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可타否타]골퍼로 변신한 박찬호의 위대한 도전

박찬호의 KPGA 투어 군산CC 오픈 연습라운드 모습. KPGA 제공

2004년 15세 어린 소녀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소니오픈에서 오빠, 아저씨들과 맞대결을 펼쳤다. 소녀는 남자 프로들과 같이 백티에서 시원시원한 장타를 날렸고, 호사가들은 '성대결'로 몰아갔다. 그녀에겐 '여자 타이거 우즈'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재미동포 미셸 위 얘기다.

하지만 이후 수차례 PGA 투어 도전에서 그는 한 번도 컷 통과를 못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마케팅을 위해 남자 대회에 도전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0세이던 2009년이 돼서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데뷔한 그는 그 해 우승을 시작으로 통산 5승을 거뒀다. 만약 그가 일찍 PGA 투어 도전을 접고 LPGA 투어에만 전념했다면 분명 더 많은 승수를 쌓았을 것이란 동정론이 많았다.

그는 남성들과의 티샷 대결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경직된 자세로 드라이버샷을 날리다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것이다. 하지만 훗날 그는 어린 시절의 도전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 덕분에 골프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도전과 응전'이란 인식틀로 분석한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은 인간만이 갖는 특권이다. 도전은 인류사의 변곡점에서 역사를 바꾸는 기제(機制)로 작용한다. 인도로 가는 새로운 뱃길을 찾아 나섰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가 그랬던 것처럼.

인류 최초로 남극을 탐험한 아문센,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힐러리 경. 지구의 극지를 탐험했던 이들의 도전은 인류에게 무한한 감동과 가능성을 안겼다. 스포츠는 극지 탐험의 의미가 퇴색해진 요즘 아문센, 힐러리가 그랬던 것처럼 무한 도전의 아름다움을 재현한다.

운동선수에겐 도전이란 일종의 숙명이다. 더 강한 상대를 꺾기 위한 도전, 숫자로 나타나는 신기록에의 도전은 사실상 스포츠의 핵심이다.

육상 100m의 세계 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 남자 마라톤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위대한 이유는 1등을 해서가 아니라 꾸준한 도전으로 인간 한계를 넘어선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미셸 위가 위대한 이유는 부상 위험을 무릅쓰고 펼친 PGA 투어 도전 때문이다.

최근 박찬호의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투어 도전도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일이다. 그는 지난달 열린 군산CC오픈에 초청선수로 투어에 데뷔했다. 그가 누구인가. 미국프로야구(MLB)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다인 124승을 거둔 대투수다.

야구선수들이 은퇴 후 골프 티칭프로 자격을 딴 예는 간혹 있지만 정규투어에서 실력을 겨룬 것은 박찬호가 처음이다. 그는 단순히 대회 흥행을 위한 이벤트성으로 투어에 나간 것은 아니다. 투어 규정상 출전선수 10% 범위 내에서 핸디캡 3 이내 아마추어를 초청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정식으로 초청된 선수다. 그는 실제 핸디캡이 3이다.

은퇴 후 골프에 심취했던 그는 대회 준비를 위해 오랫동안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규투어에 앞서 출전했던 올해 KPGA 2부 투어 예선전에서 그는 투어 선수들보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훨씬 멀리 나갔다. 330야드를 예사로 날렸다. 다만 쇼트게임과 퍼트, 그리고 골프 심리면에서 아직 전문 선수들과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의 도전은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함께 출연했던 박세리가 도움을 주는 장면도 방영됐다. "제대로 골프를 해보고 싶다"는 박찬호의 말에 "취미로만 하라"는 박세리의 만류가 생생하다.

박찬호의 도전에 대해 뜻밖에도 PGA 선수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모든 언론의 관심이 주인공인 투어 선수들이 아닌 박찬호에 쏠렸지만 그로 인해 남자 투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열린 여자 메이저대회(KLPGA선수권대회) 보다 많은 팬들이 경기를 지켜봤다.

그는 출전 선수 153명 중 1~2라운드 합계 29오버파 맨 꼴찌로 컷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은퇴 후 새로운 분야에서 엄청난 도전을 했던 그 자체로 그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던 것이다.

그는 7월에 열릴 KPGA오픈 with 솔라고CC 대회에서 출전해 또 다시 도전을 이어갈 것이다. 컷을 통과하면 엄청난 결과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도전 정신만은 팬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줄 것이다.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코로나 블루 시대, 그는 야구에서 얻은 124승 못지않은 위대한 도전으로 국민들에게 더 큰 희망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박찬호가 KPGA 투어 군산CC오픈 1라운드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뒤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고 있다. KPG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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