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도시속으로 - 롤러코스터 날씨 에든버러

에든버러 전경. 에이투비즈 제공

1999년 8월, 런던의 무더운 여름을 추억하며 도착한 에든버러의 기온은 18도였다. 오후 5시, 비행기가 에든버러 상공을 날고 있던 순간에도 공항에서 시내의 숙소로 이동할 때에도 세차게 비가 내렸다.

민소매에 청바지를 입고 있던 나는 양팔 가득 소름이 돋았다. 트렁크에 있는 옷을 떠올려 보았다.

하루 전, 나는 뉴욕의 뜨거운 햇살아래 7월 한달의 리허설을 마쳤다.

한국에서 짐을 쌀 때도 미국과 영국에서 보낼 7~8월 여행가방에 따뜻한 겉옷은 커녕
긴 팔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

뉴욕에서 함께 일하던 미국인 스텝은 작별 인사와 함께 에든버러에 대한 힌트를 줬었다.
"날씨에 대비하는 게 좋을 거야.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거든.

You'd better prepare for the weather. There are 4 seasons in One day."

당시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시 묻지 않았다.

지금은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다.

지난 20년간 에든버러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대답도 이렇게 시작된다.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어요."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30분 남짓한 시간에, 나는 이미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

로얄 마일 전경. 에이투비즈 제공

에든버러 공항을 벗어나 하늘과 맞닿아 있는 무성한 초록을 지나 고풍스러운 2~3층 높이의 벽돌 건물들을 지난다.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시야를 가로막는 높은 건물은 없다.

18세기, 아니 그 이전의 스코틀랜드로 시간여행을 온 것만 같다.

에든버러 동물원과 헤이마켓(Haymarket)을 지나 도시의 메인 거리인 프린세스 스트리트(Princes St)에 진입한다.

에든버러는 이 거리를 경계로 구도시와 신도시로 나뉜다.

거대한 바위산 위에 지어진 에든버러성(Edinburgh castle)이 한눈에 들어온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치열했던 전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에든버러성은 전략을 모르는 내가 봐도 함락시키기 어려운 최적의 요새 같다.

어셈블리홀. 에이투비즈 제공
한달간 공연하게 될 어셈블리룸스(Assemblyrooms:의회회관)가 있는 조지 스트리트(George St.)를 지나, 차는 퀸 스트리트(Queen St.)에 멈춰 섰다.

우리가 머물게 될 곳은 호텔이 아니라

죠지안 양식(Georgian Architecture:18세기에서 19세기로 이어지는 조지왕조기의 건축양식으로, 영국이 사회적으로 안정된 시기의 세련된 문화가 반영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을 8월 한달간 빌려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에어비앤비의 개념이 없던 당시엔 한달이지만 현지인처럼 살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집에는 없는 게 없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누군가 오늘 아침까지 밥을 먹고 대청소를 마친 후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개인의 소지품과 비어 있는 냉장고를 제외하면 말 그대로 모든 게 다 있었다. 방방마다 침대, 옷장, 책상과 높고 낮은 스탠드가 있었고 넓은 거실은 4~5인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에 벽난로, 가죽소파, 낮은 테이블, 따뜻한 색감의 풍경화가 걸려 있었다.

서재를 겸한 거실로 벽면 한쪽을 차지한 책장엔 소설, 사전, 요리서적, 매거진 등 쟝르를 나누지 않은 다양한 책들이 쇼룸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요리에 관심없던 내가 유럽에서 주방용품을 사 나르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인 것 같다. 처음 살아보는 영국의 가정집 주방에는 포트, 착즙기, 에그홀더, 티팟,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볼 등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예쁜 주방용품이 가득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밖은 대낮처럼 밝았고 평일 저녁시간임을 감안하더라도 거리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은 알지 못했다. 축제의 시작과 함께 도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글 : 권은정 에이투비즈 대표

<상단> 문화에 들어가시면 서문, 중, 하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