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준비 중인 권은정 자문위원. 에이투비즈 제공 모든 공연장은 환경이 다르다. 특히 에든버러 프린지의 공연 환경은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축제 기간동안, 극장마다 매일 7개~10개의 공연을 올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어린이공연이 11시에 끝나면 30분간의 턴어라운드(끝난 공연의 세트와 소품을 스토리지로 옮기고 다음 공연의 셋업이 진행된다)를 진행하고 11시 30분에 무용 공연이 시작된다.
12시 30분에 공연이 끝나면 다시 30분간의 턴어라운드가 진행되고 1시에 연극 공연이 올라간다. 이렇게 자정까지 혹은 새벽까지 공연이 이어진다.
한번 세팅을 해 놓으면 같은 패턴으로 한 달을 공연하는 것이니 혼돈의 첫 주만 지나면 공연팀들은 서로서로 협력하여 준비시간을 단축시키고 이내 평화가 찾아온다.
한달 남짓의 축제 기간동안 도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회차의 공연을 선보인다.
1999년에는 120곳의 공연장에서 1,200개의 공연이 올라갔고 2019년에는 360곳의 공연장에서 3,600개의 공연이 올라갔다.
거의 백여개의 공연이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에든버러 축제 거리. 에이투비즈 제공 우리가 공연한 볼룸에서는 오전 11시55분에 첫 공연이 올라갔다.
스코틀랜드의 최대 일간지 스콧츠맨(The Scotsman)으로부터 최고 평점을 받은 작품 '샤일록(Shylock)'은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나오는 샤일록에 관한 연극이었다.
1998년 전석매진을 기록하고 앵콜공연으로 돌아온 이 연극은 언론으로부터 '탁월하다. 모두가 봐야 할 공연! (An exceptional piece of theatre. Everyone should see it!)"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99년에도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2시 40분에 올라간 두번째 공연은 파리의 시르크 디베르(Cirque d'Hiver)에서 동메달을 받은 키르기스스탄의 크라운 서커스 공연이었고, 4시반에는 영국 라이브 씨어터 컴퍼니의 '엘비스와 함께 요리하기(Cooking with Elvis)'가, 6시50분에는 3년째 런던에서 매진을 기록한 영국의 코메디 트리오 '더 누알라스(The Nualas)'의 공연이 8시반에는 호주에서 온 원주민 출신의 배우이자 가수 레아 푸어셀(Leah Purcell)의 공연이 올라갔다.
레아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배우들은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고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턴어라운드'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9시반 레아의 공연이 끝나자 어셈블리 공연장의 조명, 음향, 무대 스텝들과 호주공연의 배우와 스텝들, 한국공연의 배우와 스텝들이 한데 얽혀 30분간의 웃지못할 쇼가 펼쳐졌다.
에든버러 축제 거리. 에이투비즈 제공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턴어라운드와 첫 공연을 문제없이 진행하기 위하여 나는 사전에 모두의 역할을 분단위로 나누어 놓았고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첫 실전에서 우리 팀은 긴장한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턴어라운드를 마쳤고 공연은 관객과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올라갔다.
에너지 넘치는 배우들은 혼돈 자체인 턴어라운드를 함께 하고 숨 고를 틈도 없이 무대에 서야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25회 공연의 '셋업-공연-철수' 루틴을 함께 하는 배우들을 보며 늘 짠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삼시세끼에 출연한 배우 유해진이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 내면서 '예전에 극단의 막내로 있을 때 무대를 만들어서 목공도 잘하고 막일도 많이 했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극단의 배우들이 무대, 대도구, 소도구, 의상까지도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었고, 셋업과 철수도 함께 했었다.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우리 배우들도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사실 외국의 전문 스텝들보다 우리 배우들이 모든 일에 센스가 넘치고 무엇을 하든 '훨씬 빨랐다'.
1999 에든버러 축제 <난타> 포스터. 에이투비즈 제공 ▲ 헤드 셰프(Head chef) 김원해 ▲ 퓌메일 셰프(Female chef) 서추자 ▲ 섹시 셰프(Sexy chef) 류승룡 ▲ 네퓨(Nephew) 장석현(현재, 장혁진으로 활동한다.) ▲ 매니저(Manager) 이창직, 5명의 매력 넘치는 한국배우들의 에너지로 만들어진 공연 '난타(영문타이틀 Cookin')'는 1999년 프린지에서 상연된 1,200개 공연 중 유일한 한국 공연이었고, 그 해 '가장 사랑받는 공연'이 되었다.
당시 20년째 운영되고 있던 어셈블리 공연장에서도 처음 선보였던 이 한국공연은 프린지 기록에 남을 성공을 거두었고, 2000년에 다시 찾은 축제에서도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한국공연팀은 프로페셔널하다. 한국사람들은 친절하다. 뭐든 잘한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는지 더 철저히 준비했고 모든 면에서 완벽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공연이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연이 되기 이전에 우리는 '스텝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연팀'이 되었다.
글 : 권은정 에이투비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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