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 하면 가장 먼저 춘향전이 생각난다. 그런 춘향골에 세계무대를 평정하던 주먹들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대부분 잘 모른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역사를 '신준섭 복싱체육관'만이 말해주고 있다.

실전적인 공격과 방어 기술을 연습하는 스파링에 집중하는 남원복싱클럽선수들. 송학성 제공신준섭은 남원에서 고등학교 시절 복싱에 입문해 1984년 LA올림픽 때 우리나라 최초로 올림픽 복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다.
아시안게임메달리스트인 박영규와 진명돌, 킹스컵 국제복싱의 박태림, 월드컵 복싱의 황인도 등도 남원이 배출한 주먹들이다. 이처럼 남원은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던 복싱의 고장이었다.
1977년 남원 복싱연맹 창립에 앞장 섰던 김재봉 대한복싱협회 스포츠공정위원장은
"시골이지만 한창 때는 중학교 4개, 고등학교 2개부에서 50명 이상의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신준섭이라는 올림픽 스타까지 탄생했는데 지금은 단 한 팀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복싱 꿈나무들이 사라져 간다"며 격세지감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쓰러져 가는 복싱 고장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심하던 남원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연계된 공공스포츠클럽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2017년부터 문을 연 남원거점스포츠클럽은 해체되는 학교운동부를 흡수해 지역 학생들이 전문 체육선수로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신준섭 복싱체육관에서 세계 챔피언의 꿈을 키우고 있는 남원거점스포츠클럽 엘리트복싱단 선수들. 송학성 제공복싱과 탁구, 축구, 테니스 등 모두 4종목의 전문 선수 반이 운영되는데 복싱에는 밀레니엄시대의 복싱 히어로인 송학성(42)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송감독은 2003년부터 전국체전을 8연패하고 중국오픈 국제복싱과 골든벨 국제복싱에서도 우승했던 2000년대 철권이다.
2009년 은퇴 이후 개인 체육관을 운영하던 송감독은 2017년부터 남원 복싱의 부활을 위해 남원거점스포츠클럽의 엘리트선수단 조련에 나섰다.
선수들과 훈련을 시작한지 1년만인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연속 청소년 국가대표선수를 배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 스포츠 클럽사상 최초의 일이다.

국내 스포츠클럽 사상 최초로 4년 연속 청소년대표를 거머쥐는 복싱선수. 송학성 제공2019년과 2020년에는 전라북도 대표로 선발된 6명의 유망주들도 소년체전과 전국체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남원은 다시 복싱의 핫 플레이스(Hot place) 부상하고 있다.
복싱을 취미로 배우던 학생들까지 전문선수로 나가겠다고 생활체육팀에서 엘리트팀으로 옮길 정도로 송감독의 지도력은 정평이 나있다.
송감독 부임 이후 약 20여명의 우수선수들이 발굴돼 국가대표로 청소년 대표로 국제대회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현재도 남원고 2학년인 곽효준(18)과 용성중 3학년 서주홍(16) 등 고등학생 6명과 중학생 2명이 세계 챔피언을 꿈꾸며 강펀치를 날리고 있다. 남원 제일고의 3학년 정인희와 1학년 박진정도 송학성사단에 합류해 여자복싱계에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생활체육팀에서 넘어 올 학생들을 포함하면 10여명 이상의 학생선수들이 학교수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클럽복서로의 길을 걷는다.

10여명의 선수들이 각종대회를 석권하고 있는 남원스포츠클럽 엘리트복싱단. 송학성 제공 살기 어렵던 1960~70년대에 학교 운동부에서 꿈을 키우던 시절과는 많이 다른 풍속도지만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벽을 허문 공공스포츠클럽의 효과가 자리잡아간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또 2019년 전북도민체육대회 학생부 복싱 종합 우승을 비롯해 각종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은 기본이고 코로나19로 대회와 전지훈련이 취소된 이후에는 자발적인 자원봉사까지 나서 사회공헌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송감독이 이끄는 복싱 팀은 타 종목 선수반 등과 함께 남원시 관내 사회복지시설, 취약계층이용시설 80여곳을 찾아 230회에 이르는 방역소독 자원봉사를 실시했다.
또 2020년 8월에는 축사와 양식 장 등 남원시 침수피해지역에서 4주간 수해복구작업에 동참해 유공표창을 받기도 했다.
운동만 하던 과거의 학교 운동부 이미지를 벗고 인성도 갖추고 지역사회와도 교감하는 선수들로 성장하며 남원거점스포츠클럽이 "3년 연속 전국 최우수클럽"으로 평가 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성과 실력을 고루 갖춘 선수들로 지역사회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남원스포츠클럽 엘리트복싱반. 송학성 제공사각의 링에서는 폭주 기관차처럼 상대를 몰아붙이는 파워를 자랑하지만 글러브를 벗으면 이도령급 훈남으로 변신해 약자를 돕는 송학성과 그의 돌주먹들! 만년 비인기 종목이라는 한계도 날리는 "세기의 펀치"로 남원 복싱의 명성 복원을 완성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