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드백을 때리는 김현정씨. 서완석 기자샌드백을 때리는 둔탁한 주먹에서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난다. 상대를 응시하는 눈매가 사냥감을 노리는 매 형상이다. 여성 아마추어 킥복서 김현정(32·파주시 운정지구) 씨의 훈련 모습이다.
김씨는 사복을 입었을 땐 여느 평범한 직장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트레이닝복을 갈아입자 자세부터 달라졌다. 킥복서 전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트를 치는 김현정씨. 눈매가 매섭다. 서완석 기자"몇 년 전과 달리 체육관마다 여성 킥복서가 부쩍 많아졌어요. 성인반에 남녀 수련생이 반반일 정도로 전혀 낯설지 않아요."
그는 일본 도쿄에서 거주하던 2016년 27세 때 킥복싱에 입문했다. 다이어트를 위해 요가를 해봤지만 자신과 맞지 않았다. 활동성이 강한 격렬한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집근처 킥복싱 체육관을 찾게 됐다.

김현정씨는 킥복싱으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찾았다고 한다. 서완석 기자 오직 주먹과 발로 차고 때리는,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인 킥복싱은 일로 얻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는데 그만이었다.
훈련 중 때리는 미트 소리는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실력이 어느 정도 쌓이자 입문 1년 만에 아마추어 대회 두 차례 나갔지만 모두 패했다.
일본에는 여성 킥복싱층이 두꺼워 재야고수들이 많았다.
고교생부터 홀로 일본 유학을 떠났던 그는 2017년 15년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번역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킥복싱을 잊지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고양시 대화동 익스트림 컴뱃 체육관을 찾아 무에타이를 익혔다.
킥복싱과 무에타이는 손과 발을 다 사용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스텝과 리듬, 박자 등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킥복싱을 익혔던 그는 체육관에서 단번에 주목받는 초보자가 되었다.
열심히 운동한지 10개월 뒤 아마추어 경기가 성사됐다. 상대는 준프로급으로 오히려 김씨의 안전을 걱정해주었다.
하지만 아마추어로서는 무리하게 7㎏을 감량, 58㎏급 경기에 나선 끝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판정승을 거뒀다.

평생하고 싶은 취미가 킥복싱이라는 김현정씨. 서완석 기자"아, 이런 맛에 운동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벅찬 상대도 이길 수 있었으니까요."
김씨가 킥복싱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친구들도 신기해하고, "싸움 걸면 안되겠네"라며 농담조로 이야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킥복싱 수련에서 얻은 것은 내면적인 것에 있었다.
그는 원래 낯가림이 심한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릴 때부터 혼자 유학생활을 한 탓에 더욱 소심해졌다. 처음 체육관에서 코치가 미트로 타격을 받아줄 때도 눈맞춤이 어색했을 정도였다.
"그래, 한 달만 해보자"라고 시작했던 것이, 온몸을 던져 차고 때리면서 차츰 낯가림도 줄어들었다. 회사에서 눈치 보며 소심했던 마음도 미트를 치고 샌드백을 때리는 사이 어느새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킥복싱, 무에타이를 연마한 김현정씨는 최근 주짓수도 익혀 MMA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서완석 기자그는 "운동을 계속하면서 얻은 자존감과 자신감도 엄청나지만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덧붙인다. 평소 화나고 갑갑했던 일상이 운동을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익스트림컴뱃 이준형 관장도 "현정씨는 가장 긍정적인 마인드와 즐거운 모습으로 힘든 훈련을 소화한다"며 "게다가 힘들어 하는 후배들을 잘 도와주는 모범적인 수련생"이라고 칭찬했다.

이준형 관장과 미트 훈련중인 김현정씨. 서완석 기자훈련에 재미를 붙이면서 김씨는 종합격투기(MMA)에도 도전장을 냈다. 기존의 무에타이 실력 위에 주짓수를 익혀 그라운드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아마추어 MMA 경기에도 나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정작 원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평생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킥복싱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