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言]태권도 원로 강원식 "국기(國技), 어원 알고 쓰나"

강원식 전 국기원장 "태권도 역사 철학 공부 안한다"
강 원장, '2020 태권도를 빛낸 사람들' 선정돼 태권도원에 헌액
면전에서 김운용 총재 퇴진 요구했던 강골
"목표 동일한 태권도진흥재단과 국기원 통합해야" 등 쓴소리

강원식 전 국기원장

"대학에 태권도학과도 많지만 요즘 젊은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역사와 철학에 대해 너무 몰라요. 태권도가 국기라는데 국기가 어떻게 나온 말인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태권도 원로인 강원식(83) 전 국기원장이 태권도 후학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강 전 국기원장은 최근 태권도 명예의 전당 격인 '2020 태권도를 빛낸 사람들'에 선정돼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 헌액됐다.

그는 송무관 중앙본관 총관장과 국기원 특수법인 전환 이후 초대원장을 역임했고, 태권도학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태권계의 대표적인 강골이다.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으로 체육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을 때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2000년대 초 태권도계 민주화 바람이 불 때 면전에서 김 총재의 퇴진을 요구했던 그였다.

2013년 국기원장에서 물러난 뒤 경기도 이천시 자택에서 칩거해온 강 전 국기원장은 태권도계가 분열로 술렁일 때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소신을 가감 없이 전하곤 했다.

그는 '국기원'의 유래에 대해 "1972년 대한태권도협회 중앙도장으로 국기원이 건립됐을 때 일본의 국기관(國技館)을 흉내내 국기원으로 했던 것"이라며 "좀 더 고민했으면 '태권원'으로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강 전 국기원장은 사실 태권도란 명칭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다. "그냥 '태권'이라면 됐지 '도'자를 붙인 것도 일본 '유도' '가라테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지론이다.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태권도 진흥법에 '태권도는 국기다'라는 말 대신 다른 표현을 넣었을 것이고, 이런 오류는 젊은 태권도학도들이 역사 공부를 게을리한 탓입니다."

그는 태권도를 무도, 무술, 무예로 구분 없이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공부를 조금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고 목청을 높였다.

"동양 3국의 마샬아트에 대해 중국은 무술, 일본은 무도라고 하고 있다. 한국은 정조 때 발간된 '무예도보통지'에 나온 것처럼 '무예'로 쓰면 되는데 괜히 남의 나라 말을 혼용하며 스스로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무예(武藝)는 단순한 재주나 기술을 넘어 예술, 표현, 아름다움 등을 포함하기에 무술, 무도 보다 훨씬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전 국기원장은 태권도에 관한 이같은 역사적, 철학적 의미를 담은 용어를 우리가 제대로 사용할 때 비로소 태권도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권도진흥재단은 지난 3월31일 '2020 태권도를 빛낸 사람들'에 선정된 강원식(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원로와 박해만(사진 오른쪽에서 세번째) 원로를 초청해 헌액식을 가졌다. 태권도진흥재단 제공

그는 평소 태권도진흥재단과 국기원을 통합을 강조했다. 정부 예산을 받아 태권도 발전에 힘쓰는 진흥재단이나 단증 수수료를 기반으로 세계태권도본부 역할을 하는 국기원은 조직 목표가 동일하므로 행정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다.

강 전 국기원장의 의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는 통합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1970대 중반 태권도 관 통합의 주역이었고, 1990년대 초 대한태권도협회 전무이사로도 활약했던 강 전 국기원장은 올해 도쿄올림픽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도쿄올림픽에서 당장 가라테와 태권도가 비교가 될 텐데 현재의 태권도 경기규칙은 원래 태권도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걱정입니다."

그는 태권도경기의 전자호구에 의한 차등점수제가 태권도의 박진감을 떨어트리고 궁극적으로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 도중 강 전 국기원장은 자신의 소신을 밝힐 때면 젊은 시절 그랬던 것처럼 열변을 토했고, 언짢았던 과거사에 대해서는 분노를 그대로 표출했다.

그는 자신의 국기원장 재임시 오현득씨의 국기원 입성을 막지 못한 것은 자신의 패착이었다며 후회했다.

당시 친여인사인 박창달 자유총연맹 총재로부터 오씨를 국기원 부원장으로 추천받았는데 이를 막지 못하고 연수원장으로 받았다는 것. 오씨는 그 뒤 국기원장이 돼 각종 추문에 휩싸이면서 국기원장 신분으로 구속돼 태권도계의 불명예를 자초했다.

거동이 불편한 강 전 원장은 이천시 신둔면 인후리 산자락에 위치한 집 앞에서 하루 2시간 걷고, 자신이 고안한 체조를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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