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론볼 동호인클럽의 유승연 회장(사진 맨 왼쪽)과 권오숙 총무(유 회장 옆)가 경기 도중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최규섭 기자마음을 담아 1.5㎏의 볼(Bowl)을 굴린다. 고통과 번뇌를 씻어 내려는 간절한 바람은 볼과 함께 굴러간다. 싱그러운 초록빛 잔디 위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흩어져 사라진다.
불편함도 날려 보낸다. 볼을 굴리는 횟수에 비례해 행복감도 점증한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어난다.
골몰하는 모습이다. 다음 볼을 어떻게 던질까 골똘히 생각하나 보다. 볼을 쫓는 눈에선 진지함이 배어 나온다. 승부욕마저 엿보인다.
한 폭의 멋들어진 그림이다. 봄 햇살에 눈이 부신 최근의 풍경이다. 잠실 한강공원 론볼경기장에서 빚어진, 감동을 자아내는 정경이다.
◇ 론볼은 살아가는 힘의 원천
2010년대 세계 론볼계를 풍미했던 곽영숙 씨(사진 가운데 태극 마크 상의)와 회원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강남 론볼 동호인클럽 제공비록 휠체어에 앉아 플레이하고 있어도,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전혀 비치지 않았다. 오로지 볼의 궤적을 쫓으며 다음 플레이를 구상할 뿐이었다.
육체적 부자유스러움은 잊은 지 오래였다. 충만한 만족감에서 우러나오는 하나하나의 플레이였다. 진정한 행복감을 만끽함이 엿보이는 몸짓이었다.
"론볼(Lawn Bowling·Lawn bowls)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다."
유승연 강남 론볼 동호인클럽 회장(65)의 말에선, 확신이 묻어 나왔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론볼만 한 운동이 없다. 그 뿐만 아니다.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을뿐더러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즐길 수 있다. 그야말로 '만인의 스포츠'다."
유 회장 그 자신도 척수장애인이다. 한때는 실의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우연히 론볼을 접하게 되면서, 그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2015년의 일이었다.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그는 홀로 론볼의 매력을 향유하려 하지 않았다. 주위에 권유해 론볼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임경남(60)-권오숙(52) 씨 부부도 유 회장의 손에 이끌려 론볼의 마력(魔力)에 빠졌다.
유 회장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적극적으로 동호회 구성에 나섰다. 2016년 2월, 강남 론볼 동호인클럽이 창설된 배경이다.
◇ '치유제' 론볼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 누려
2019년 제39회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여자 B7 3인조 동메달을 차지한 권오숙 씨(사진 오른쪽 끝)가 시상식이 끝난 뒤 포즈를 취했다. 권오숙 제공역사는 짧다. 5년의 연륜, 유아기를 막 벗어났다. 서울 장애인론볼연맹에 등록한 6개 클럽 가운데 막내다.
회원 수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장애인 15명과 비장애인 3명 등 총 18명이 구성원이다.
중증 장애인들이 주축을 이룬 신생 클럽이긴 해도, 전력만큼은 막강하다. 불운했던 시절과 불우한 사연을 뒤늦게 연을 맺은 론볼로 씻어 내고 활기차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어리지만 서울 지역을 대표하는 동호회로 빠르게 성장한 데엔, 까닭이 있다. 간판 곽영숙 씨(65)를 비롯한 내로라하는 회원들의 빼어난 실력 때문이다.
한국 론볼계에서, 곽 씨는 신화적 인물이다. 20년 가까이(2001~2019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국위를 선양, 체육훈장 1등급인 청룡장을 수훈(受勳)했다.
지체장애인 1급인 곽 씨는 세계 론볼계에서 이름을 떨치며 유명세를 치렀다. 세계 장애인 선수권 대회(2011년 금·이하 여자 단식 B6), 장애인 아시안 게임(2014 인천 금) 등 메이저 대회를 휩쓸며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나가면, 상대는 '곽영숙'이라는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주눅들어 제대로 경기를 풀어 가지 못할 정도다."
유 회장의 말처럼, 곽 씨는 국내 마당에선 독보적 존재다.
총무를 맡고 있는 권 씨도 클럽을 알리는 데 한몫했다. 현재 국가대표 상비군인 권 씨는 여자 B7 부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9년 제39회 서울 장애인 전국 체육대회에서, 복식 2인조 은메달과 3인조 동메달을 획득했다.
"국가대표 발탁 문턱에서 탈락해 아쉬웠다. 그래도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혔다. 그런 만큼 자부심을 갖고 더욱 노력해 뜻을 이루고 싶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2021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권 씨는 1차 단식 5위와 2차 단식 3위를 각각 기록했다. 이룰 듯했던 국가대표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권 씨의 론볼을 향한 열정은 또 다른 결실로 이어지기도 했다. 생활체육 지도자 자격증 2급(장애인)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필기·구술·실기 관문을 모두 통과하고 올해 연수(비대면 교육 90시간)를 받고 있다.
인생의 짝꿍인 임 씨도 대단한 실력가다. 한 해에 열린 전국 대회를 통합한 한국 랭킹에서, 임 씨는 2018년 17위(이하 남자 B7 단식)와 2019년 9위에 각각 자리할 만큼 솜씨가 뛰어나다. 서울 장애인론볼연맹 사무국장으로도 활약 중이다.
"부부가 같이 플레이하고 전술과 전략을 함께 구상하고 운용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대화의 장이 펼쳐져 부부애가 더 깊어지는 듯싶다. 상호 보완의 관계가 형성된 '동반자'라고 할까?"
부부가 한목소리로 함께 론볼을 즐기면서 사랑이 더욱 깊어졌음을 밝힌다.

강남 론볼 동호인클럽은 지역에 뿌리내리고 론볼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동호인 교실도 열고 있다. 권오숙 제공론볼은 영국이 발상지다. 그런 까닭에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에서 사랑받고 있다. 한국에선, 1980년대 후반에 첫선을 보였다.
그런데 30여 년이 흐른 지금, 론볼이 가장 활성화한 나라는 한국이다. 한 해에 열리는 전국 규모 대회만도 2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론볼은 한국에서 활기를 띠고 있는 스포츠다. 물론 실력도 지구촌 최상위권이다.
험난했던 길을 헤치고 나온, 되돌아보기 싫은 시절을 딛고 열정을 불사르는 론볼 인구가 많은 점은 그 중요한 원인이다. 강남 동호인클럽도 그렇다. 모든 회원이 저마다 밝히기 힘든 불우한 사연을 지녔다.
곽 씨는 평범한 주부였다. 감당키 어려운 시련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26년 전, 4층 베란다에서 청소하다가 떨어졌다. 4년 넘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절망의 시간이 계속됐다. 삶을 저버릴까 하는 극단의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2000년 론볼을 만나며 어둠에서 벗어났다. 새로운 희망의 삶이 비롯됐다.
어찌 곽 씨뿐이겠는가.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에 시달리는 척수장애인, 근근이 삶을 꾸려 나가는 기초생활 수급자, 외로움에 시달리는 독거노인 등 회원 모두에게 론볼은 치유약이다.
"한 경기당 보통 50~70분 소요된다. 플레이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가신다. 경기장에 들어서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지적·정적 운동인데도 체력 증진에도 효능이 있다. 원만한 대인관계 형성에 이바지함은 물론이다."
론볼의 강점을 열거하는 유 회장의 자랑은 끝이 없다. 론볼에서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직도 론볼을 낯설어하는 분들이 많은 듯싶다. 이토록 좋은 삶의 치유제를 우리만 누린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우리 클럽 문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 있다. 누구라도 환영하니까, 주저하지 말고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
유 회장은 어떤 재활 스포츠가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 즐거운 여가 생활로 행복을 느끼려는 사람 등에게 론볼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전화번호(010-7374-4753)를 밝혔다.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겠다는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