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루드 파크에서 본 에든버러 전경. 에이투비즈 제공 켈리는 스코틀랜드 최대일간지 스콧츠맨(The Scotsman)의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이다. 오랜 시간 무용과 피지컬 씨어터의 전문 비평가로 활동해 온 그녀는 시대가 지나면서 아트서커스와 캬바레 등의 예술과 엔터의 경계가 모호한 쟝르도 커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따뜻한 시선으로 무대를 보는 사람이다.
그녀의 가슴을 거쳐 나온 글들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 아티스트와 창작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나는 그녀의 비평은 그래서 비난이 아니다. 신랄하지 않다. 그렇다고 별점을 무조건 잘 준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녀의 별점은 평가의 가이드대로 공정하지만, 별점이 낮을 때조차 그녀의 글에는 연민(Sympathy)이 묻어 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공연을 리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에든버러 거리홍보. 에이투비즈 제공 켈리의 스케줄은 축제기간동안 가히 살인적이다. 몇 개월에 거쳐 공들여 확정했을 리뷰할 공연의 리스트업이 끝나면 날짜와 시간의 저글링이 시작된다.
공연장과 공연장을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해서 스케줄을 완성해야 한다. 운 좋게 같은 공연장의 앞뒤 공연으로 일정을 맞출 수 있다면 공연의 턴어라운드 시간인 30분 동안 빠르게 허기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녀의 스케줄에는 한 달간 식사시간이 없다.
그녀의 엄청난 스케줄과 나의 (나름) 바쁜 스케줄을 맞추는 작업은 첩보물이다. 운 좋게도 우리는 매년 만남에 성공(?)해 왔다. 각자 봐야 하는 공연의 스케줄을 공유하며, 가능하면 하루라도 같은 공연을 보려고 애쓴다.
이 경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 앉아서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간, 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짬짬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밀린 1년간의 질문과 대답을 어느 정도 소화해 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짧은 접선일 경우, 거리가 가까운 공연장에서 각자 관람해야 하는 공연을 기다리는 15분~30분간의 중간 접선이 전부일 때도 있다.
에든버러 스트리트 퍼포먼스. 에이투비즈 제공 그녀와 있는 순간은 따뜻함으로 충만하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짧고 굵게 최근 근황을 얘기하고, 축제의 규모는 매년 터질 듯 커져가는 데 리뷰하는 지면은 매년 줄어드는 아이러니를 걱정하고, 좀 더 많은 공연을 소개할 수 없는 환경에 탄식한다.
밥 먹을 시간을 없애 한 작품이라도 더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그녀의 진심은 공연을 만드는 사람에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사함으로 전해진다.
3년 전, 켈리는 촉촉해진 눈으로 며칠 전 보러 간 공연얘기를 꺼냈다.
“관객이 나 밖에 없었어. (I was the only audience.)”
비평가들은 프레스 티켓을 예약하기 때문에, 공연팀은 어느 언론사의 누가 언제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 지 미리 알 수 있다.
그녀가 본 공연의 배우들도 이미 스콧츠맨에서 리뷰어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객석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으니, 공연팀의 입장에서도 비평가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난감했을까…
“다음에 다시 오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나 한사람 때문에 공연을 해야 하다니… “
비평가는 오롯이 자신의 판단으로 작품의 리뷰를 하지만 다른 관객의 반응을 살필 때도 있다. 어떤 공연에 어느 연령대의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많은 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공연 리뷰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이내 공연이 시작되었고, 그녀는 작은 공연장에서 배우의 숨소리와 떨림을 느끼며 자신의 숨소리나 작은 움직임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경직된 몸으로 한 시간을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관객 틈새에서 공연의 중간 중간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메모를 하는 그녀지만 이번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고 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경직되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프린지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공연장별 네임밸류가 있고 상연하는 방식이 다를 뿐, 프린지의 300개가 넘는 공연장 중 많은 곳에서 아마츄어 공연도 상연된다.
도전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열정과 가능성, 신선한 무대언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며, 1947년 시작된 프린지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 말은 멋있지만, 아마츄어 공연팀이 맞닥뜨리는 건 관객이 없어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일 때도 있다.
포토콜. 에이투비즈 제공 프린지에서 탄생한 유명한 공연과 배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1971년 프린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고, 엠마 톰슨은 1981년 풋라이트라는 공연으로 퍼스트 페리에 어워드를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시트콤의 여왕이라 불리는 미란다 하트는 1994년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프린지에서 공연을 올렸고, 어메리카스 갓 탤런트로 유명해진 ‘테잎 페이스’도 프린지 출신이다. ‘스텀프’의 30년 해외투어 역사의 시작도, ‘난타’의 20년 공연의 시작도 에든버러 프린지였다.
그녀는 가능하다면 자신의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다양성을 담아내고자 한다. 매튜 본의 공연이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스코티시 발레의 신작, 그리고 조앤 롤링의 북 리뷰까지 해야 하는 그녀지만, 적어도 프린지 기간만큼은 아직은 이름 없는 공연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불러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글에는 자신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지를 부러 알리려는 의지가 1도 없다. 읽기 편한 일상적인 문체에 자신의 전문가적 소신을 담은 그녀의 글은
그녀의 10대 딸들이 쉽게 읽고 공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배려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글 : 권은정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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