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마주한 인간의 욕망과 상처 '욕창'

[노컷 리뷰] 영화 '욕창'(감독 심혜정)

(사진=필름다빈 제공)
※ 스포일러 주의

겉으로만 봐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다가 안에서 곪고 패이고 깊어진 상처를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거다. 혹은 작은 틈을 파고들어 크기를 키워가는 욕망 하나쯤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을 거다. 영화 '욕창'은 죽음의 냄새 앞에서 삶 속의 욕망으로 향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욕창'(감독 심혜정)은 가족이기에 애써 말하지 않았던 각자의 욕망과 상처가 엄마의 죽음을 앞두고 덧나기 시작하는 과정을 담은 클래식 드라마다.

퇴직 공무원 창식(김종구)은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 길순(전국향)을 재중 동포 간병 도우미 수옥(강애심)과 함께 돌보며 지낸다. 정확히 말해 돌보는 것은 수옥이고 창식은 지켜보는 역할이다. 말은커녕 몸을 가누기도 힘든 길순은 누군가가 수발을 들지 않는 한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무엇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하기 힘들다. 그런 길순의 몸에는 어느새 욕창이 생겼다.

창식은 딸 지수(김도영)에게 연락해 길순에게 욕창이 생겼다고 말한다. 좀처럼 미덥지 못한 수옥의 돌봄에 지수는 방문간호사를 불러 엄마의 욕창을 살피게 한다. 방문간호사는 욕창을 보더니 "욕창은 겉에서 봐서는 몰라요. 속이 얼마나 깊은지가 문제거든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기점으로 욕창을 둘러싼 인물들의 상처와 욕망, 다시 말해 창식, 길순, 수옥, 지수, 창식의 아들 문수(김재록)의 상처와 욕망이 외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피부가 죽고 썩어 패여 들어가는 욕창은 그 범위가 깊어지면 근육과 뼈가 드러날 수 있다. 심지어 이 작은 궤양이 다른 질병까지 끌어들여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부패와 죽음의 흔적 앞에 모인 인간들은 각자 나름의 삶에 대한 욕망과 삶을 지나오며 얻은 상처를 하나씩 내보인다.

(사진=필름다빈 제공)
몸이 굳어 무엇 하나 자기 의지대로 하기 어려운 길순이지만 마음마저 굳어진 건 아니다. 죽음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그는 살고 싶다. 몸도 마음도 살고 싶다. 걷지도 못하는 아내가 있는 집, 그곳에서 매일같이 걷기 운동을 하는 창식은 종종 밖에서 마주치는 다리가 불편한 노인이 보기 싫다. 죽음을 향해 가는 아내와 달리 삶의 냄새를 풍기는 수옥을 위장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옆에 두고 싶다.

불법 체류자인 수옥의 삶은 늘 불안했다. 삶도, 언제 들킬지 모르는 신분도 불안한 수옥은 안정을 원한다. 이를 채워줄 수 있는 건 창식의 집이다. 창식의 집을 돌봐야 하는 또 다른 사람은 딸 지수다. 지수는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직업인으로서 모든 면에서 잘 해내고 싶다. 겉으로는 그럭저럭 멀끔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을 살펴보면 균열이 가득하다.

창식의 아들 문수는 창식처럼 돌봄의 밖에 있다. 그는 미국에 가 있는 동생과 늘 차별받았고, 그 차별의 상처가 커서 여전히 짓눌려 산다. 엄마의 욕창 앞에서도 그가 마주한 건 차별의 흔적이자 인정에 대한 욕망이다.

이처럼 죽음의 상징인 욕창 앞에서 각자의 삶이 지니고 있는 욕망과 상처가 드러난다. 이는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부분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모든 것의 시작인 창식의 집에서 모두가 모인 채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궤적 같아도 사실은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던 것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생동감 있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돋보인다.

인물들의 다양한 욕망 사이로 얽혀 있는 또 다른 지점이 바로 돌봄과 이주노동자의 문제다.

영화에서 돌봄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다. 창식의 가부장적인 집 안에서 돌봄은 수옥과 지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창식은 자신의 아내임에도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길순을 돌보지 않는다. 밥상에서도 늘 가장 먼저 수저를 든다. 가부장 아래 지수는 엄마도, 집도, 딸도 돌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면서 지수의 삶은 더욱 압박받고, 욕망은 어긋난다.

이주노동자이자 불법 체류자 낙인이 찍힌 수옥은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창식의 집에서 그나마 안정을 누릴 수 있다. 수옥의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명분으로 창식은 결혼을 제안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누워 있는 길순, 무엇을 해도 그 자리에 발붙일 수 없는 수옥. 각자 나름대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그들의 삶과 그들이 위치한 자리는 안타깝게 다가온다.

죽음 앞에 서서야 생의 욕망과 상처를 돌아본다는 게 삶인가 싶다. 한 가족 안에 담긴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상처,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와 우리를 돌아볼 수밖에 없게 된다. 내 어딘가에, 우리 어딘가에 욕창을 바라보고 그 깊이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7월 2일 개봉, 99분 상영, 12세 관람가.

(사진=필름다빈 제공)