했다. "요즘 국내 선수들의 경우 몸도 예전에 비해 좋고 훈련도 잘 받아 MLB에서도 성공할 재목이 많이 보인다"면서 "MLB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영어에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골프선수들은 개인 종목이기 때문에 개인 영어 시간도 있겠지만 단체 종목인 야구선수는 짬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영어를 미리 익히면 미국생활의 적응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야구 유망주들이 MLB의 문을 두드렸지만 성공사례는 추신수, 최지만 등 극소수였다.
"그동안 실력이 모자라 MLB 입성이 좌절된 경우보다 현지 적응 실패로 향수병에 걸려 돌아온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용국은 2017년부터 2년간 KT 수석코치로 일했다. 프로구단의 마지막 보직이다. 김용국 제공김씨는 인터뷰 말미에 대뜸 "훌륭한 타자의 특징을 아느냐"고 물었다. 기자는 고인이 된 장효조가 현역시절 일관된 방향으로 토스 배팅을 하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의 대답도 이와 유사했다.
"장효조 선배를 포함, 양준혁, 이승엽, 김태균 등 강타자들을 보면 타격 직전 본능적으로 눈을 부릅뜬다"면서 "지금도 후배들에게 '볼을 잘 치려면 눈을 크게 뜨라'고 지도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프로야구 기술 얘기만 나오면 눈에 생기가 돌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본인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진지하게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리고 가슴 속 숨겨둔 본심을 살짝 드러냈다.
"프로야구는 젊은 감독들로 세대교체가 됐으니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어요?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면 제가 품고 있는 보따리를 한번 풀어놓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