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례씨가 옆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서완석 기자 마음의 고요함이 청징(淸澄)한 호수 같다고나 할까. 인터뷰 내내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자신을 드러내지도, 과장하지도 않았다. 스스로를 적극 어필하지 않음으로써 인터뷰를 힘들게 했다. 고수의 향기가 이런 걸까.
최영례(51·김재훈 태권도장)씨는 경력 14년차 태권도 수련생이다. 성인이, 그것도 딸 셋을 키우는 주부가 여러 여건상 장기간 태권도를 수련하기는 쉽지 않다.
동네 구석구석 산재한 태권도장 대부분은 어린이 수련생들로만 가득해 성인이 발 디딜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부산에 살던 14년 전, 둘째 딸이 도장에 등록하면서 그의 태권도 인생이 시작됐다. 해당 도장에는 어머니 태권도반이 있어 딸과 함께 태권도 수련을 했다.
특별한 성인 대상 수련 프로그램이 없었던 탓인지 당시 어머니 태권도반 수련은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기초 체력이 다져지지 않은 채 무리한 발차기 연습을 하다 다치기 일쑤였다. 수련 도중 힘에 겨워 구토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 경기도 일산에서 인연맺은 김재훈 도장·· 창헌류 품새도 수련손날막기 포즈를 취한 최영례씨. 서완석 기자 2008년 부산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으로 이사를 왔다. 문득 태권도가 그리웠다. 여기저기 성인 태권도반을 수소문했고 우연히 전단지에서 김재훈 태권도장을 알게 됐다.
미국 보스턴에 본부를 둔 김재훈 도장은 여느 도장과 달리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최홍희의 창헌류 품새도 가르치는 도장이다. 일산 김재훈 도장은 한국 본부였던 셈이다. 이 도장은 미국에서 입증된 성인 태권도 수련 프로그램이 발달했다.
부산에서 힘들었던 기억만 있던 최씨는 이 도장 프로그램에 매료됐다. 이듬해 김재훈 총관장이 내한해 주먹지르기 등 몇 가지 동작을 시연했다.
"그때 깜짝 놀랐어요. 펀치가 얼마나 빠르고 강하고 정확한지. 수련의 최고 경지에 오르면 저런 내공이 생기는구나 생각하며 나도 끝까지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김재훈 도장은 수련생이 버티기 쉽지 않은 도장이다. 1년 정도 하면 초단을 딸 수 있는 여느 도장과 달리 2∼3년은 족히 걸린다.
승단 심사를 보려면 김재훈 총관장이 직접 눈으로 실력을 확인한 뒤에야 응심 자격을 주기 때문이다. 또 이 도장은 수련이 힘든 창헌류 품새를 더 배워야 한다. 태권도의 기본기가 집약돼 있는 품새 수련은 그 자체가 태권도 수련이 된다.
최씨는 평소 악바리 같은 근성을 살려 어려운 수련생활을 버텼다. 국기원 공인 단증으로는 4단. 하지만 창헌류 품새로 보는 김재훈 도장 단으로는 아직 3단이다. 4단이 되면 사범으로 일할 수 있다.
◇ "태권도의 즐거움은 수련자만 알 수 있다"상단막기를 하고 있는 최영례씨. 서완석 기자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낚시 텐트·파라솔 제조사 과장으로 일하면서도 태권도 수련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인터뷰를 가진 지난 26일에도 사업체가 있는 경기도 부천에서 저녁 8시에 도장으로 퇴근해 수련을 할 정도였다.
태권도 수련을 통해 그는 급했던 성격이 차분해졌다고 한다. 사람과 사물을 보는 태도가 한층 여유로워졌다.
사업상 타인을 대할 때도 자신감이 넘쳤다. 상대는 태권도 공인 4단인 그의 끈기에 찬사와 경의를 보내곤 한다. 건강은 덤이다. 동년배 여성들이 갱년기 증상을 호소할 때 그는 품새 수련으로 땀을 쏟아내며 잊어버렸다.
"이제는 태권도를 빼고는 제 인생을 생각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아무런 도구 없이 오롯이 맨몸만 사용하는 태권도의 즐거움은 수련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지요.”
그의 태권도 예찬론은 끊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