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N0W]女핸드볼 '여제' 성경화, 칩거 깨고 KHF 첫 여성부회장·재임까지(상)

1980년대 여자 핸드볼 전성시대 이끈 '미녀거포', 결혼과 함께 전원생활
26년 침묵 깨고 '화려한 재등장'… KHF 역사 새로 써
탁월한 운동 유전자, 딸에게서 다시 발현… 배드민턴 기대주로 성장

▣ 어떻게 지내십니까 … 1988 서울 올림픽 영광의 얼굴들 ⑤

성경화 여자 핸드볼 금메달리스트 [상]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구기 단체 첫 금메달의 역사를 새로 쓴 한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이 시상식 후 관중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가 에이스로 활약한 '미녀 거포' 성경화다. 일간스포츠 발간 "1989 스포츠 사진 연감"

1982년, 한국 핸드볼계에 새롭고 산뜻한 바람이 불었다. 애티가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소녀가 일으킨 신풍(新風)이었다. '여고생 거포'의 탄생에, 핸드볼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가대표팀 발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이 전성시대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세계 여자 핸드볼계에, 지각 변동이 인 1980년대였다. 진앙은 '태극 낭자들'이었다.
변방에 자리했던 한국 여자 핸드볼이 중앙으로 진입하는 격진을 일으켰다. 두 차례 올림픽에서, 금(1988 서울)과 은(1984 로스앤젤레스)을 각각 한 개씩 거둬들이는 강진이었다.

물론 주인공은 그녀였다. 그녀가 몰아온 강풍에, 세계 여자 핸드볼계는 경악했다. 절로 탄사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핸드볼 예선리그 A조 미국전에서, 성경화(오른쪽)가 수비진을 헤집고 슛을 터뜨리고 있다. 한국이 24:18로 낙승했다. 성경화 제공

"막을 수 없는 중·장거리포로 코트를 지배하는 '핸드볼 여제'다."

테크닉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단연 빼어났다. 천부적 볼 센스를 바탕으로 슈팅, 패스, 페인팅 등 두루 갖춘 개인기를 앞세워 골과 어시스트에서 모두 뛰어난 능력을 뽐냈다.

그뿐만 아니라, 경기 페이스를 조절하고 운영하는 재능이 뒷받침된 팀 전술 소화 능력도 일품이었다. '여우'란 별호로 불린 까닭이다.

마지막 한 점은 화용(花容)이다. 빼어난 미모는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미녀 거포'란 수식어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성경화!' 1980년대 전 세계 핸드볼 팬을 사로잡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름이다.

◇ 26년간 침묵 깨고 재등장 … KHF 71년 사상 첫 여성 부회장

성경화 부회장은 선수 시절처럼 여전히 웃음이 가시질 않는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띤 얼굴에선, 평온함이 묻어났다. 최규섭 기자

그 이름은 한때 잊혔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망각의 강'에 휩쓸렸다. KBS '스포츠 쇼'에서 방송 리포터로 활약하던 시절(1989~1990년)을 끝으로, 그녀의 모습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결혼과 함께 전원에 묻혀 살며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정주부로서 '보통 사람'의 길을 걸은 나날이었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 시절 속에서나 존재하는 왕년의 월드 스타였을 뿐이다.

2016년이 저물어 가는 세밑에, 그녀가 뉴스에 등장했다. 통합 대한핸드볼협회(KHF·회장 최태원) 집행부(제26대) 구성에서, 부회장으로 선임되며 핸드볼계에 돌아왔다.

1945년 대한송구협회(당시)로 출범한 KHF 71년 역사상 첫 여성 부회장이었다. 그녀의 스타성을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는 '화려한 재등장'이었다.

"제안을 받고 많이 고심했다. 조용한 삶을 바라는 성격이어서 갈등을 겪었다. 최고 운영 책임자로 영입된 최병장 상임 부회장님이 '한국 핸드볼의 밝은 내일을 위해 돌아와 함께 일하자.'고 권유하셨다. 마냥 뿌리치기에만은 죄송스러워서 마침내 받아들였다."

코트를 주름잡던 화려한 선수 시절에 느꼈던 인상을 떠올리면 잘 매치되지 않는 고뇌 같았다. 서글서글한 성품에 늘 웃고 동료들과 쉽게 어우러지던, 무척 친화력이 돋보였던 그녀 아니었던가. 그때를 돌이켜 보면 연상하기 힘든 번뇌였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코트에서 보였던 모습은 외향적 인상을 풍겼던 듯하다. 그러나 오히려 내성적이다."

2016년, 오랜 침묵을 깨고 대한핸드볼협회(KHF) 부회장으로 핸드볼계에 돌아왔다. 2020~2021 SK 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여자 MVP(최우수 선수)에 뽑힌 이미경(부산시설공단)에게 시상한 뒤 한 자리에 선 모습이다. 왼쪽부터 최병장 KHF 부회장, 이미경, 성경화 부회장, 길병송 KHF 부회장. 성경화 제공

4년여가 지난 올 3월, 그녀는 다시 부회장에 선임됐다. 최태원 회장은 새로 구성한 집행부(제27대)에 재포함하며 굳은 신뢰를 내비쳤다.

"지난 4년간 별다른 공헌도 하지 못했는데, 다시 부회장에 위촉됐다. 과분한 신뢰를 받는 듯싶어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제 대회에서 나타난 부진으로, 다소 침체한 기미를 띠고 있는 한국 핸드볼이 다시 도약하는 데 기꺼이 밑거름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 딸에게 삶의 초점 맞춘 모성애, 배드민턴 기대주 탄생의 모태

2019 한국중·고배드민턴연맹 회장기 학생 선수권 대회 여고부 개인 단식에서 우승한 딸과 함께 기쁨을 나눈 한 가족이다. 왼쪽부터 아빠(김형병 씨), 딸(김가람), 엄마(성경화 부회장). 성경화 제공

성경화 부회장의 뛰어난 운동 DNA는 당대로 스러지지 않았다. 하나뿐인 자식, 딸(김가람·19)에게서 다시 발현했다. 천부적 운동 자질을 물려받은 딸은 역시 태극기를 휘날릴 그 날을 꿈꾸며 정진하고 있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은 종목을 달리해 구현됐다. 대를 이은 운동 능력이 나타난 무대는 배드민턴이다.

딸은 꿈나무(마산 완월초등학교)→ 청소년 대표(마산 성지여자중학교)→ 국가대표 후보(성지여자고등학교) 등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배드민턴 유망주다. 이제는 실업(KGC 인삼공사) 2년 차로 국가대표 발탁을 과녁으로 삼아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예정된 결실이었는지 모른다. 탁월한 유전자를 물려준 데다가 엄마의 높았던 안목이 융합하며 상승의 힘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될성부른 떡잎임을 알아본 엄마는 딸이 적성을 발휘할 터전을 찾았다.

"(가람이는) 유아였을 때부터 활력이 넘쳤다. 가득 찬 에너지를 활용해 앞날을 헤쳐 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분야는 체육이라고 봤다."

역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1992 바르셀로나 배드민턴 여자 복식)로서 지도자로 활약하던 후배 정소영과 상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배드민턴 육영이었다.

2010년 10월, 초교 3학년이던 딸의 배드민턴 정식 입문은 이렇게 비롯됐다. 그와 함께 엄마의 생활 양식도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거주지를 옮겼다. 결혼 후 남편(김형병 씨)과 함께 꾸미던 보금자리(경상남도 거제시)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마산시)에 새 둥지를 만들고 딸 뒷바라지에 나섰다.

전원생활을 잠시 접어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순간적이었을 뿐이다. 체육 영재로 키우고 싶은 부모는 기꺼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택했다.

부모의 열성은 대단했다. 딸이 출전한 대회가 열리는 곳이면 전국 어느 곳이든지 찾아가 응원하고 격려했다. 캠핑카를 구입해 쫓아다니는 열의까지 보인 적극적 뒷받침이었다.

자랑스러운 딸과 함께하며 기뻐하는 모습에선, 대견한 딸에 대한 흐뭇함이 엿보인다.

딸은 부모의 정성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2013년, 대구광역시에서 열린 제42회 전국 소년 체육대회 배드민턴 여자 초등부에서, 딸은 우승과 함께 MVP(최우수 선수)에 뽑혔다(위 사진). 2년 반 만에 올린 풍성한 수확이요, 빠른 열매맺이였다.

삶의 초점을 딸에게 맞춘 엄마는 비로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눈시울을 붉히던 아빠도 끝내 뒤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엄마의 소망은 오직 하나다. 딸이 국가대표 1진에 뽑혀 국위를 선양함으로써 '한국의 딸'로 거듭나기를 열망한다.

"딸에게 운동은 삶의 원천이다. 그런 만큼 튼실한 앞날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한결 더 깊게 뿌리를 내렸으면 한다."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라도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운동선수로서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 다졌던 마음가짐을 늘 새록새록 되새기라고 당부하곤 한다. '유종의 미를 거두려면 땀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체육계의 철칙을 소중히 간직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딸의 눈부신 성장을 지켜보는 엄마는 흐뭇하기만 하다. 딸의 진로를 체육계, 그중에서도 배드민턴으로 선택했음은 옳았던 결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엄마는 딸이 배드민턴에 남다른 재능이 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생활체육인 성경화'로 변신한 그녀의 발자취를 좇아가 들여다봐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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