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숙정문-혜화문에 이르는 4.7km 백악구간옛 한양도성 둘레길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압축한 역사탐방로이다. 마치 오래된 지층처럼 켜켜이 쌓은 성곽돌에는 수 백년의 역사가 겹쳐 있고, 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등 성문에는 600년 서울의 근현대사가 아로 새겨져 있다.
그뿐 아니다. 도성 둘레길 옆으로는 다양한 역사 유적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있어 국내 최고의 인문학적 걷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한양도성은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약 18.6㎞에 이르는 구간에 축조됐다.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했다.
도성 둘레길은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숭례문 구간 등 모두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즐길 수 있다.
1구간 백악구간은 창의문-숙정문-혜화문을 연결하는 4.7㎞의 아름다운 길이다. 6개 구간 중 가장 아름답고 난이도가 가장 높다. 한편으로는 경복궁과 청와대를 품고 있어 안보상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코스다.
취재진은 비가 오락가락했던 지난 6월 29일 지인들과 함께 백악구간을 탐방했다. 서울 종로구 창의문(자하문)에서 출발하는 일반적인 루트와 달리 반대로 혜화문에서 출발, 숙정문과 창의문을 거치는 길을 택했다. 상대적으로 완만한 루트인데다 지인들이 모이기 쉬웠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30분. 4호선 한성대역 5번 출구에 집결했다. 출구 옆에는 인근 성북동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만해 한용운 심우장, 간송미술관, 서울 선잠단지, 상허 이태준 가옥, 최순우 옛집 등 안내문을 읽는 것으로 대체했다. 백악구간 둘레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도성 둘레길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백악구간. 첫 출발을 혜화문에서 시작했다. 서완석 기자길 건너 혜화문 쪽으로 접어들었다. 혜화문은 창의문, 광희문, 소의문(소실)과 함께 서울 4소문 중 하나다. 혜화문을 돌아서니 도성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격적인 도성 둘레길의 시작인 셈이다. 도성길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도성 둘렛길은 성벽이 개인 사유지 담장으로 활용되는 구간도 있었다. 서완석 기자곧이어 일부 성벽이 사유지의 축대로 이용되고 있는 점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심지어 옛 성벽을 구성하던 거대한 돌들이 개인 주택이나 경신중고 담벽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약 100m 구간에는 성벽이 아예 끊어져 버리기도 했다. 나라가 망하고 혼돈의 시기, 성벽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경신중고교 뒷담도 성벽을 담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완석 기자혜성교회와 축구스타 차범근의 모교로 유명한 경신중고를 거쳐 본격적인 산행길로 접어든다. 이 길은 작년 불귀의 객이 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마지막 모습이 찍힌 그 곳이다.
와룡공원에는 정자와 배드민턴장 등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서완석 기자땀이 온 몸을 적실 무렵 종로구 명륜동 와룡공원이 나타났다. 숲속에 배드민턴장, 체력단련장과 정자가 서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본격적인 성곽 둘렛길로 접어 든 길. 서완석 기자이번에는 성벽을 왼쪽에 두고 호젓한 도성길이 나타났다. 주변에 인공물이 없어 진짜 50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성벽 사이 핀 작은 들꽃은 성벽의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오른쪽으로 성북동 주택가의 아름다운 풍광이 보인다.
와룡공원을 지나 숙정문으로 향하는 길. 서완석 기자갑자기 경사가 가팔라지더니 말바위 안내소가 나온다. 이곳 백악의 끝자락(末)에 있는 바위여서 말바위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요즘에는 신분확인 절차가 없어졌지만 탐방객은 출입증을 받아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7월 18일까지는 청운대 안내소에서 창의문 구간은 공사로 인해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백악구간 중 가장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곳을 가지 못한다.
이 구간 중 백악마루에서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성곽을 쌓아 한양도성 전체 구간 중 으뜸가는 절경이라 할 만하다. 또한 1968년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사건 당시 아군과 공비의 총알을 버텨낸 ‘1.21 사태 소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말바위안내소를 지나면 숙정문이 나온다. 현존 도성문 중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으로는 유일하다. 서완석 기자말바위 안내소를 지나면 곧바로 숙정문이 나온다. 한양도성의 북대문이다. 처음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으나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 도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낮 12시가 넘었다. 간단한 요기를 한 뒤 다시 길을 재촉했다. 먹구름 낀 하늘에서 비가 살짝 내렸다.
293m 청운대를 지나면서 말바위 안내문대로 공사구간을 피해 우회했다. 아쉽지만 이젠부터 그냥 산행길이다. 도성둘레길과 확연히 다른 산속길이다. 청운대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반납한 뒤 부암동 주택가 도로를 걸으면 끝자락에 창의문이 나온다.
자하문으로 더 많이 불리는 창의문은 백악과 인왕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서완석 기자백악구간의 종착지다. 자하문으로 더 많이 불리는 창의문은 백악과 인왕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영조 17년(1741) 다시 세웠다.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을 통해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어놓았다.
창의문 홍예문 천장에는 지네의 천적인 닭을 닮은 봉황이 그려져 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흡사 지네를 닮아 이를 누르기 위함이다. 서완석 기자창의문 홍예문 천장 그림에도 디테일이 있다. 지네의 천적인 닭을 닮은 봉황이 그려져 있다.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산세가 흡사 지네를 닮아 지네의 독기가 문을 넘어 궁궐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창의문 옆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어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완석 기자 백악구간 걷기는 조금 더 연장된다. 창의문을 나서면 왼쪽에 1.21사태 당시 공비를 막다 숨진 고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이 서 있고 길건너 편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탐방객을 부른다.
600년 한양도성을 지킨 성벽과 근현대 역사와 문화유적을 한 곳에 품은 3시간 코스 백악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