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시민독재'로 깎아내려진 '시대정신'

웹툰 작가 주호민, 최근 SNS 통한 '시민독재' 발언 논란
혐오·차별 반대하는 데 '해도 되는 것' '해선 안 되는 것' 구분 있나
사회적 약자 혐오·차별 반대 목소리…'여성' 앞에서는 희미해져
올바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시민독재'로 매도 안 돼
혐오·차별 비판 목소리에 담긴 '진짜 비판 지점' 고민해야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혐오와 차별은 부당하다"는 말이 왜 '여성'만 만나면 무너지는 걸까. 여성 혐오를 반대하며 올바름을 추구하는 목소리를 두고 단순히 검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시민독재'와 관련해 드는 두 가지 의문이다.

웹툰 작가 주호민씨는 최근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만화는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지만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전쟁 피해자라든지 선천적 장애 같은 것을 희화화하면 안 된다. 그걸 희화화하는 만화들이 있었다. 그런 건 그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웹툰 검열이 진짜 심해졌다. 그 검열을 옛날엔 국가에서 했다. 지금은 시민이, 독자가 한다. 시민독재의 시대가 열렸다. 이거 굉장히 문제가 크다. 큰일 났다"고도 말했다.

해당 발언과 연결될 수 있는 이슈는 웹툰 작가 기안84, 삭의 여성 혐오 논란과 이를 향한 비판이다.

기안84는 지난달 11일 공개된 네이버 웹툰 '복학왕-광어인간' 편에서 무능력한 인턴 봉지은이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직장 상사인 팀장과 성관계·연애를 통해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내용을 그려내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앞서 다른 웹툰에서는 청각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지방에 대한 비하 역시 빠질 수 없다.

또 다른 네이버 웹툰 '헬퍼 2: 킬베로스'의 작가 삭 역시 도를 넘은 여성 혐오적 표현과 폭력성 등으로 비판의 중심에 섰다. 심지어 '헬퍼' 남성 팬들조차 "평소 '헬퍼'의 여성 혐오적이고 저급한 성차별 표현에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논란이 불거지자 기안84와 삭은 설정과 연출 의도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라 해명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비하와 혐오가 누군가의 문화생활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이러한 상황에서 웹툰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다며 독자들의 비판을 두고 '시민독재'라 표현하는 말이 나왔다.

과거에는 흑인 얼굴색이 재미 요소가 됐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것이 '인종차별'임을 알고 이를 비판한다. 과거 당연시 여겨지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가 더 이상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는 점을 많은 사람이 알아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 역시 점차 변화하고 있다. 남성 권력이라는 주류에 의해 사회적 약자로 자리매김한 여성을 둘러싼 성 착취와 성적 대상화 등 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여성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하길 바라는 시대의 요구다.

논란이 된 웹툰에서는 취업난 속에서 여성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 권선징악의 연출 의도를 위해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거나 여성의 성이 착취적인 형태로 그려진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명백한 '혐오'다.

이러한 점에서 특히 우려스러운 부분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지만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말이다. 왜 건드려서는 안 될 부분, 즉 사회적 약자의 테두리 안에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는 사라지는 건지 의문이 생긴다.

전쟁 피해자나 장애인과 같이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나 비하에 대한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논리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 여성 혐오로 넘어오면 사라지는 모습을 종종 목도한다.

여성의 보편적인 삶이 담긴 책 '82년생 김지영'은 일각에서 '남성 혐오'의 상징이라며 '페미니스트'를 걸러낼 수 있는 도구가 됐다. 여성 연예인은 영화 버전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난받았다. 페미니즘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교체된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 등이 악플을 받고 그들의 이름이 적힌 살생부가 등장하는 등 비난의 중심에 섰다.

이러한 일들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고 당연히 비난받아야 했던 일들이다. 올바름의 잣대가 사회적 약자의 성별을 두고 달라져선 안 된다.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있다고 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를 묵인한다면, '선택적 정의' 내지 '선택적 자유'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사진=자료사진)
전쟁 피해자와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이라고 명확하게 못 박았다면 여성 혐오 역시 마찬가지 범주 안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유리 천장을 마주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혐오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여성 혐오가 자행되는 것을 비판하는 현상은 '독재'가 아니라 시대가 변했다는 방증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안84와 삭의 웹툰을 둘러싼 비판의 목적은 특정 인물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비판하고자 하는 지점은 웹툰 속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혐오와 차별의 언어다.

'복학왕'과 '헬퍼' 속 여성 혐오 표현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올바름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 이어지는 지적이 있다면, 그것의 부적절함을 이야기하면 된다. 그러나 비판이 향하는 지점, 우리가 진지하게 공론의 장으로 끌고 와야 할 문제까지 '검열' '독재'라 한다면 정당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위험이 닥칠 것이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을 비판하고 있고, 올바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혐오와 차별 앞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붙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시대 변화에 민감해야 할 대중문화의 한 부분인 웹툰이 시대에 걸맞은 가치를 품길 바라는 비판, 우리는 그 목소리를 결코 '시민독재'라 부를 수 없다.

'다시, 보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에 한 걸음 더 다가가 현상 너머 본질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발빠른 미리 보기만큼이나, 놓치고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다시, 보기'에 담긴 쉼표의 가치를 잊지 않겠습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