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지내십니까… 1988 서울 올림픽 영광의 얼굴들' ②
김재엽 유도 –60㎏급 금메달리스트 [하]
1988 서울 올림픽 유도 남자 –60㎏급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김재엽(사진 오른쪽)이 깍지 낀 두 손을 치켜들고 기쁨에 겨워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발간 "1989 스포츠 사진 연감".유도밖에 몰랐던 지난 25년(햇수 기준)이었다. 유도계를 떠난 '유도인 김재엽에겐, 약육강식의 밀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굶주린 맹수 앞에 떨어진 먹잇감에 불과했다.
잠깐잠깐 강단에 섰으나 – 동국대학교(1999년), 순천향대학교(2001년) - 그마저 외풍에 짓눌려 오래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눈길을 돌려야 했다.
낯설기만 한 사회에 내팽개쳐진 그가 잡은 동아줄은 사업이었다. 캐피털(투자업), 매니지먼트, 전자 상거래 등 손에 닿는 대로 붙잡았다.
경험도 없었고 감도 없었다. 투자는 했지만, 경영은 지인에게 맡겼다. 실패는 필연이었다.
이제 남은 차례는 방황이었다. 선택과 결단의 어름에서, 고심은 깊어 갔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갈팡질팡하며 허덕였다.
2004년, 그가 맞닥뜨린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다.
◇ 은인의 손길에 힘입어 '인생 2막'… 경호 스포츠 학계에 큰 발걸음
김재엽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유도복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최규섭 기자"나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 준 '은인'이다."
2년 전,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됐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스쳐 가는 인연이려니 생각했다. 아니었다. 신이 일찌감치 그가 앞날에 맞이할 운명에 맞춰 안배한 고마운 존재였다. 유광섭 동서울대학교 총장이다.
"우리 대학교에서 후진들을 길렀으면 좋겠다."
간곡한 요청이었다. 정중한 제안에, 그는 기꺼이 후학 양성의 길로 들어섰다.
때도 맞물렸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고비에서, 눈앞에 아른거린 어린 자녀들(1남 1녀)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살길을 찾으려던 그였다.
"유도는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나 유도는 양날의 검이었다. 영예를 안겼을뿐더러 앗아 가기도 했다.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으려는 마음은 나를 학계 진출로 이끌어 갔다."
경호스포츠학과 제자들과 함께했다. 봄을 즐기는 스승과 제자의 모습에선, 정겨움이 배어난다. 김재엽 제공그는 새 장(場)을 펼치며 '인생 2막'을 열었다. 천직으로 여겼던 유도를 바탕으로 한 학문의 세계를 열어 보였다. 경호 스포츠학이었다. 경호스포츠학과를 개설하고 제자 육성에 나섰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의 인생극이 빚어낸 울림은 크고 넓게 울려 퍼지고 있다. 한국 경호 스포츠 학계에서, 깊이를 더해 가는 그의 발자취는 쉽게 엿볼 수 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제1호 경호학 박사의 영예도 안았다. 겸임 교수로 내디뎠던 발걸음은 이제 정교수로서 스포츠학부 부장에 다다랐다. 눈부신 변신을 이룬 '교수 김재엽'이다.
제자 육영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경호 스포츠 개척자로서 오늘도 미래를 이끌어 갈 동량지재(棟梁之材)를 기르려고 온 힘을 쏟는다.
◇ 생활 축구는 내 인생의 한 축… '도전 정신' 바탕으로 여러 분야서 재능
축구 둥지인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 회원들과 함께했다. 이덕화 구단주(좌측 사진 왼쪽)도 최수종 단장(우측 사진 가운데)도 그에겐 한 가족 같은 소중한 존재다. 김재엽 제공
그는 원래 축구 선수였다. 대구 남산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2년간 축구화를 신고 축구공을 쫓아다녔다.
4학년 초 어느 날, 돌연 축구부가 해체됐다. 그 자리를 창단된 유도부가 대신했다.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는 주저하지 않고 유도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때로부터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그는 생활체육 축구인으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생활 축구는 그에게 삶의 또 하나의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유도와 축구는 내 인생의 양축이었다. 오늘날 유도가 학문 영역에서 기능한다면, 축구는 건강 영역에서 작용한다."
그의 생활 축구 인생은 이미 31년 전에 비롯됐다. 지도자로 입문(1989년)한 뒤 축구를 향한 열망이 솟아올랐다. 이듬해 '잘하는 연예인 축구단'을 창단하며 욕망을 풀 수 있었다. 산파 역을 맡았던 그가 단장에 자리했다.
2007년, 그는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으로 둥지를 옮겼다.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싶어서였다.
1991년 창단된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은 영화배우 이덕화 씨가 구단주를, 역시 영화배우인 최수종 씨가 단장을 각각 맡고 있다. 둘을 비롯해 모든 회원과 15년째 매주 토요일마다 함께 어우러져 3~4시간 축구공을 쫓다 보니 이젠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는 '도전 정신'을 가슴속 깊숙이 새기고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늘 실천하려 애쓴다. 예능 방송에도 출연하며 다양성을 내비치는 그의 모습과 맥이 닿는 부분이다.
그는 1980년대 민속씨름계를 지배했던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현 인제대학교 교수)와 절친이다. 그의 권유에 따라 출연한 예능 방송이 인기를 모았던 JTBC의 '뭉쳐야 찬다'였다.
그의 축구 실력은 역시 남달라 안정환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처음 용병으로 출연했으나, 곧바로 정식 선수로 스카우트됐다.
"상당히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력적으로 마음에 와 닿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다양한 취미를 즐긴다.
시간이 나면 기타와 드럼을 연주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재능도 갖췄다. 지난해 MBN의 경연 예능 프로그램인 '보이스 트롯'에도 나갔을 정도다.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도전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평온하게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솔직하게 그때의 심정을 밝혔다. 도전으로 점철돼 온 그의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앞길에 또 어떤 '인생 막'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꺾일 줄 모르는 그의 승부 근성은 어떤 막도 거침없이 열어젖힐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