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의미 뒷면엔 고질적 병폐 지속적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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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에도 '엘리트'란 용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리트 체육'이란 용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에서 발간한 체육백서(2011)에는 전문체육이 일반적으로 '엘리트 체육' 이라 불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민체육진흥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전문체육'은 선수들이 행하는 운동경기 활동을 말한다.

'엘리트 체육'은 국내에 외래개념이 들어오면서 탄생한 단어라 할 수 있다.

'엘리트(Elite)'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에서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사람 또는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라틴어로 'Eligo(뽑다)', 'Eligere(가려내다)'가 어원으로 이를 근원으로 한 프랑스어를 통해 영어로 유입됐다.

'체육'은 건전한 몸과 온전한 운동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뜻한다.

"체육을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8월 18일 개정 전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 내용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 시절 체육특기자제도, 병역특례제도, 메달리스트 연금 지급 등 국가 주도 아래 엘리트 체육이 급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급성장의 뒷면에는 인권침해와 고질적 병폐가 지속해서 반복돼 왔다.

최근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흥국생명) 소속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논란이 연일 이슈가 되고 있다.

앞선 지난해 6월에는 감독과 팀 닥터, 동료 선수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사건이, 2019년에는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사건, 안우진 야구선수의 폭행사건(2018년) 등이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학창 시절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일으킨 이재영·이다영 자매. 이한형 기자


스포츠에서 경쟁은 재미요소 중 하나다. 적당한 조건하에 경쟁은 상대방과 자신의 발전을 위한 상호 호혜적 관계가 된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은 성적지상주의를 야기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폭력은 하나의 수단처럼 자리 잡았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사상 또는 태도를 이론화한 것을 '엘리트 주의(Elitism)'라 한다. 이와 반대되는 단어는 '포퓰리즘(Populism)' 즉, 대중과 엘리트를 동등하게 놓고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대중주의'가 있다.

엘리트 체육은 성적지상주의를 비롯해 엘리트주의 사상의 틀에서 소수 엘리트 육성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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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진흥법 제1조 "이 법은 국민체육을 진흥해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체육활동으로 연대감을 높이며, 공정한 스포츠 정신으로 체육인 인권을 보호하고, 국민의 행복과 자긍심을 높여 건강한 공동체의 실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故 최숙현 선수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8월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가 개정됐다. 이번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국위선양'이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엘리트 체육은 엘리트주의 사상에 입각해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선수들의 인권탄압을 일삼았다.

국민체육진흥법 제2조 1항은 체육을 운동경기·야외운동 등 신체 활동을 통해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기르고 여가를 선용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는 체육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체육의 목적에 벗어난 엘리트 체육이란 용어는 엘리트주의 사상을 띄는 개념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남상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박사. 본인 제공

남상우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박사는 용어의 개념에 앞서 체육 참여 수준 단계의 세분화를 주장했다.

호주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알려진 영국, 미국보다 단계를 더 세분화했다.

먼저 움직임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Foundation(기초)' 단계를 시작으로 생활체육 초급 단계라 할 수 있는 'Participation(참여)' 단계가 있다. 국내에서 이는 각각 학교 체육과 생활체육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음 단계로는 'Competition(경쟁)' 단계와 체육을 업으로 삼는 'Professional(전문적인)' 단계, 그 사이에 'Elite(엘리트)' 단계가 존재한다.

호주에서 엘리트 단계는 체육을 업으로 삼은 전문성이 아닌 생활체육 상급 단계를 의미한다.

남상우 박사는 호주의 Competition, Elite, Professional 단계를 국내에서 통합해 전문체육 즉, 엘리트 체육이라 부르는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체육', '생활체육', '전문체육'으로 구성된 국내 체육 참여 수준 단계의 세분화를 통해 용어의 개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트 체육의 궁극적인 문제점은 시스템 미비다. 그러나 용어의 개념 또한 분명 중요하다."

일례로 크게 '일반학생'과 '학생선수'로 나뉘는 '학교 체육'을 언급했다. 일반학생은 학업이 목적이지만, 학생선수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다.

남 박사는 "일반적인 개념의 성격만 띠고 있는 일반학생에 비해 학생선수는 선수에 대한 개념이 강하게 드러난다. 한 끗 차이지만 '선수 학생'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라며 학생선수란 용어의 개념을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엘리트 체육이란 용어의 개념도 분명하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인 3종경기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침해에 대한 청문회. 윤창원 기자

故 최숙현 선수에게 선택지가 많았다면 어땠을까?

남 박사는 엘리트 체육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엘리트 체육 지도자들이 제왕적 권력을 과시하며 조성한 사회 분위기를 지적했다.

일례로 학생인권조례 이후 학교 체벌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올바른 지도라는 명목하에 이뤄진 체벌은 더 이상 교육이 아닌 폭력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엘리트 체육 지도자들의 폭력행위는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왔다.

"국내 운동선수들이 성장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이는 프로스포츠라는 독점 모델의 폐해다."

선수들은 운동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플랫폼이 부족해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남 박사는 "故 최숙현 선수가 팀 집단 가혹행위를 신고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선수들의 선택지를 넓혀 더 이상 엘리트 체육 지도자들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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