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N0W]세계 최고수 이경근의 '외길 유도인생'(하)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모두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제패 영광
여자 국가대표팀과 한국 마사회 이끌고 세계 정상 밟은 명장
잊을 수 없는 세 분 '평생 스승'의 가르침 되새기며 제자 양성에 온 힘
합창은 유일한 취미… 2018 평창 동계 올림픽과 인연 닿은 활동

▣ 어떻게 지내십니까 … 1988 서울 올림픽 영광의 얼굴들 ⑥

이경근 유도 하프-라이트급(-65㎏) 금메달리스트 [하]


1988 서울 올림픽 유도 하프-라이트급(-65㎏) 시상식에서, 금메달리스트 이경근(뒷줄 가운데)이 올라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감격에 겨워하고 있다. 이경근 제공


#1. 1979년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한 해의 끝자락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어느 날, 한국 유도 국가대표팀 선발전이 펼쳐졌다.

플라이급(-60㎏) 준결승전 곽우종-이경근의 한판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베테랑과 신예의 격돌이었기 때문이다. 그달(12월) 초 벌어진 1979 파리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한 곽우종이었다.

반면, 상대는 고교(대구 계성) 2학년인, 이제 갓 애티를 벗어난 홍안의 이경근이었다.

누구든지 곽우종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신의 생각은 달랐다. 소년을 낙점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취재진은 뜻밖에 대어를 낚은 그에게 몰려갔다. 그가 비로소 태극 도복(2진)을 입는 순간이었다.

서울 올림픽 유도 하프-라이트급(-65㎏) 결승전에서, 이경근(위쪽)이 야누시 파브워브스키(폴란드)를 공략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발간 "1989 스포츠 사진 연감"

#2. 1988년 9월 26일, 한반도를 열광에 들뜨게 했던 서울 올림픽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유도 하프-라이트급(-65㎏) 결승전이 펼쳐진 장충체육관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유도 경기 첫날, 김재엽이 엑스트라-라이트급(-60㎏)에서 우승한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이튿날 마지막 한판이었다.

대한 건아 이경근은 쉴 틈 없이 이방인 야누시 파브워브스키(폴란드)를 몰아붙였다. 장기인 가위치기를 비롯해 빗당겨치기와 업어치기 등 현란한 기술을 마음껏 뽐냈다.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던 파브워브스키는 거센 공격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당연히 승리의 신은 이경근을 택했다(2-0 판정승).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 이어 거푸 메이저 국제 대회를 석권하며 평천하를 이루는 순간이었다.

◇ 오늘날 이경근을 있게 한 잊을 수 없는 '평생 스승들'

이경근 감독은 시종 밝게 웃으며 '유도 인생'을 되돌아봤다. 최규섭 기자

세계 1인자로 우뚝 선 그가 늘 그리는 두 분의 '평생 스승'이 있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고마운 은사들이다.

"한상봉 대구 중앙중학교 감독님(이하 당시)과 장인권 쌍용 감독님은 잊을 수 없는 스승이시다.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두 분을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린다."

한상봉 감독은 그를 본격적 유도 인생으로 이끌었다. 첫 유도복을 입었던 체육관 관장의 권유로 한 달 반 만에 대회에 출전한 그의 플레이에 반해 부모를 설득해 자신이 가르치던 팀으로 스카우트했다. 대구 대성중에 다니던 그가 유도 명문 중앙중에 몸담고 유도 인생의 길에 들어서는 획기적 계기를 만들어 준 은사다.

장인권 감독은 그를 유도 명문 쌍용으로 이끌었다. 1985년, '준우승 징크스'에 시달리던 그를 낙점해 전기를 만들어 줬다.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권위적 사령탑이었지만, 그에겐 무척 따뜻했다. 자상함 가르침으로, 그에게 1985 전미 오픈 대회에서 국제 무대 첫 우승의 감격을 안겼다.

두 스승에 못지않은 고마운 지도자가 하나 더 있다. 그에게 가르치기 기술을 전수한 천길영 국가대표팀 코치다. 천 코치를 사사한 그는 훗날 '가위치기 달인'으로 불렸다.

◇ 지도자로서도 혁혁한 전과 올린 명장… '으뜸 유도단' 한국 마사회 구축

이경근 감독(왼쪽)이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마사회 소속 선수인 김재범(오른쪽), 조준호(가운데)와 함께한 모습이다. 이경근 제공

"땀은 정직하다. 다른 사람만큼 노력해선 그 이상은 결코 될 수 없다."

이경근 한국 마사회 감독의 지도 철학이다. 흘리는 땀의 양만큼 성적은 비례하기 마련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에게 자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속담을 들려주며 늘 되새기라고 강조한다.

물론 사령탑인 그 자신도 지금까지 땀을 아끼지 않는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동영상으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장단점을 파악해 각자에게 맞춤형 처방전을 제시한다.

또, 월~금요일 오전 훈련(웨이트 트레이닝) 2시간(9시 반~11시 반) 동안엔,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도 좋으니, 일거양득이라 할 만하다.

언제든지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그가 눈부신 결실을 누림은 자연스럽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서 개선가를 불렀다.

여자 국가대표팀을 이끌고(코치) ▲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 1·은 2·동 1개를 ▲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전 체급 메달(금 4·은 1·동 3개)을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 2·은 3·동 2개를 각각 수확하며 대풍을 구가했다.

이경근 감독(맨 왼쪽)은 2017 남북 어울림 한마당 ‘통일 한마음 축전’에 한국 마사회 유도 선수단을 이끌고 참여했다. 2017 스포츠 재능 기부 프로젝트였다. 이경근 제공

2005년 마사회로 둥지를 옮겨 지휘(감독)하면서도 그의 지도력은 계속 빛을 발했다. 그의 품에서 자란 제자들은 ▲2008 베이징(北京) 올림픽에서 금메달 1(최민호)·은메달 1(김재범)개를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금 1(김재범)·동 1(조준호)개를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금 2(이원희·김성범)·동 1(김광섭)개를 ▲2010 광저우(廣州) 아시안 게임에서 금 1(김재범)·동 1(최민호)개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 1(김재범)개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금 1(김성민)·은 1(김민정)·동 1(혼성 단체전)개를 각기 획득하며 풍년을 노래했다.

그 밖의 월드컵과 아시아 선수권 대회를 위시해 각종 오픈 대회에서 올린 결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다.

올림픽에서 금 1·은 1개를, 아시안 게임에서 금 2개를 각각 따낸 김재범은 현재 마사회 코치로서 그를 보필하고 있다.

이경근 감독(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활동하는 대한민국 스포츠합창단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프로그램인 KBS ‘하나된 열정, 이제는 평창!’에 출연했다. 이경근 제공

◇ 최고 훈장은 '외길' 유도 인생… 합창·성화 봉송 통해 평창 동계 올림픽과 인연

이경근 감독은 유도에 파묻혀 산다.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유도에 투자한다. 선수와 더불어 땀을 흘리는 하루 두 차례 훈련이 끝나면, 쉬는 시간엔 코칭스태프와 함께 경기와
훈련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내일을 대비한다.

그래서 다른 운동과 취미 생활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골프채를 잡아 본 경험도 손꼽을 정도다.

그런 그가 애착을 갖고 활동하는 무대가 있다. 국가대표 출신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스포츠합창단이다. 그가 아끼는 후배로서, 올림픽에서 한 개의 금메달(1992 바르셀로나)과 두 개의 은메달(1996 애틀랜타·2004 아테네)을 획득하며 여자 핸드볼 월드 스타로 성가를 드날렸던 임오경 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만든 합창단이다.

그는 합창단의 일원으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과 연(緣)을 맺기도 했다. 개막에 앞서 방송된 KBS '하나된 열정, 이제는 평창!' 프로그램에 출연해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성화 봉송에 주자로 나선 이경근 감독. 이경근 제공

그와 평창 올림픽 사이 인연은 더 있다. 성화 봉송이다. 그는 성화 주자로 나서 평창 올림픽 축제 분위기 조성에도 한몫했다.

대한민국 스포츠합창단은 전국 체육대회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에서 열린 2019 대회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봉창하기도 했다. 물론, 그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학 박사다. 2008년 2월, '민간 경호인의 무도 수련과 자아 효능감 및 직무 만족도의 관계'란 논문으로 용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무슨 상황에서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체육훈장 5개 등급 가운데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비롯해 4개 등급(거상장·백마장·기린장)에서 수훈(受勳)했다. 그만큼 체육 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체육의 위상을 높이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훈장은 '유도 인생'일 듯하다. 역경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는 굳센 신념으로 외길을 개척해 온 인생에 내린 신의 축복이 그에겐 더욱 값지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이경근 감독(오른쪽)은 2015 아스타나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에 KBS 해설위원으로 나섰다. 이경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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