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N0W] 핸드볼 '미녀거포' 성경화, 생활체육 배드민턴도 '거포'(하)

1988 서울 올림픽 금자탑 쌓고 정들었던 태극 마크와 아듀
플레잉 코치 끝으로 은퇴, 핸드볼과 오랜 이별… 생활체육인으로 열정
빼어난 운동 재능, 배드민턴에서도 발현… 경상남도 생활체육 대축전 우승 주역
쉴 틈 없는 전원생활, 행복한 삶의 원천… "하루하루가 즐거워"

▣ 어떻게 지내십니까 … 1988 서울 올림픽 영광의 얼굴들 ⑤

성경화 여자 핸드볼 금메달리스트 [하]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핸드볼에서, 태극 낭자들은 금자탑을 쌓았다. 오른쪽부터 성경화, 김영숙, 임미경, 석민희. 성경화 제공

1988년 9월 29일, 한국 핸드볼이 새 역사를 쓴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여자 핸드볼이 극적으로 정상에 오르는 신화를 창출했다. 1948 런던 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올림픽 마당을 밟은 지 40년 만에 쌓은 구기 단체 종목 첫 금자탑이었다.

이날 밤 수원 체육관, 여자 핸드볼 결승리그 최종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국과 소련이 격돌한 대회전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판가름 나는 마지막 한판이었다.

전광판 계시기는 경기 종료가 채 2분이 남지 않았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러닝 스코어는 20:18, 한국이 두 골 차로 앞선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비기기만 해도 우승하는 소련(당시·현 러시아)이 끈질기게 쫓아오면서, 아직은 섣불리 승리를 장담키 힘든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한국의 절묘한 패스워크에 이은 마지막 결정적 골이 터졌다. 성경화→ 김현미→ 임미경→ 김현미로 이어진 패스 줄기를 받아 김명순이 다이빙슛을 터뜨렸다. 경기 종료 1분 51초 전이었다.

마침내 한국이 승전고(21:19)를 울리고 개가를 불렀다. 예선 라운드에서 당한 1패(對유고슬라비아전 19:22)를 안고 결승리그를 벌여야 했던 불리한 여건을 딛고 연출한 한 편의 우승극이었다.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자, 에이스인 '미녀 거포' 성경화를 비롯한 태극 낭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주저앉으며 진한 감격의 눈물을 흩뿌렸다. 고병훈 감독과 박재수 코치도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 서울 올림픽 영광을 끝으로 은퇴 수순 밟아… 첫걸음은 플레잉 코치

1988 서울 대회에서, 한국 여자 핸드볼은 올림픽 사상 구기 단체 종목 첫 금의 신화를 창출했다. 태극 낭자들은 그 뒤 1년에 한 번씩 모여 그때 그 시절의 감격을 되새긴다. 왼쪽부터 석민희, 임미경, 성경화, 김경순, 김명순, 김현미, 박현숙, 이기순, 한현숙, 김춘례. 성경화 제공

세계적 골게터인 성경화를 형용하는 별호는 다양했다. '핸드볼 여제'를 비롯해 '미녀 거포', '공포의 슈터' 등 그녀의 폭발적 중·장거리 드리이브포와 빼어난 미모를 연상케 하는 별명들이다.

그만큼 흡인력은 강렬했다. 팬들에게 절대적 사랑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

돌연, 그녀는 사실상 은퇴 수순에 들어갔다. 서울 올림픽의 열기와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인 그해 11월, 플레잉 코치(광주시청)로 코트에 나타났다. 서울 올림픽 제패 기념 제4회 체육회장기 전국 실업대회에서였다.

코치 겸 선수였으나, 코치로서 비중이 훨씬 높았다. 경기 출장 시간은 극히 적었다.

1인2역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6월 29일 광주 종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갖고 13년간 청춘을 불살랐던 핸드볼 코트를 떠났다. 행당초등학교 5학년(1976년) 때 입문해 성수여자중학교→ 정신여고→ 한국체육대학교→ 광주시청을 거치며 세계 여자 핸드볼계를 호령했던 화려한 발자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성경화 KHF 부회장은 밝게 웃으며 옛날을 회고하고 오늘의 삶을 들려줬다. 최규섭 기자

우리 나이 스물다섯, 코트와 결별하기엔 아직 젊은 나이였다. 팬들의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때엔 대부분 그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조류를 따랐을 뿐이다. 10년 가까이 국가대표로서 불태운 열정도 거의 다 소진한 상태였다."

그렇게 그녀는 정들었던 코트를 떠났다. 핸드볼계에 되돌아오기까지엔, 20년이 훌쩍 넘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2016년, 대한핸드볼협회(KHF) 71년 사상 첫 여성 부회장으로 '깜짝' 등장했다.

◇ 배드민턴에서도 발현된 빼어난 운동 재능, 그리고 열정

2018 경상남도 생활체육 대축전에서 여자 단체전 우승의 주역으로 맹활약한 성경화 KHF 부회장(뒷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동료 및 거제시배드민턴연맹 임원진과 함께했다. 성경화 제공

성경화 KHF 부회장은 여전히 변함없는 미모 못지않은 '건강미'가 돋보인다. 이제 50대 후반에 들어선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균형 잡힌 몸매다.

생활체육으로 시작한 배드민턴을 통해 다진 강건한 몸을 자랑한다. 20년 가깝게 즐긴 배드민턴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 됐다.

2005년, 정식으로 배드민턴 라켓을 잡았다. 집(경상남도 거제시) 근처의 배드민턴 동호인 클럽(제일)에 들어가며 연(緣)을 맺었다.

어느 정도 육아에서 벗어난 때였다. 네 살된 딸(김가람)이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을 활용해 배드민턴을 익혔다.

16년이 흐른 지금도 배드민턴 사랑은 한결같다. 매일 이른 아침에 두 시간씩(6~8시) 배트민턴과 사랑을 나눈다.

같은 클럽(여명) 동호인들은 그녀를 보고 두 번 놀란다. 끊임없는 열정, 그리고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한다.

천부적 운동 재능은 종목을 가리지 않고 발현하나 보다. 배드민턴에서도 발군의 솜씨를 뽐내는 그녀다. 2018년 9월 김해에서 열린 제29회 경상남도 생활체육 대축전 배드민턴 종목에서, 거제시 대표로 출전한 그녀는 여자 단체전 우승의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배드민턴은 개인(복식 포함) 운동이다. 그래선지 승부욕이 더욱 솟구치는 것 같다. 남자와 상대해 이겼을 때는 쾌감마저 든다."

역시 승부처에서 강했던 '승부사'답다. 사라지지 않은 승부 근성을 내비친다.

"무척 재미있는 운동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 대비 운동량이 많은 고효율 측면에서도 만점인 생활체육이다."

끊이지 않는 '배드민턴 예찬론'이다.

오늘날 딸이 어떻게 한국 배드민턴 기대주로 성장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남다른 승부 근성과 탁월한 운동 DNA를 물려받은 딸이 밟아 온 빛나는 자취와 나아갈 장밋빛 길이 눈앞에 쉽게 그려진다.

각종 농작물 가꾸며 바쁜 하루하루… "그래도 전원생활은 행복하다"

잔디가 깔리고 나무가 우거진 널따란 정원 한쪽엔,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성경화 제공

성경화 부회장은 결혼과 함께 전원에 파묻혀 지냈다. 거제도의 한적한 마을에서 남편(김형병 씨)과 딸과 함께 전원생활을 즐겼다. 딸의 진로를 체육 쪽으로 잡고 배드민턴 선수로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시절(6년여간)을 빼곤 줄곧 섬에서 살았다.

요즘 그녀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평범한 촌부(村婦)가 절로 연상된다. 영락없다. 하루를 여는 배드민턴 운동을 뺀 나머지 대부분 시간을 텃밭을 가꾸는 데 투자한다.

배추와 열무를 비롯해 상추·쑥갓·파·고추 등 각종 농작물을 재배한다. 먹을거리로 필요한 웬만한 채소는 스스로 가꾸고 키워 수확해 충당한다.

정성을 다해 가꾸는 텃밭이다. 성경화 제공

그래도 할 일이 남아 있다. 널따란 대지(1,750평) 곳곳은 그녀의 손을 요한다. 잡초 뽑기와 청소 등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전원생활을 즐기려면 무척 부지런해야 할 듯싶다. 그래도 좋은 점이 훨씬 많은 전원생활이다. 많은 나무와 집 한쪽에 자리한 연못을 바라보며 남편과 함께 한잔할 때면 '이렇게 사소한 데서도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감동에 젖어 들곤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저물어 간다. 분주히 움직였던 한나절을 떠나보내는 그녀의 얼굴에선, 행복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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