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탐방]새벽 3시 산에 오르는 60대… 전국 2천개 山 섭렵

이연하 "가야산만 403회나 올랐죠"… 오서산 252회·계룡상 50회 등산
대우정밀 보령공장 시절 등산에 취미 가져
"옛 백제 땅의 모든 산을 올라보자" 결심
"설악산 공룡능선이 최고"라며 추천… "코로나 팬데믹 끝나면 네발로"

가야산에 403회나 올랐지만 정작 자신의 사진은 없다. 홀로 등산한 탓이다. 구름에 가려진 가야산 봉우리. 이연하씨 제공

경남 합천 가야산(1,433m) 403회, 충남 보령 오서산(790m) 252회, 대전 계룡산(847m) 50회.

산이 좋아 전국 거의 모든 산에 올랐던 등산 애호가 이연하(63·경기 구리시)씨의 특정 산 등정 횟수다.

남들은 한번 오르기도 힘든 산을 수 백번 오른 데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그저 산이 좋아 올랐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한다.

울릉도 성인봉 가는 길목에 선 이연하씨. 이연하씨 제공

대기업(대우정밀)에서 일에 치어 별다른 취미조차 없었던 그가 등산에만 몰입하게 된 것은 1996년. 대우정밀 보령공장(현 한국GM 보령공장)으로 발령 나 부산에서 충남 보령시로 내려가면서다.

"난생 처음 가보는 보령에서 객지생활을 하게 됐지요. 문득 '과거 이곳은 백제 땅인데 이왕이면 백제 땅 모든 산을 올라가보자' 라는 이상한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 때까지 그는 산에 대해 잘 몰랐고, 등산은 그저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이었다.

이씨는 실제로 보령 생활 20년간 주말을 이용해 충청도와 전라도 옛 백제지역의 250개나 되는 산을 모두 정복했다. 명산인 계룡산에는 50회 올랐고 보령의 오서산은 내 집 드나들 듯 252회나 등반했다. 갈대로 유명한 오서산에서 바라보는 서해 전망은 일품이었다.

가야산의 밤 경치. 이연하씨 제공

2015년 6월 한국GM 보령공장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할 무렵 자신의 고향(경남 마산)과 가까운 가야산에 꽂혔다.

가야산은 국내 삼보 사찰의 하나인 해인사를 품은 명산이다. 그는 퇴직 후 대구 집에서 이틀에 한 번씩 가야산에 올랐다. 2015년 11월 경남 함안군 칠서면 소재 지에스테크 대표이사로 재취업하면서 본격적인 가야산 등반을 시작했다.

해뜰 무렵 가야산 정상 부근. 이연하씨 제공

그의 가야산행은 특이하게도 주중 새벽에 이뤄졌다. 평일 근무를 마친 뒤 가야산으로 차를 몰아 새벽 3시반부터 4시간 등반을 마치고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심야에 홀로 등반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곤경에 처한 적이 없다고 한다.

가야산 전망대에서 해뜨기를 기다리는 등산객들. 이연하씨 제공

"제가 곤히 잠든 산짐승을 깨운 적은 있어도 산은 저에게 피해를 준 적이 없죠. 야간 산행은 남 눈치 안보고 오롯이 저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에스테크 대표이사 3년을 포함해 3년 6개월간 그가 올라간 가야산 등반횟수는 모두 403회에 달했다. 바쁜 회사생활을 감안하면 주중에 이틀에 한 번씩은 올라간 셈이다.

겨울철 바람이 불거나 눈오는 날도 개의치 않았다. 산에 올라가면 무념무상 그 자체였다. 가끔 과거 가야산에서 수행했던 성철 스님도 기억에서 자주 끄집어냈다.

그렇다고 그가 늘 혼자 등반했던 것은 아니다. 보령 근무시절 등산팀을 만들어 직원들과 1년간 백두대간 종주경험도 있다.

지난해 경기도 구리시로 이사 온 그는 그동안 못다간 경기도와 강원도 산들을 섭렵하고 있다. 국내 100대 명산 중 아직 가보지 못한 경기도의 산은 파주 감악산과 동두천 소요산 뿐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양평 유명산, 가평 화악산, 춘천 오봉산 등을 다녀왔다.

그는 단 한번 겨울 등반 중 조난 사고를 당했다. 혼자 태백산을 등반하다 예고 없이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18시간 사투 끝에 홀로 산을 헤쳐나온 아찔한 경험을 했다.

산에서 조난 신고를 했지만 구조팀도 폭설 때문에 오지 못한 길을 그가 살아왔을 때 소방서에서 생존 확인전화까지 걸어왔다고 한다.

그는 홀로 등반하는 탓에 자신을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다만 철따라 찍은 한국 산의 절경은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사진만으로도 그는 전문가 수준이 됐다.

바위위에 뿌리박은 가야산 소나무. 이연하씨 제공

전국 2,200개나 되는 산 가운데 그가 단연 으뜸으로 꼽는 곳은 어딜까. "설악산 마등령에서 신선암 사이 공룡능선이라고 있어요. 사람들이 공룡 등을 탔다고 좋아하는 곳이죠. 거기는 사계절 어느 때도 좋습니다."

전국 산을 거의 다 올랐던 그는 산 이름만 대면 해발높이를 기억할 정도가 됐다.

"산은 편견이 없어 좋았습니다. 자연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죠."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그는 지경을 넓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네팔 랑탕계곡 트레킹을 다녀올 계획이다.

9박10일 트레킹한 뒤 헬기타고 내려오는 코스인데 오는 12월14일부터 예약을 받는다는 정보를 남 먼저 갖고 있다. 그는 벌써 그곳에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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