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지내십니까… 전(前) 축구 국가대표 선수 김주성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김주성(왼쪽)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의 태클을 따돌리고 돌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일간스포츠 간 "스포츠 사진 연감". '김주성!' 1980~1990년대를 축구계를 풍미했던 '야생마'다. 신세기인 2000년대 들어서며 행정가로 변신했어도, 그의 풍모와 기세는 한결같다.
한국 축구의 성장과 비약을 꿈꾸는 열정을 불태운다. 생활축구의 밝은 앞날을 짊어진 대한축구협회(KFA) 풀뿌리(GRASSROOTS) 프로젝트 리더로서, 밟아야 할 '운명의 길'일지 모르겠다.
정책 입안자에게 장기적 시각과 안목은 필수 요소다. 눈앞에 닥친 상황을 그때그때 헤쳐 나가려는 근시안적 처방전은 약효가 오래 갈 수 없다. 그가 생활축구가 뿌리내리는 데 밑거름이 될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세우려고 고심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 동호인의 한마당인 생활체육 축구가 본격적으로 체계화의 길에 들어선 지는 그래 오래되지 않았다. 2016년,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가 대한축구협회(KFA)와 통합되며 비로소 제도권 내에서 기지개를 켰다.
5년 전 새로운 틀을 만들려는 씨앗이 뿌려진 생활축구는 이제 싹튼 모양새다. K5~K7리그 체제를 갖추며 엘리트축구(K1~K4리그)와 더불어 KFA의 양대 축으로 움텄다.
"승강제로 운영되는 K5~K7리그가 형성됨으로써, 생활축구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은 마련됐다. 앞으로 가지와 줄기를 내뻗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하루바삐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가 삼은 과녁은 체계화한 생활축구 확대다. 현재 K5~K7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은 20~40대가 대부분이다. 특히, K5리그는 20~30대가 주축을 이룬다. 50~60대 동호인도 수용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
"3년 안에 50대 이상의 어른이 뛰놀며 즐길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할 생각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일은 사람이 꾸미고, 그 뜻이 이뤄짐은 하늘에 달렸다'고 하지 않았나? 한 방울의 땀까지 쏟아 내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도전 정신', 오늘의 '행정 전문가'로 꽃피운 원동력'야생마'의 질주는 행정가로서도 계속되고 있다. 환하게 미소를 띤 모습에선, 그 열정이 배어 나왔다. 최규섭 기자 그는 '최초'라는 단어와 유달리 인연이 깊다. 꺾이지 않는 도전 정신이 밑바탕을 이룬 데서 나온 결실인 듯싶다.
혜성같이 나타나 첫 태극 마크(U-20)를 달 때까지 무명의 설움을 곱씹었어야만 했다.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를 눈여겨본 지도자는 거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지방(조선대학교)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쉼 없이 닦달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곧, 대성의 밑거름은 도전이었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 선정 아시아 올해의 선수 무대엔, 그의 화려한 발자취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3년 연속(1989~1991년) 주인공의 영광을 차지했다. 물론 최초다. 3회 수상도 최다다. 아시아에선, 그만이 유일하게 세운 기록이다.
행정가로서도 마찬가지 궤적을 그렸다. FIFA(국제축구연맹)이 세계 축구를 이끌어 갈
행정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창설한 마스터 코스를 가장 먼저 이수한 한국인은 바로 그였다.
2003년 9월부터 1년간 ▲ 잉글랜드 레스터에서 스포츠 히스토리를 ▲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스포츠 경영학을 ▲ 스위스 노이샤텔에서 스포츠 법학을 각각 이수하고 프로젝트 논문을 발표하는 담금질은 지금의 행정 대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바탕이 됐다.
그는 국제부장(2005~2009년)→ 국제국장(2010~2012년)→ 사무총장(2012~2013년) 등 KFA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행정가로서 자질을 닦고 역량을 길렀다.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사무총장(2011~2014년)을 역임하며 EAFF 동아시안컵이 정착되는 데 일익을 맡기도 했다.
2018년부터 생활축구 개척자로서 심혈을 쏟고 있다. 17년간 엘리트축구에서 쌓인 경륜을 토대로 생활축구에서도 원숙한 행정력을 보인다.
"생활축구가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야 한다. 생활축구 활성화는 앞으로 건전한 사회, 건강한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영양소로 작용하리라 본다."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마지막 말이다. 자연스레 '생활축구 전도사'의 편린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