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IBF 미니 멈급 이경연챔프와 문성길챔프(사진 오른쪽). 조영섭 객원기자최근 현 영주시청 백낙춘 복싱 감독이 이경연 관장과 함께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했다.
이 관장은 88 프로모션 최초의 세계챔피언(IBF 미니멈급) 출신이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백 감독은 이날 팀을 이끌고 인근의 한국체대에서 스파링을 하기위해 상경했다가 필자를 찾았다.
백 감독을 보자, 필자의 기억은 36년 전인 1985년 10월의 어느 날로 되돌아갔다.
그날도 필자는 88 프로모션을 방문한 두 사람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시골 냄새 풀풀나는 채취가 묻어난 두 사람. 당시 경북 풍기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던 백 관장과 그의 제자인 이경연.
이경연은 1984년 영주공고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 선친마저 타계하자 프로로 전향하기 위해 이날 88 프로모션을 방문했다,
전 대한복싱협회 백낙춘 전무이사와 제자 이경연챔프(사진 오른쪽). 조영섭 객원기자1958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면 출신의 백 감독은 복싱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1974년 복싱에 입문한 그에 대해 대한복싱협회 정창구 심판은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출신 때문인지 몰라도 체력이 천하장사였고 복싱 스킬도 정상급 복서였다"고 회고했다.
고교 졸업후 백 감독은 인하공대에 다니는 형님이 계시는 인천을 왕림 하다 인천현대체육관과 대헌공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거친 후 고향인 풍기로 낙향했다.
1982년 그곳에서 복싱체육관을 개관, 후진양성에 몰입해 송인혁 이경연(이상 영주공고)과 주오호 (대영고) 등의 걸출한 복서를 배출했다. 이후 1999년 영주시청 감독에 부임, 멘탈에 중점을 두고 지도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광중, 권기덕, 김기석, 김춘식, 이상민, 김주성, 이경렬, 김경수, 이도재, 정재민, 신승호 등 대형복서들이 화수분처럼 지속적으로 배출했다.
지도력을 인정받으며 새천년엔 영주중학교, 2002년엔 영주 제일고, 2003년엔 영주 동양대학을 차례로 창설해 볼모지 영주복싱의 활로 확장에 공헌했다.
탄력 받은 백감독은 2007년 세계복싱연맹(AIBA) 심판을 거쳐 2012년 대한복싱협회 부심판장을, 2015년에는 대한복싱협회 전무에 발탁됐다.
백낙춘 감독과 현대판 평강공주로 불리는 권영애 여사(사진 오른쪽). 조영섭 객원기자백 관장의 뒷편에는 아내 권영애 여사가 있었다. 권씨는 당시 점방(店房)을 차려 일정한 수입이 없는 남편을 내조하는 조력자 역할을 독톡히 했다는 것이 주변 복싱인들의 전언이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복싱 외길을 걷고 있는 그와 담화를 나누면서 제자 사랑에 고개 가 숙여졌다.
1987년 6월 5일 제자 이경연이 IBF 미니 멈급 세계타이틀전을 벌일 때 풍기인삼을 지속적으로 훈련캠프로 공수했다. 화답이라도 하듯 이경연은 경북 출신 첫 세계챔피언이자 IBF 미니멈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여담이지만 영주공고 출신인 이경연이 세계정상에 오르자 대구공고 출신 전 대통령인 전두환씨가 영주공고에 특식을 제공 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이경연은 1965년 1월 경북 봉화태생으로 영주공고 2학년 때인 1983년 제64회 전국체전 코크급 8강에서 신명수(청소년 대표)를 판정으로 이겼다.
신명수는 WBA.WBC. 플라이급 양대기구 챔피언에 등극한 김용강(유원건설)을 1983년 7월 세계청소년대회 선발전에서 이긴 복서다.
이후 준결승에서 후에 프로복싱 두체급에 걸쳐 정상에 오른 최희용(부산체고)에게 석패 했지만 소중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경연은 훗날 프로복싱 두체급 정상에 오른 최점환과 국가대표 상비군 신주섭(경남대) 등에 밀려 1985년 12월 프로로 전향했다.
1986년 1월 제15회 MBC 신인왕전에 출전, 극동의 테크니션 양동필을 꺽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후 대뷔 1년 6개월만에 10연승(3KO승)을 기록했다.
1987년 6월 5일 제3기구인 IBF가 태동 하면서 미니멈급(47.6Kg)이 신설됐고 동급 2위 일본의 가와가미 마사하루(8승 7KO승 1패)를 부곡 화와이 특설 링으로 불러 결정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가와가미 마사하루를 2회 KO로 잡고 신설된 IBF 미니멈급 세계정상에 오른다.
이로서 한국은 5명의 IBF 챔피언을 보유하게 된다.
이경연은 이 타이틀을 바로 반납하고 1987년 10월 신설된 WBC 스트로급 타이틀 결전을 치른다.
1988년 1월 31일 이오카를 상대로 WBC 스트로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이오카는 태국의 톤부라팜 을 잡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9전 전승(5KO승)의 강자였다.
158cm 신장의 이경연은 12cm나 신장이 큰 이오카에게 보디웍과 헤드웍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좌우 연타를 휘둘렀다.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선전했지만 11회까지 채점은 동점이었다.
적지여서 마지막 라운드에서 포인트를 끌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지한 그는 결국 화약을 짊어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승부구를 던졌지만 마의 12회에 이오카의 일격에 무너진다.
이경연은 오스카 경기 이후 전열을 추스려 9연승을 달려 20승(8KO승) 1패를 기록, WBC 스트로급 1위를 고수했다.
이오카와 맞대결을 펼쳐 판정승을 거둔 태국의 나파 카트완차이와 그해 연말 타이틀 매치를 하기로 했지만 스파링 도중 골정상을 당해 무산됐다. 이 타이틀은 최점환이 1989년 11월 12일 카트완차이(태국)를 불러들여 12회 KO승을 거두면서 차지한다.
이경연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 된 셈이었다.
1991년 전설의 복서 로페즈와 타격전을 펼치는 이경연(사진 왼쪽). 조영섭 제공1991년 12월 22일 미스터 퍼펙트(Mr. perfect)라 불리는 WBC 스트로급 챔피언 리카르도 로페즈와의 경기.
이 경기는 문성길의 5차 방어전과 함께 벌어진 더블 이벤트였다.
SBS 창사 개국 기념일과 맞물려 벌어진 이 기념행사에 SBS 방송국에서 중계료만 2억 5천만원을 지급했다.
세계타이틀 한 경기에 지불하는 중계권료가 통상 1억 원~ 1억5천만 원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액수였다. 당시 이경연의 트레이너는 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 출신의 김상현 관장이었다.
김 관장은 성실한 트레이너로 자신이 현역시절 터득한 노하우를 선수들에게 열과성으로 전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경기를 40일 앞두고 김철호 관장과 마찰로 탈퇴함으로써 트레이너 공백을 맞이한 이경연은 이영래 사범을 트레이너로 맞았다.
종전에 훈련하던 호텔에서 나와 이영래 사범 자택에서 합숙을 하며 일전을 준비한다.
명색이 세계타이틀전을 벌이는 선수가 사범의 자택에서 사범의 맏아들과 함께 잠을 자며 합숙을 했다는 사실은 의외다.
적어도 세계타이틀을 앞둔 선수라면 훈련 후 숙소 에서 명상과 함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전략과 전술을 구상하는 시간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경연의 상대인 로페즈는 28전 전승(21 KO)의 실력자로 신이 빚은 복서 차베즈가 연상될 정도로 콤팩트 한 복싱을 하는 선수였다.
로페즈 훈련을 지켜본 필자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견고한 커버링과 발레리나 같은 경쾌하고 부드러운 스텝, 이와 어우러져 여러 각도 에서 예리하게 발휘되는 카운터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1990년 오하시 히데유기를 상대로 5회 KO승을 거두며 정상에 오른 로페즈 는 한국의 박명섭, 오광수는 물론 태국의 사만 소르자트롱도 재물로 삼아 2001년 35세로 은퇴 때까지 52전 51승(38KO)1무를 기록했다. 스트로급 에서 무려 22차 방어에 성공한 역대급 복서였던 것.
상상하기 힘든 파워를 보유한 로페즈가 너무 높은 장벽으로 생각해서 그랬을까? 당시 김철호 매니저와 이영래 트레이너는 문성길을 필승조로 이경연을 추격조로 생각했는지 관심과 시선은 온통 문성길에 집중돼 있었다.
문성길의 미트를 받는 필자의 시선에 홀로 포커페이스(Poker face)를 유지하며 묵묵히 그림자 복싱을 하는 이경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경연의 체력이었다. 새벽 로드웍을 워커힐에서 불암산 오토바이 문성길과 함께 하면서 이경연이 앞서가는 문성길을 향해 전력 질주를 감행해 체력을 끌어 올렸다.
이경연의 강한 정신력과 맞물려 로페즈의 맹공을 육탄으로 커버하며 실력차를 뛰어넘는 근성으로 버텨 마지막 공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톨삭 옹삭파를 6회 KO승을 거두며 5차방어에 성공한 문성길. 조영섭 제공문성길은 다소 만만한 15승(11KO)1패를 기록한 톨삭 옹삭파(태국)를 맞이해 6회 KO승을 기록했다. 5차 방어에 성공하며 9천만 원의 파이트머니를 챙겼다, 이경연과 대비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도 그때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않고 최고의 복서 로페즈에 당당히 맞대응한 그가 자랑스럽다,
그런 이경연 관장이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 문성길과 조우할 때면 그 시절 그 추억이 새삼 떠오르곤 한다. 추억은 아름답다. 다시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명섭 객원기자(문성길 복싱클럽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