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박봉 스태프가 톱배우에 '트렁크 이벤트' 괜찮나요?

배우들 위한 '트렁크 이벤트' 유행→관행 흐름에 우려 시선
이벤트 규모 점차 확대…스태프들 사비에 가외 노동까지
방송스태프 노조 "안 그래도 열악한데…관행 고착시 부담"
보호장치 없는 현실에 원치 않아도 '눈치' 보거나 '침묵'
매니저·기획사가 홍보 목적으로 스태프 동원하기도
한빛센터 측 "현장 주도자들이 불합리한 관행 막아야"

드라마 촬영 중인 세트장 풍경.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자료사진)
배우들을 위한 이른바 '트렁크 이벤트'가 최근 드라마 촬영 현장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또 하나의 현장 관행으로 정착되는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스태프들이 처한, 구조적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빚어지는 부조리가 더욱 악화될 수 있는 탓이다.

흔히 트렁크 이벤트에는 매니저와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등 배우 개인 스태프들이 동원된다. 촬영 마지막날에 해당 배우 차량 트렁크를 현수막 등 다양한 소품으로 꾸미고 꽃다발, 케이크, 선물 등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배우들 촬영 종료를 축하하는 현장 이벤트는 이미 1~2년 전부터 활성화됐다. 다만 과거에는 꽃다발 등으로 조촐하게 축하를 전했다면, 최근에는 그 규모를 키운 트렁크 이벤트가 유행하는 추세다.

올해 방송된 많은 드라마 현장에서 일부 주연 배우들은 해당 이벤트를 받고 SNS에 감사글과 인증샷을 올렸다. '이태원 클라쓰' '스타트업' '구미호뎐' '사생활' '도도솔솔라라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8 어게인'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악의 꽃' '더 킹: 영원의 군주' '그놈이 그놈이다' '라이브온' '한번 다녀왔습니다' '그 남자의 기억법' 등이 그 면면이다.

이를 보는 대중의 시선은 마냥 호의적일 수 없다. 아직도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스태프들이 함께 고생했음에도 마지막까지 가외 노동으로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상당하다. 결국 연예인을 떠받드는 분위기가 확산될수록 현장 위계질서는 더욱 공고해지고, 스태프들과 '동등한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트렁크 이벤트 비용은 누가 감당할까.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트렁크 이벤트는 소품 구성에 따라 1만원대부터 10만원대까지 그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연예 매니지먼트 측을 취재한 결과, 이 같은 이벤트는 소속사가 관여하기보다는 배우 개인 스태프들, 그 중에서도 배우와 친밀한 팀장급 스태프들이 주도해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팀 사정에 따라 팀장급 스태프가 비용을 부담하기도 하고, 현장 스태프들이 사비를 들이기도 한다.

배우와 함께 오래 일하거나 관계가 좋은 스태프들이 해당 이벤트를 해주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문제의 핵심은 트렁크 이벤트가 현장에서 유행처럼 자리잡으면서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이다. 겉으로는 '자발성'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동참하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스태프들 사비와 노동력까지 동원하는 등 노동 조건을 비교했을 때 불합리한 처사가 되는 셈이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흔히 배우 관련 스태프들은 개인사업자로 팀을 꾸리는데, 그렇지 않더라도 소규모 팀으로 움직이니 임금을 비롯한 근로조건이나 환경이 가장 열악한 편"이라며 "월급 1백만원도 못 받고 일하는 신입들이 허다하다. 업무상 교통비 등도 자기가 부담하는 현실인데, 해당 이벤트에 들인 사비를 경비 처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꼭 트렁크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이런 성격의 비용을 결국 월급에서 사후 삭감하기도 한다"며 "트렁크 이벤트가 현장에서 관행으로 고착화 하는 것이 스태프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전보다 나아졌다지만 이들 스태프는 여전히 도제식 위계질서가 잔재한 환경에 놓여 있는 만큼 당연히 문제 제기가 쉽지 않다. 폐쇄적인 연예계 생리가 압박감을 키우고 결국 '눈치보기'와 '침묵'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부조리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CBS노컷뉴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태프들 경험을 직접 듣고자 했지만 "익명이라도 말하기 어렵다"는 입장에 가로막혀 간접적인 이야기를 듣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생계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기획사 스태프이건, 기획사와 계약한 외주 스태프이건 많은 사람들 밥줄이 배우 하나에 달려 있는 구조"라며 "배우 컨디션에 따라 일하는 환경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보호 장치가 부족해 결국 심기를 거르스지 않기 위한 노력이 당연하게 돼버린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송 현장에서는 보통 문제를 이슈화시킬 경우 해결이 아니라 문제 제기한 사람을 색출해 치우는 식"이라며 "특히 배우와 장시간 함께하는 스태프들은 비밀엄수가 신성시되는 분위기라 내부 이야기를 기획사 협의 없이 하면 계약 위반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취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스태프들이 트렁크 이벤트를 원하지 않더라도 '티를 낼 수는' 없다. 배우가 이러한 스태프 정서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연예 매니지먼트 측 이야기와 달리 의욕 넘치는 매니저나 기획사가 홍보 등을 목적으로 이벤트를 주도해 스태프들을 동원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사실 연예인과 팬 사이 조공 문화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일종의 눈치게임처럼 '어디 현장에서는 스태프들이 이런 이벤트 해주는데…' 하면 처음에는 정말 진심 어린 호의로 시작한 일이 현장 관행으로 변질돼 버린다"면서 "현장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막고 합리적인 '룰'을 만들기보다는 또 하나의 '불합리한 관행' 정착에 일조하는 현실이 아쉽다. 수평적 근로환경도 아닌데 또 이렇게 경쟁과 홍보 차원에서 트렁크 이벤트가 관행화 되면 스태프들 입장에서는 부당해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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