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N0W]명장 고병훈 "몸에 밴 선수촌 생활, 건강 원동력" [하]

88올림픽 금메달 일군 고 전 여자핸드볼 감독의 '운동인생 2막'
75세에도 생활체육인·· 오전 4시 기상→ 걷기·맨손체조
걷기는 파크골프와 함께 건강 지킴이 양대축
구상→ 실행→ 성찰의 일상생활·· 정신건강 위해 바둑도

▣ 어떻게 지내십니까… 1988 서울 올림픽 영광의 얼굴들' ①

고병훈 전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 [하]

1988년 9월 28일 서울 올림픽 여자 핸드볼 마지막 날 결승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최강 소련(당시)을 21-19로 꺾고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태극 낭자들은 코트에 쓰러져 서로를 부등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일간스포츠 사진 연감.
"전장에 나가는 장수는 승리를 노릴 뿐이다. 무릇 감독이라면 그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어야 한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 핸드볼을 이끈 장수는 고병훈 감독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어느 종목 사령탑이 내건 목표를 본 그는 이 같은 출사표를 밝혔다. 승부사라면 마땅히 품어야 할 야망은 최종 승리, 곧 우승이어야 한다는 그의 '승부 철학'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승부 세계에서 보내온 그는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그 정신을 마음속 깊숙이 되새기며 살아간다.

구상·계획→ 실행→ 성찰의 한결같은 하루하루에선, 철저한 승부사였던 그의 모습이 다시금 엿보인다. 그의 인생 2막은 여전히 승부사를 연상케 할 만큼 현재 진행형 운동 세계다.

고 전 감독은 우리 나이로 일흔다섯이다. 고희(古稀·70)를 훌쩍 넘어섰으니 분명히 노년의 나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도 중·장년 못지않은 체격과 체력을 바탕으로 건강미를 뽐낸다. 어떻게 이만큼 건강을 지키는지 자못 궁금하다.

◇ 줄기찬 일상 속 생활체육, 또 다른 '건강 지킴이'

그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국가대표팀 선수촌에 입촌한 지도자가 절로 떠올려진다.

고 전 감독은 1986년 말, 만으로 아직 불혹(不惑·40세)에도 들어서지 못한 젊은 나이에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앉았다. 이후 주로 태릉 국가대표선수촌(당시)에서 생활하며 자신도 모르게 습관으로 굳어진 하루 24시간 생활 양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곧, 건강을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으뜸 요소다.

그의 하루는 새벽 4시면 이미 시작된다. 눈을 뜨면 먼저 오늘 어떤 자세로 어떻게 생활할지 머릿속에 그리며 하루를 계획한다.

<사진>고병훈 전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은 매일 새벽 가마지천 산책로를 걸으며 하루를 연다. 김포시 홈페이지
1시간 후, 본격적으로 하루를 여는 실행 단계에 들어선다. 둥지(김포 신도시) 근처에 조성된 가마지천 산책로를 4㎞ 정도 걷는다. 맨손체조도 곁들인다. 걷기는 파크 골프와 더불어 그의 건강을 지키는 양대 축으로 기능한다.

"언제 어디에서든 실행할 수 있을뿐더러 그 효과도 무척 높은 운동 가운데 으뜸은 걷기라고 생각한다."

'걷기 예찬론'을 펼치는 그 답다고 할까? 웬만한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걷는다. 풍광이 아름다운 산책 코스까지 가까이에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태릉선수촌에서도 새벽이면 걷기를 거르지 않았던 그의 '생활 시계'는 오늘도 줄기차게 작동하고 있다.

7시 반쯤 아침 식사를 마치고 1시간 남짓 수면으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그날의 뉴스를 살펴본다. 1시간 반~2시간 소요해 그때그때의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살핀다.

점심 식사 후엔, 2018년 말에 시작해 행복감을 만끽하는 파크 골프를 즐긴다. 그는 운동과 함께 원만한 대인관계도 형성할 수 있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효과를 얻는 파크 골프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바둑도 빠지지 않는 일과다. 그는 "바둑은 정신 건강에 좋은 운동이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인터넷 바둑(피망)으로 즐기는 그의 기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한때 4단까지 올라갔는데, 요즘은 2단에 자리하고 있다.

저녁은 차분하게 하루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음악은 자칫 메마를 수 있는 정서라는 꽃에 물을 주는 듯한 느낌을 일게 한다." 저녁 9시 뉴스와 스포츠 뉴스를 끝으로, 그의 하루는 저문다.

◇ 지도자·행정인으로 쌓은 역량, '제2막 인생' 영양소

그는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풍성한 수확을 올렸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선 한국 여자 핸드볼 사상 첫 금메달의 대풍을 수확했다. 1999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해 치른 2000 시드니 올림픽 때엔, 순풍에 돛 단 듯 거침없이 나아가다가 암초(덴마크·노르웨이)를 잇달아 만나며 4위에 머물렀다.

아시아 무대는 그의 천하였다. 아시아 여자 핸드볼 선수권 대회를 호령했다.

1987년 제1회 암만(요르단) 대회를 시작으로 1999년 제7회 구마모토(熊本·일본) 대회까지 다섯 번 태극 낭자를 이끌고 출전해 모두 우승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1987년 한국실업핸드볼연맹의 산파 역을 맡았던 그는 시드니 올림픽을 끝으로 지도자에서 은퇴한 뒤 행정가로서도 빼어난 운영 능력을 보였다.

2002년 5월까지 대한핸드볼협회(KHF) 사무국장으로 변신해 2008년 말까지 재직하며 보인 행정 능력은 그런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보기다. 슈퍼리그(실업연맹 주최)를 거쳐 코리안리그(KHF 주최)로 확대 개편된 무대도 그가 연출한 작품이었다.

그는 또 다시 탈바꿈했다. 생활체육인으로서 '운동 인생' 제2막을 열어 가고 있다. 그가 여태껏 보인 성품과 정신 자세 및 운동 철학을 바탕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제2막은 역시 빼어난 작품으로 마무리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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