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백(sand bag)을 치는 주먹의 힘이 예사롭지 않다. 새도우 복싱(shadowboxing)의 몸놀림도 빠르고 날카롭다.'
올해 66세인 임 한수 프로복서의 훈련 모습이다. 임 프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2시간 이상 복싱체육관에서 체력을 다진다.
실제 복싱경기를 하는 것처럼 3분 1회전 뒤 1분 쉬는 식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해놓고 총 20회전을 뛴다.
체조 2회전을 시작으로 줄넘기 3회전, 링에서 새도우 복싱 5회전, 샌드백 5회전, 웨이트트레이닝 5회전 순으로 진행되는 강도 높은 훈련이다.
군 생활과 사업 등으로 잠시 벗었던 복싱 글러브를 다시 낀 2006년 이후 15년째 이어 오는 그만의 건강유지 루틴(routine·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이다.
심지어 출장길에도 운동복을 챙겨가 숙소근처 복싱도장을 찾아 꼭 20회전을 채울 정도로 그만의 운동법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임 프로가 복싱과 인연을 맺은 것은 50년 전인 1971년 충남 세종시에 있는 금호중학교를 다닐 때다.
시골 동네에 달아 놓은 간이 샌드백(군용 더블백에 모래와 톱밥을 넣어 만듦)을 툭툭 치면서 재미를 느끼고 소질을 보인 게 복서로의 길을 걷는 시발점이었다.
대전 보문고등학교로 진학해서는 복싱 도장에 등록하고 정식으로 수련했다.

1975년 야외특설링에서 시합중인 임한수 선수(사진 오른쪽). 임한수 제공고등학생 아마추어선수로 활약하다 대학도 충남대학교 체육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생 때인 1976년 "전국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에서 라이트 플라이급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소위 '한주먹' 했다.
치고 돌리고 빠지고 하면서 점수 위주로 게임을 하는 지능적인 복서이기도 했다. 당시 슈퍼 페더급 세계챔피언이던 염동균 챔프가 임 프로의 시합을 보고 "아웃복서의 교과서" 라고 극찬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1976년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염동균 세계챔피언과 포즈를 취한 임한수 선수. 임한수 제공 임 프로는 고등학교 3년과 대학교 4년, 7년 동안 충남종합체육관에서 복싱을 연마하며 보냈다.
친구 집인 하숙집에서도 틈나는 대로 새도우 복싱 등을 하며 감각을 유지했다.
같이 하숙을 하던 미군과도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복싱 얘기를 나눴는데, 훗날 그가 통역장교로 동시통역사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하숙집 옥상에서 미군과 복싱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임한수(사진 왼쪽). 임한수 제공세계 챔피언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을 만큼 실력 있는 유망주였던 아마추어 선수 임한수는 이후 오랫동안 링에 오르지 못했다.
1979년 학군(ROTC)17기로 임관해 군 생활을 해야 했고 전역 후 첫 직장으로 잡은 일성신약에서 8년간 군계일학의 영업능력으로 '최고사원'까지 오르다 보니 글러브를 낄 시간이 없었다.
또 1990년 의약품 무역회사인 ㈜메디코를 설립하면서 부터는 국내외출장까지 잦아 체육관을 다닐 엄두도 못냈다.

임한수 프로복서는 1990년 의료기기 전문 무역회사를 설립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임한수 제공몇 년 동안 공들여 개척한 의료기기 시장까지 대기업에 넘기는 큰 시련을 맞기도 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도 쌓여 회사를 키우는 희망 대신 배의 둘레만 커지고 어깨는 쳐졌다.
시기질투와 권모술수(權謀術數)가 없는 세상이 그리웠다.
복싱체육관을 다시 찾았다. "노력과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운동에는 권모술수가 통하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얻은 곳을 몸이 기억하고 이끈 것이다.
글러브를 끼고 심호흡을 하고 샌드백을 쳤다. 빠져나가던 집념과 투지가 돌아와 혈관을 키우고 용기를 온 몸에 배달했다.
자신감을 회복한 임 프로는 회사가 틈새시장을 공략하도록 영업 전략을 바꿨다. 미국 등 해외 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재도약에 성공했다.
다시 가다듬은 주먹으로 임 프로는 회사를 위기에서 구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평생 꿈도 이뤘다. 2015년 '전국 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에서 40대 초반의 선수를 꺾고 시니어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랐다.

시니어 챔피언 시상식. 임한수 제공학창시절과는 다른 마음으로 접한 복싱은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가게 해줬다.
오랫동안 했던 아마추어 선수를 넘어 프로선수의 세계까지 가보겠다는 각오로 몸을 만들었다.
마침내 2017년 2월 프로테스트를 통과해 국내에 몇 명 없는 60대 프로복서로 이름을 올렸다.

임한수 프로복서의 프로테스트 합격증. 임한수 제공프로선수가 된 이후에는 경기전적이 없다. 프로선수 데뷔전으로 정식 시합에 나가고 싶지만 체육관의 관장이 60대 중에는 임 프로를 당할 선수가 없다며 만류할 정도로 나이 대에 비해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나올 적수와의 대결을 위해 5년째 맹훈련중이다.
프로복서 임한수는 마라톤 우승경력도 가진 스포츠 맨이자 서예와 색소폰 연주에서도 수준급 실력을 갖춘 다재 다능한 사람이다.
주변에서 '팔색조 리더' 라고 부를 정도다. 인생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살아가는 그의 마라톤 인생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하]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