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축제이야기]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이유(下)

에딘버러축제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의 역사에 깊은 관심
제2의 고향처럼 느껴 약자의 아픔에 함께 슬퍼하기도

스코틀랜드 풍경. 스마트이미지 제공

사실 나는 내가 스코틀랜드 잉글리쉬를 알아듣는다는 게 가끔 신기하다.

'스코티쉬'라는 매력적인 언어가 처음 선명하게 기억된 건 1999년의 에든버러가 아닌 그보다 3년 이른 1996년이었다. 당시 화제작이었던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은 충격적인 영상과 함께 알아듣기 힘든 미스터리한 영어로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이기 팝(Iggy Pop)의 러스트 포 라이프(Lust for Life)의 신나는 비트와 함께 스코틀랜드 출신의 배우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의 독백이 흘러나온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Choose life, Choose a job, Choose a career, Choose a family…'

정확한 발음으로 짧고 강한 메시지를 전하던 독백. 특이한 건, 'Job'을 '죱'으로, 'Family'를 '파밀리'로, 'Compact disc players'는 '콤팍트 디스크 플라이야스'로 발음하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강한 흥미를 느꼈다는 점이다.

그는 영화속에서 "스코티쉬(스코틀랜드 사람)인게 자랑스럽지 않아? (Doesn't it make you proud to be Scottish?)"라고 묻는 친구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스코티쉬인건 그지같애! (It's shit being Scottish!)" 그는 자신들이 '문명이 낳은 가장 초라하고 비겁하고 한심한 쓰레기'라고 말하며,"사람들은 잉글리쉬(잉글랜드 사람)를 싫어하지. 난 아니야. 그들은 그냥 재수없는 놈들이지. 우리는 재수없는 놈들의 식민지인 거고. (Some people hate English. I don't. They're just Wankers… We are colonized by Wankers.)"

영국 지도. 에이투비즈 제공

학창시절 세계사를 열심히 들었다면 기억할 수도 있을 '영국'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의 공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영국은 여러 개의 왕국이 합쳐진 형태였고, 브리튼(Britain)섬에는 3개의 왕국이 있었다.
잉글랜드(England)왕국은 섬의 중남부에, 스코틀랜드(Scotland)왕국은 섬의 북부에,
웨일즈(Wales)왕국은 섬의 남서부에 위치해 있었고, 여기에 북아일랜드를 포함하면 '본토' 개념인 브리튼(Britain)이 된다.

영연방을 뜻하는 United Kingdom은 본토인 브리튼을 포함한 호주, 캐나다, 아프리카 등
해외 연방(옛 식민지)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가 영국이라고 할 때는 Great Britain(GB)으로 쓰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만 포함된다.

복잡한 역사만큼 길고 다양한 이름을 가진 영국에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쉼없이 '독립 주권국'을 목표로 정치적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4년에 있었던 주민투표는 '스코틀랜드가 독립국이 되어야 하는가? (Should Scotland be an independent country?)'라는 질문의 찬반 투표였다.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의 결과는 찬성 44프로, 반대 55프로로 독립의 꿈이 무산됐었다.

브렉시트 그래픽. 에이투비즈 제공

2016년 많은 사람을 멘붕에 빠뜨렸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때에도 스코틀랜드는 EU잔류를 택했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탈퇴가 우세해 브렉시트가 결정되었고, 이로 인해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재차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에서 메인 배경이 되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는 낙후된, 미래가 없는 도시로 그려진다. 이곳에서 주인공들은 마약에 취해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후반부에 주인공이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향하는 곳은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으로 활기 넘치는 멋진 도시로 그려진다.

나는 늘 약자에게 마음이 간다.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로 여대생이 시위 중 사망한 테헤란에서, 2017년 축제가 한창인 바르셀로나 무대 옆 카탈루냐 독립 시위 현장에서, 2018년 현실의 정치적 외교적 종교적 이슈에 불이익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축제의 자원봉사자들 옆에서 나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의 두번째 고향인 스코틀랜드도 아픈 손가락이다. 나는 파운드를 바꿀 때마다 억울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잉글랜드 파운드는 브리튼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잉글랜드에서 사용할 수 없다.

파운드화. 스마트이미지 제공

어느 여름, 에든버러에서 사용하던 화폐를 그대로 가지고 런던에 갔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웨이터가 가져온 영수증 위에 파운드를 올려놓았다. "죄송하지만 스코틀랜드 파운드는 받지 않습니다.( I'm sorry but we don't take Scottish pounds in London.)"나는 속으로 'F word'를 외쳤다. 생활속에 녹아있는 은근한 무시. 독립을 하면 외교적으로 어떤 위치가 되고, 경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고 등 고려해야 할 수많은 이슈가 있겠지만, 스코틀랜드사람들의 누적된 억울함과 애 닳은 목소리에 나에게 투표권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독립 찬성'에 한표를 던질 것만 같다.

2020년 1월 31일 영국이 EU에서 탈퇴하자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브렉시트는 우리의 뜻이 아니다"라며 영국의 탈퇴에 대해 비판했고,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은 다시 거세지고 있다.

글 : 권은정 에이투비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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