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들기]기안84 거듭된 '혐오' 논란…네이버-MBC 책임은

귀여움-팀장과의 관계 때문에 인턴 합격하는 취업준비생 에피소드로 뭇매
현실과 동떨어진 전개에 독자들 황당함과 분노 표출
그동안 여성혐오 비롯해 장애인·외국인 노동자 비하로 물의 빚었으나 또 재발
기안84, 뒤늦게 사과문 올렸으나 비판 여론 잠재우기 역부족
웹툰 게재되는 네이버와 기안84 계속 기용하는 MBC 관리 부실 지적도

'파고들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 깊숙한 곳까지 취재한 결과물을 펼치는 코너입니다. 간단명료한 코너명에는 기교나 구실 없이 바르고 곧게 파고들 의지와 용기를 담았습니다. 독자들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통찰을 길어 올리겠습니다. [편집자주]

웹툰 작가 기안84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한 달 동안 보고서 하나에 매달릴 만큼 일 처리가 느리고, 동료가 도와주겠다고 하니 게임에 몰두하고, 상사의 질책을 귀여운 포즈로 무마하려다가 더 크게 혼나는 무능력한 젊은 여성 봉지은. 회식 메뉴로 나온 조개를 깨는 기행을 보여 대기업 인턴에 합격한다. 알고 보니 팀장과 만나는 사이였고, 등장인물의 '잤냐'는 대사로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 303화, 304화 줄거리 요약)

지난 4일과 11일 올라온 네이버 웹툰 '복학왕'이 또다시 여성혐오적인 내용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기안84(본명 김희민)는 그동안 이 웹툰에 여성혐오("누나는 늙어서 맛없어!", "아무리 화장을 해도, 아무리 좋은 걸 발라도 나이를 숨길 수가 없었다"), 장애인 비하(청각장애인 캐릭터가 생각할 때도 발음이 어눌한 것처럼 묘사), 외국인 노동자 비하(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노동자와 달리 더러운 숙소를 보고서도 감탄하는 것으로 표현) 장면을 넣어 질타받았다.

네이버 웹툰은 "작품으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현재 작가님이 수정해주신 원고로 수정반영 되었다. 향후 작품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작가님과 함께 더욱 주의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조개는 대게로 바뀌었고 일부 대사가 수정됐으나, 능력이 아닌 애교나 상사와의 친밀한 관계가 곧 취업으로 이어지는 뼈대는 그대로였다.

◇ 현실과 동떨어진 '어긋난 재현'

별 볼 일 없던 봉지은이 조개를 깨고 나서 갑자기 인턴에 합격했다는 내용의 '복학왕' 304화 별점은 4.69점(36691명 참여)에 불과하다.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전개를 비판하는 댓글이 다수를 차지한다.

심각한 취업난 속 성별과 무관하게 애쓰는 취업준비생들 현실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젊은 여성 캐릭터에 능력이 부족한데도 귀여움으로 일자리를 얻어낸다는 이른바 '꽃뱀' 서사를 입힌 까닭이다.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조개'를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성적 함의'에 불쾌함을 표하는 반응도 쏟아졌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여성이 공정하게 경쟁해 능력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활용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처음 묘사에는 성적 모욕의 의미가 있었다. 고쳐 그린 내용은 설사 작가의 주장대로 귀여움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해도 여성은 능력으로 취업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는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여성 지원자 입사시험 점수를 부당하게 깎은 사례 등을 고려하면 정당한 묘사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11일 공개된 기안84의 웹툰 '복학왕' 304화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기안84는 시대상의 파편적이고 가시적인 디테일을 캐치하는 동물적 감각이 발달한 작가인데, 문제는 자신의 시야에 어떤 통념이 작용하고 그로 인해 어떤 구조적 맹점이 생기는지 반성적인 성찰을 하지 않아 그의 '재현'이 갈수록 약자 혐오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 칼럼니스트는 설령 '복학왕'에 나온 문제의 내용과 같은 일이 실재한다고 해도 "그 이면에 어떤 위계가 성립하는지, 여성 직원이 어떤 차별을 받고 저평가되는지, 그런 구조적 문제를 모르거나 외면하니 결국 남초적 통념으로 소급하는 현실 묘사가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남초(男超)적 통념'이란 여성이 쉽게 돈을 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기안84가 '악의적으로 여혐 종자(악의적으로 여성혐오를 하는 사람)냐 악의는 없지만 계속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중이냐고 하면 나는 심증적으로 후자에 무게를 좀 더 두지만 사실 이쯤 되면 그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본다. 전자만큼 해악이 너무 큰 상태여서 이 사람의 의도를 헤아릴 이유가 전혀 없다"라고 전했다.

◇ 기안84 사과했지만…

이번 '복학왕' 여성혐오 논란이 일었을 때, '작가의 말'에 담긴 네이버 웹툰의 입장으로 갈음했던 기안84는 비판이 거세지자 13일 사과문을 올렸다.

기안84는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며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전했다.

'취업'은 취업준비생에게 매우 절박한 문제인데도 '귀여움'으로 승부를 보는 무리한 설정을 넣은 점이나 전혀 풍자답지 않은 부분을 '풍자'로 자처한 점 등으로 사과문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위 칼럼니스트는 △본인 잘못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현재 독자들은 기안84를 '심려'하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묘사와 내용에 분노하는 것이며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것 자체가 여성혐오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웹툰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네이버 웹툰은 작품 공개 전 맞춤법과 문제 소지가 있을 법한 표현 등 다양한 부분을 작가들과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창작의 영역이다 보니 작가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동시에 작품에 대해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존재하는 만큼 일방적으로 작품에 관여하고 수정을 강요하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라고 전했다.

이에 김 교수는 "('복학왕'의 문제 된 부분이) 단지 창조적 묘사가 아니냐고 주장하기에는 창작물이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상황이다. 표현에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차별, 혐오를 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합의가 존재한다"면서 "해당 창작물의 경우, 문제가 된 묘사가 전체적인 내러티브에서 불가피하다는 등의 합리적 타당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기안84는 '복학왕' 303, 304화의 여성혐오적인 내용에 관한 비판이 거세지자 13일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김 교수는 네이버가 이용약관이나 신고 항목 등 자율규제 항목에서 혐오나 차별, 성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비하를 금지한다고 하는 점을 언급하며 "네이버 플랫폼을 이용하는 창작물의 경우에도 이런 적용이 적극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불편함과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정도의 포괄적 사과문으로 갈음하기보다는, 네이버에서 우리는 성차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현하는 게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위 칼럼니스트 역시 통화에서 "결국 이것이 왜 여성혐오인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보인다. 담당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동시대에 요구되는 수준의 감수성을 가지지 못한 부분이 크지 않나 싶다. 검수도 뭐가 잘못인지 알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혐오표현 반복되는 웹툰…네이버의 대처는

기안84가 자신의 작품으로 물의를 빚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꾸준히 문제를 일으켜 사과했다. 네티즌들은 이 같은 일이 반복되자 기안84에게 '애플84'(사과를 자주 한다는 의미)라는 별명까지 붙였다.

특정 작가가 비슷한 잘못을 계속 저지르는 것에 대해, 웹툰 작가를 관리하고 웹툰 내용을 검수하는 네이버의 관리 부실을 꼬집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팀장은 "기안84 웹툰 내용이 문제가 된 게 벌써 여러 번이다. 차별과 혐오가 담긴 내용이 버젓이 나오는 것을 보면 충분한 모니터링이 되는지, 작가와 협의하는 시스템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런 '논란'을 하나의 마케팅 요소로 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이 팀장은 "네이버 웹툰은 여타 웹툰 플랫폼보다 규모도 크고 조회수도 높다. 웹툰에서 유해한 내용이 자꾸 나와도 계속 연재하게 한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것 같다. '일부만 문제 제기하는 게 아닌가' 혹은 '이 정도는 해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줄 위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네이버 웹툰 측은 CBS노컷뉴스에 "플랫폼 차원에서 논란들에 대해 면밀하게 살피고 있으며, 편집부에서는 작품의 선정성·폭력성에 대해 꼼꼼하게 검토하고, 논란이 된 경우에도 역시 편집부에서 작가와 긴밀하게 소통을 하며 즉각 수정 등 대응을 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편집부가 선정성·폭력성을 검토하는 기준은 자율규제위원회에서 함께 논의해 결정한 연령 등급 검토 연구내용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사회적인 정서가 점점 변화함에 따라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며 작가님과 소통하고, 사내 청소년 보호 담당 부서와 논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부연했다.

지난 2014년 연재를 시작한 웹툰 '복학왕'은 15세 이용가다. 그러나 그동안 여성혐오, 장애인 비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시각 등을 노출해 여러 차례 물의를 빚었다.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유해한 내용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문제에 관해 어떤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는지 묻자 네이버 웹툰 측은 "청소년 유해정보로 인한 피해상담·고충 처리를 위한 전문 인력을 배치 중이며, 이용자들은 전화나 메일을 통해 피해상담·고충처리를 요청할 수 있다"며 "이용자 불편사항이나 여러 이슈에 대해 빠르게 감지하고 공유하는 모니터링 조직이 있고, 이 조직의 역할과 책임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동시에 "각 서비스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보호 관련 법령·제재 기준, 유해정보 발견 시 대처 방법, 위반사항 처리에 대한 보고 절차 등을 교육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시각, 변화하는 흐름 등에 대해서도 교육을 보다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 잦은 논란에 하차 요구 나와도 기안84 안고 가는 '나 혼자 산다'

더불어 '비연예인'이었던 기안84를 고정 출연시키면서 '미숙하지만 알고 보면 의외의 구석도 있는' 이미지를 부여한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입장 표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품으로 논란을 자초하는 인물을 그대로 쓰고, 나아가 방송을 통해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7월까지 MBC 시청자위원을 맡았던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MBC에는 출연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으나 불법행위를 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해당된다. 요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는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공백이 있다"라고 짚었다.

윤 이사는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인권 감수성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출연자를 인기 있다는 이유로 계속 기용하고 있다. 문제가 될 때만 사과하고 또 쓰는 방식은 문제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여러 부분에서 서툰 캐릭터의 기안84는 본업인 웹툰 작가로서는 능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무실 이사, 동료 작가들과의 교류, 신입을 가르치는 에피소드 등도 자연스럽게 노출됐다. 윤 이사는 "프로그램이 (기안84가) 하는 일과 웹툰을 광고하는 효과가 있기에, 그로 인한 문제가 생겼을 때도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안84의 하차 요구가 빗발치고 있지만, MBC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14일 밤까지 하차와 관련해 아무런 공식입장도 내지 않았다. 기안84는 이날 방송된 358회에서도 편집 없이 등장했다.

'나 혼자 산다'에서는 기안84의 남다른 위생관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코 푼 휴지를 다시 두루마리 안에 넣는다든지, 앞좌석에서 먹은 것들을 뒷좌석으로 던져 차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하며, 맨손으로 고기를 집고 가위로 자르고, 걸레를 빨 때 왜 비누칠을 하냐고 묻는다. 동시에 본업을 할 때는 180도 다른 모습이 나온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하고,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도 노출한다. (사진='나 혼자 산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