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축제이야기]그녀가 세상을 보는 시선 (上)

에딘버러 축제에서도 사전 홍보는 공연 흥행의 초석
영향력 있는 언론과 비평가로부터 좋은 평 받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

에든버러 거리홍보공연. 에이투비즈 제공

2005년 8월 첫째주 일요일 오후, 에든버러의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에든버러 축제의 대규모 메인 이벤트인 카발케이드(Cavalcade)를 보기 위해서다.

관객들은 차량이 통제된 거리의 양쪽으로 끝없이 길게 자리를 잡았고, 우리는 스타트라인에서 긴 대기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발케이드란 사전적 의미로 ‘말이나 자동차의 행렬’을 뜻하지만, 다양한 퍼레이드를 지칭하기도 한다.

퍼레이드는 밀리터리 타투(Millitary Tattoo)의 군악대 행렬, 백파이프 연주자들의 행렬, 슈퍼카 행렬과 함께 프린지에 참여하는 공연 중 사전 선별된 공연팀들의 화려한 볼거리가 이어지며 에든버러의 가장 큰 이벤트로 사랑받았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당시의 퍼레이드는 프린지에 참가한 공연팀에게 최고의 홍보기회를 제공했다.

카발케이드와 함께 축제 초반에 공연을 알리기 위한 중요한 행사로 프린지 오프닝 파티가 있었다.

두 이벤트 모두 그해에 참가하는 공연 중에서 극소수만 선별되어 참가할 수 있었고, 언론과 관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홍보 툴이 되었다.

당시 에든버러 경력 6년차였던 나는 익숙한 프린지 스케줄에 맞춰 대부분의 주요 행사에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

몇 년간 손발을 맞춘 현지 홍보대행사와도 매년 같은 루틴으로 무리없이 홍보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우리는 축제 시작 3~4개월 전부터 축제 측 이벤트 담당자에게 우리 공연의 의상, 분장, 퍼포먼스의 특이점을 어필했다.

메인 이벤트는 모두 제한된 수의 공연을 선보이므로 차별성과 볼거리가 선발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공연을 홍보하기 위한 체계적인 보도자료 배포와 두개의 메인이벤트 이외에도 축제 초반에는 인터뷰, 포토 콜(Photo call), 현지 유명인사와의 콜라보 등 최대한 주목받을 수 있는 스케줄로 언론과 관객의 관심을 자극해야 했다.

프린지 프로그램북. 에이투비즈 제공

현지 유명인사와의 콜라보 무대 중 우리가 매년 빠뜨리지 않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는 BBC공개방송과 머빈 스타터(Mervyn Stutter 영국 유명 코미디언 겸 작가)의 ‘픽 오브 더 프린지(Pick of the Fringe)’가 있었다.

BBC는 축제기간동안 팝업 씨어터를 세우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공개방송을 이어갔고, 그란트와 제니스의 인터뷰는 현지인들에게 공연을 소개하는데 큰 도움이 되곤 했다.

1992년부터 플레즌스(Pleasance)공연장에서 상연하고 있는 ‘픽 오브 더 프린지’는 영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머빈의 진행으로 매년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90분 동안 진행되는 이 공연에서 머빈은 선별한 7~8개 공연의 쇼케이스와 함께 특유의 재치 있는 인터뷰와 토크를 선보이며 그 인기를 28년간 이어가고 있다.

홍보마케팅 계획을 수립할 때 그 무엇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공연의 첫인상, 메인 이미지다. 이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1999년에는 1,200개의 공연을, 2019년에는 3,800개의 공연을 선보이는 에든버러에서 한국공연을 알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노출=비용이다.

온라인 광고든 오프라인 광고든 양껏 할 수 있는 환경이란 없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 선택과 집중을 요하는 아웃도어 광고에 이미지만큼 중요한 건 없다.

축제에는 포스터에 있는 유명배우와 코미디언의 얼굴만으로 매진(Sold-out)되는 공연도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힙한 이미지로 초반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공연도 있다. 물론 마지막까지 흥행을 이어가려면 결국 공연 자체가 좋아야 한다.

로얄마일 인파. 에이투비즈 제공

어쨌든, 에든버러에 처음 선보이는 공연이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눈길을 끌고 흥미를 유발하는 매력적인 하나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그저 관심을 모으기 위해 공연과 전혀 관계없는 이미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3월부터 홍보마케팅관련 준비를 순조롭게 진행하였고, 축제 첫째 주 가장 중요한 메인 이벤트와 프리뷰 기사작업, 포토콜, 인터뷰도 계획한대로 진행했다면, 이제부터 승패를 가르는 건 오롯이 작품성이다.

전문가의 리뷰와 공연을 본 관객의 입소문이 축제의 중후반 객석점유율을 좌우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는 스콧츠맨(The Scotsman), 가디언(The Guardian), 타임즈(The Times), 리스트(The List), 스테이지(The Stage) 등이 있다. 온라인 언론사가 매년 늘어나고 있어 공연을 리뷰하는 곳은 많아졌지만, 정작 메인 언론사들이 공연을 리뷰하는 지면은 줄어들고 있다.

에든버러에서 비평가(리뷰어/Reviewer)는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작성하며 별점을 준다. 누군가의 리뷰로 작품을 백프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8월 한 달간 상연되는 3,800개의 공연 정보가 담긴 공식 프로그램북의 두꺼운 책자를 넘기다 보면 누구나 백기를 들게 되고, 곧 믿을 수 있는 언론사의 리뷰 안에서 공연을 선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짧은 공연설명과 하나의 이미지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며, 축제기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8월 한 달간 공연장과 공연장으로의 이동시간을 감안하여 매일 최대 7개의 공연을 볼 경우, 관람가능한 공연의 수는 200개도 되지 않는다. 이는 단순계산의 결과일 뿐, 한 달간 200개의 공연을 관람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하루에 3~5개의 공연을 보던 나의 최대 스코어도 100개를 넘지 못했다.

에든버러 프린세스 가든. 에이투비즈 제공

공연을 좋아하고, 공연이 직업인 사람이지만 그렇게 본 공연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이기 일쑤다. 이 장면이 이 공연에 나온 건지, 이 캐릭터가 이 공연에 있었던 건지, 메모를 들춰보지 않는 이상 나의 기억은 완벽과 거리가 멀다.

요지는 어떤 공연을 반드시 봐야 한다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일반 관객이 일부러 별점 3개 이하인 공연을 선택해서 보는 경우는 드물다는 얘기다.

최고 평점은 별 5개다.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받은 별4개와 5개는 공연을 홍보할 때 가장 큰 무기가 된다. 이는 에든버러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축제에서 받은 언론사 리뷰는 다른 해외투어를 연계하는 홍보의 초석이 되며, 초청을 결정한 프리젠터가 현지에서 공연을 홍보하는 기본 자료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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