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탐방]마라토너~트레일러너 박병권, '세계 톱10' 도전(영상)

육상 국대 출신으로 두드러진 활약 펼친 마라토너
빠르게 성장하며 정상 질주하는 트레일 러너… 최고 권위 UTMB 출전 티켓 따내
달리기 저변 확대 힘쓰려 온라인 강습 콘텐츠 제작·방송하는 유튜버
역시 육상 국가대표 출신 아내와 함께 '러닝 인생' 꾸며 가


문제 1. 마라토너, 트레일 러너, 유튜버, 인플루언서의 공통점은?

어려운 물음이다.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앞 둘과 뒤 둘은 각각 공통 요소로 묶이는 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앞뒤가 이어지는 교집합에 이르면 난관에 부딪힌다.

분명 답이 있다. 넷을 하나로 잇는 줄기가 존재한다. 한 사람이다.

문제 2. 엘리트 마라톤 선수, 트레일 러닝 선수, 마라톤 코치, 트레일 러닝 코치의 공통점은?

트레일 러닝은 푸른 하늘, 초록의 풀 등 자연과 교감하는 데에 색다른 묘미가 있다. 박병권 씨의 힘찬 질주에선, 피로감 대신 성취감이 엿보인다. 박병권 제공

어려움의 정도가 높아진다. 앞 둘은 선수, 뒤 둘은 지도자로서 묶인다. 그런데 다시 앞뒤를 엮는 공통집합을 찾는 부분에 다다르면 머릿골이 아파진다.

넷을 꿰뚫는 줄기가 존재한다. 그 일맥은 역시 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두 문제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는가? 그렇다. 모두 한 사람을 표현하고 지칭한다. 해답의 주인공은 마라토너이자 트레일 러너인 박병권 씨(36)다. 물론 문제에서 알 수 있듯 현역 선수이자 지도자다.

그는 육상 국가대표 출신이다.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현역 마라토너로 활약하고 있다. 아울러 분당 마라톤클럽 코치로 활동하며 생활체육 육성에도 힘쓴다.

나무로 우거진 숲도 그를 반기는 듯하다. 박병권 제공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으로 눈길을 돌리면, 그는 더욱 두드러진다. 국내에선 맞수를 찾기 힘들 만큼 정상권에서 맹활약한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도맡는다.

굳이 마흔 언저리의 플레잉 코치인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대단한 활약상이다. 바나나 트레일팀 코치로 활동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능가하는 빼어난 성과를 올린다.

◇ 마라톤을 바탕으로 트레일 러닝에서 정상 질주… 최고 권위 UTMB 출전 티켓 따내

즐거움에 가득 찬 '달리기 인생'이라며 밝게 웃었다. 최규섭 기자

그의 '뛰는 인생'은 우연히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때, 잠재된 달리기 자질이 발현됐다. 전교생이 경쟁한 교내 체육대회 3㎞ 달리기에서, 자신도 깜짝 놀란 3위를 했다.

중거리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국군체육부대 시절인 2010년에 마라톤으로 방향을 바꿨다. 올림픽 마당을 밟아 보고 싶어서였다. 그때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 대회 출전 기준 기록이 2시간 19분대였는데, 충분히 뛸 수 있다는 자신감도 깃들었다.

종목 전향 1년 만에 성과를 거뒀다. 권위 있는 대회인 2011 경주 국제 마라톤에서 2위(국내 선수)에 올랐다. 2년 뒤에 열린 같은 무대에선, 3위에 자리했다.

2016년, 또 다른 운명이 다가왔다. 뜻밖에 찾아온 트레일 러닝 대회 출전이 계기였다. 곧 트레일 러닝의 독특한 매력에 빠졌다. 새로운 세계에 눈뜨며 맞이한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트레일 러닝은 산, 초원, 숲길 등 자연 속을 달리는 운동 경기다. 저절로 자연과 어우러져 교감하며 달릴 수 있다. 도심을 달리는 마라톤과 색다른 묘미가 강점이다. 한번 접하면 그 마력(魔力)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유럽이 발상지인 트레일 러닝은 산길을 뜻하는 '트레일(Trail)'과 달림을 뜻하는 러닝(Running)이 합쳐진 단어다. 그래서 '산악 마라톤'으로 일컬어진다. 마라톤과 맥이 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이른 시일에 트레일 러닝에서도 일정한 경지에 올라서며 결실을 올릴 수 있었던 까닭이다. 입문 첫해에, 2016 아시아 스카이러닝(Skyrunning) 챔피언십에서 3위를 했다.

2019 트랜스 제주 50㎞에서 우승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박병권 제공

이듬해부턴 잇달아 우승 과실을 수확했다. 2017 서울 누비길 트레일 러닝 27㎞, 2017 하이원 하늘길 20㎞, 2018 노스페이스 TNF 50㎞, 2019 트랜스 제주 50㎞, 2021 정글 트레일 18㎞ 등에서 모두 정상을 내달렸다.

눈부신 성적을 올리면서, 그를 주목하는 러닝 스포츠 아웃도어 업체들이 늘어났다. 자사의 간판스타로 내세워 홍보 효과를 노린 전락 아래 펼쳐진 스카우트 경쟁 구도에서, 그는 '귀하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016~2019년 아디다스 테렉스에 몸담았던 그가 2020년부터 둥지를 옮겨 호카 오네오네에서 활약하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요즘 '한여름 밤의 꿈'에 부풀어 있다. 오는 8월에 열릴 세계 최고 권위의 울트라 트레일 몽블랑(Ultra Trail Mont-Blanc·UTMB)을 앞두고 열망을 불태운다.

UTMB는 주최 측이 인정하는 대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포인트를 쌓아야 출전 티켓을 따낼 수 있다. 그만큼 출전 자체가 어려워, 선수들에겐 선망의 무대다.

"한국인 최초로 톱 10 진입을 타깃으로 삼았다. 적중을 노려볼 만한 과녁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하루 4시간씩 담금질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오후에 2시간으로 이뤄진 훈련 일과다.

더 많은 시간을 훈련에 투자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러닝 클럽 코치까지 1인2역을 소화하려면 어쩔 수 없다. 저녁엔 2시간을 지도에 할애한다.



육상 국가대표 출신으로 엮인 박병권(오른쪽)-김희연 부부는 서로에게 인생의 버팀목으로 자리한다. 박병권 제공

지난 1월, 그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러닝을 즐기는 생활체육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방안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온라인 강습이다. 마라톤의 저변을 넓히고 동호인들이 올바른 달리기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수도권에선, 오프라인 지도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먼 거리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과는 대면 교육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엘리트 러닝 BK'로 이름 붙인 그는 달리기에 도움 되는 여러 훈련을 소개하고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 콘텐츠를 만든다. 생생감을 더하기 위해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한다.

그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 명을 넘는, 나름의 SNS(Social Network Service) 인플루언서다. 방송 한 달 만에 구독자가 1,000명을 넘어선 배경이다. 지금은 구독자가 3,500여 명에 이른다.

"러닝은 동호인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나, 아직 대중에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구독자 증가 폭이 크지 않은 한 이유라고 본다. 그래도 계속 정성껏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올린다면 더욱 좋은 반응이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는 힘을 잃지 않고 '러닝 인생'의 꿈을 부풀린다. 아내(김희연 씨)와 함께하는 달리기 삶이기 때문이다. 역시 육상 국가대표 출신인 동갑내기 아내는 가장 든든한 원군이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는 방송 콘텐츠 제작에도 큰 도움을 준다. 서로 지닌 노하우를 공유하고 장점을 접목해 만든 콘텐츠는 그만큼 질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함께 출연해 시연함으로써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것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훈련도 같이하고 서로 아픈 부위를 마사지해 준다. 또, 대회가 다가오면, 각자의 몸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조언해 줘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기도 하다."

그가 손꼽는 운동선수 부부로서 좋은 점은 끝이 없을 듯싶다.

부부를 하나로 엮어 주는 묘한 인연이 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몬주이크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또 하나의 공통 요소다.

부부가 모두 황 감독의 제자다. 남편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시절에, 아내는 꿈나무대표팀 시절에, 각각 황 감독의 가르침을 받았다.

박병권 씨(오른쪽 주홍색 상의)는 달리기 동호인 저변을 넓히기 위해 지도에도 땀을 아끼지 않는다. 박병권 제공

그는 트레일 러닝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며 팬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자신은 트레일 러닝 대중화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오는 11월에, 고향인 금산에서 골드 마운틴 트레일 대회를 열려고 준비 중이다. 지방 자치단체와 협의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마라토너로서 또 트레일 러너로서, 그리고 선수로서 또한 지도자로서, 그는 무척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다. 아내와 더불어 꿈꾸는 달리기 인생의 앞날이 밝으리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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